‘석매칸’이야기


날짜 2019-01-18 14:33:01 조회


‘석매칸’에서 석매는 연자매 혹은 연자방아를 이르는 함경도 방언이다.

‘석매’라고 하면 우리들은 19세기 시골에서 축력으로 돌리던 연자방아(연자매)가 그 원조로 알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석매’의 석자는 돌 석(石)자이고 매는 매돌의 매자도 되지만 어원 은 석마(石磨)에서 왔다고 보면 된다. 석마(石磨)는 연자방아를 이르는 한어말이고 돌로 간다, 다슬다, 마찰한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이 초시기 에 통나무로 만들었다는 ‘나무매, 통매’ 그 후 돌 을 사용하면서 ‘련마’, ‘돌방아’ 혹은 ‘연자간’이라 불렸던 연장도 ‘석매’의 또 다른 한갈래 원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 시기 연변의 시골에서는 지방에 따라 정미소를 ‘량식가공창 (소)’ 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지방에서는 ‘석매칸’으로 통했다. 간혹 ‘석 마깐’, ‘연자방아칸’이라고 칭한 곳도 있었다.

그 시절 생산대(인민공사화 시기) 메마당에 서 분배해주는 벼마대를 달구지에 싣고 와서 ‘채 석돌(섬돌)’우에 쌓는 무렵이면 저녁밥상에서 아 버지는 어머니에게 아래와 같은 분부를 한다. “올 해 가슬(을)에 가물어서 벼가 바싹 말랐던데 저렇 게 채석돌(섬돌)에 벼마대를 자뜩(잔뜩) 쌓아두무 쥐새끼들이 마대를 궁개(구멍) 내겠는데 아싸리 다시 뒤주에 처넣는 역새(수공) 피우지 말고 저 레(아예) 찧기우. 랠 보리저녁편에 물남의 석매칸 (정미소)에 가보우. 여러 집덜이 한꺼번에 와르르 자뜩 밀려들어서 복새판을 이루기 전에 일찌감치 석매 찧어서 애들에게 한 열흘 동안 맨자지 이팝 (쌀밥) 멕이기우.”

“아랏쓰꿔이(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만 알았던 어머니는 인차 대답한다. 그리고 그 이튿날 허술한 옷을 입고 ‘석매칸(정미소)’ 으로 달려간다. 우리들에게 ‘석매칸’은 식량을 쏟아내는 정다운 곳이였지만 언제나 삼단 같은 먼 지와 겨가루가 풀풀 날리는 곳이기도 하고 왕겨 (등겨)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눈 내리는 날에는 참 새들이 무리쳐서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석매 칸’으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옷조차 뿌연 겨가루 투성이다.

어머니가 가져온 ‘석매칸’ 정보를 접한 아버 지는 저녁편쯤 생산대 우사칸에서 달구지를 끌고 온다. 섬돌에 쌓아두었던 벼마대를 달구지에 싣고 는 나에게 분분한다. “큰것두(필자) 에미 따라가 서 나뱃게(쌀겨) 마대아구리 줴줘라”. 나는 헌옷 을 바꾸어 입고 어머니를 따라 나선다. 말하자면 쌀겨를 쓸어 담을 때 마대아구리를 쥐여주면서 거들어라는 말이다. 싫어도 따라가야 한다. 필자 의 동네는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마을 이 갈라졌는데 정미소는 물남에 있었다. 정미소를 지나칠 때마다 ‘쿵-쿵- 꽝-꽝’ 나무몽둥이로 정 미소 원추형 림시저장고를 쳐대는 소리가 들리군 했는데 이 저장고는 소형 승강기로 벼를 실어서 먼저 올리고 거기서 다시 정미기로 보내는 림시 저장고 역할을 하는 나무통이였다. 그 널판벽에 낱알이 붙으면 얼마가 되랴만 정미공은 그냥 힘 들여서 꽝꽝 두두려댔다. 그때쯤이면 정미소 천정에 드리운 뿌연 거미줄들이 진동에 하느적거린다. 서까래가 보이는 천정에 수많은 거미줄들이 드리워졌고 거기에 뿌연 먼지와 겨가루가 묻어서 귀 신이 숨어있는 듯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정미소 바닥에 쌓아놓은 마대가 산을 이루었는데 정미공 이 어떻게 용케도 혼동하지 않고 집집의 벼마대 를 저울에 떠서 차실없이 빻아주었는지 지금 생 각해도 경이롭기만 하다. 날벼를 넣어서 보통 세 번쯤 승강기를 거쳐서 저장고에 쏟아놓을쯤이면 정미기를 통해서 하얀 입쌀이 쏟아져나오고 한편 에서 쌀을 받고 어머니는 ‘나뱃겨, 나막겨’라고 일 컬었던 쌀겨를 정리하러 나간다. 이때면 필자도 따라 나가서 겨가루가 자욱하게 날리는 쌀겨칸에서 마대아구리를 쥐고 어머니가 쌀겨를 쓸어담는 걸 도와주는데 이 ‘나뱃겨’는 돼지가 제일 잘 먹는 먹거리였다. 집집마다 돼지를 사육하던 그 세월 쌀겨는 돼지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먹거리였고 시 골사람들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면 돼지사육과정 은 ‘주세돈(부스러기 돈)’을 뭉치돈으로 만드는 힘 든 작업이였다. 너무 떠서(발효) 신 냄새만 물씬거 리는 뜨물에 그 쌀겨를 덤으로 얹어주는데 이 쌀 겨를 먹을 때 돼지의 물리적인 반응은 너무 맛이 있어 ‘텁-텁’소리를 지르며 큰 귀가 요동쳤다고 표현해도 과장은 아닐 게다. 그래서 집집마다 쌀겨만은 알뜰하게 챙겨오군 했다. 이 쌀겨를 도문 시장에 팔 때도 있었다. 보통 벼를 찧을 때 첫번이 거나 둘째번으로 벗겨 던지는 겨는 왕겨 혹은 등 겨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버리고 온다. 어렸을 때 우리가 베던 베개속은 다 이 왕겨로 속을 두었다. 현재는 이런 왕겨를 고온으로 압축하여 겨숯을 만들기도 한다. 그 왕겨가 벗겨지고 다시 나오는 쌀겨를 시골에서는 ‘나뱃겨’라고 했는데 나중에 나온다는 뜻이 다분했다. 생쌀이 깎여나가서 쌀겨 라고 문화어로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식 정미소(도정공장 혹은 량식가공소)가 출현하기 전 우리 민족의 선조들은 매개 연자방 아, 디딜방아(발발아 물방아), 매돌, 절구로 량식 을 찧거나 빻았다. 그 시기 아녀자들이 제일 힘든 고역은 저녁편쯤 보리거나 좁쌀을 빻는 일과 밤 늦게까지 삼베를 짜는 일이였다. 그 시기 로인들 이 ‘보리저녁’이란 말을 자주 했는데 저녁노을이 지기전 한동안의 시간대를 말하는데 이 시간대에 일밭에서 먼저 집에 돌아온 아녀자들이 애를 등 에 업고 절구로 저녁에 식구들이 먹을 보리밥을 짓기 위해 보리를 빻았기에 세계에서 유일한 ‘보리저녁’이란 로동생활명사를 창조해냈다.
작가:최국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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