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렁맨’의 전설


날짜 2019-03-01 14:47:3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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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음식메뉴에서 최장수 음식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제1순위로 연변랭면을 꼽는다. 그만큼 ‘연변렁맨(랭면)’은 그 특유한 맛으로 격조 높은 연변랭면의 새전설을 기세 차게 구가하고 있다. 연변랭면은 이제 지역적인 음식이라는 한계를 호쾌하게 돌파하고 있다. 인산인해라는 말은 랭면집에 가면 실감한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이런 호황을 보이는 랭면집이 없는 줄로 안다.

우리민족음식평론가들은 랭면이 관북(반도북부지방)음식이라는 점에는 대개 수긍하지만 연변랭면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사정이다. 연변랭면을 함흥랭면계렬에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는 틀린 견해다. 혹자는 함흥랭면은 력사와 전통이 길지 않고 조선전쟁사변이 만들어낸 호칭으로 함경도 실향민들이 명성 높은 평양랭면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음식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이것 역시 흔쾌한 견해가 아니다. 정보경로의 부실로 사료적인 참조가 전무하여 생긴 편견이다. 필자는 평양랭면과 함흥랭면이 량대산맥이라는 촌평도 선뜻이 수긍할 수도 없다. 함흥랭면은 녹말가루를 주재료로 한 질긴 국수에 홍어라는 생선회를 얹어 만든 매운 비빔국수인데 회랭면이라고도 부른다. 음식평론가들은 함경도 일대는 산악기후관계로 감자를 많이 심고 메밀은 심지 않았다고 하면서 관북지방의 랭면을 함흥랭면으로 분류하는데 기실 메밀은 중국 북동부와 로씨야 시베리아 지역이 재배종메밀의 원산지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연변일대에서의 메밀 농사는 흉작도 없이 다른 농작물과 달리 봄, 여름 계단식 파종도 가능했다. 하기에 연변에서는 메밀농사 후 그 이듬해 밭을 못 쓰게 만들 정도로 야생메밀이 번창해 귀찮아서 선호하지 않았을 뿐이다. 함경도 메밀떡 사연과 갑산 귀밀(귀리)떡 이야기는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그외 메밀은 주곡이 아니였다. 하기에 연변랭면의 주재료가 밀가루와 메밀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하고 전통적인 메밀랭면으로 분류된다. 하기에 연변랭면은 오히려 평안도의 메밀 물랭면과 평양랭면에 더 가깝다. 하지만 면발로부터 육수, 고명은 큰 차이가 있다. 연변랭면은 함흥랭면처럼 녹말을 첨가하여 질기고 매끌거리는 맛과 북방 특유한 얼얼한 맛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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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랭면은 관북(조선북부)이라는 기후적인 특성에 맞게 맛이 개조 되였는데 이는 우리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가지고 온 맛을 다시 업그레이드 시킨 결과이기도하다. 살림살이가 웬간히 초실한 집들에서는 방아, 절구를 갖추는 것처럼 국수틀을 마련해서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먹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흔히 더운 여름에 시원한 랭면이라고 하는데 기실 랭면은 겨울철에 나온 음식이다. 실제로 함경도 6진 사람들과 조선북부의 개마고원 사람들은 모여들어서 자주 메밀랭면 추렴을 했는데 이 시기는 대개 겨울철이라고 했다. 메밀가루에 감자녹말을 반죽하여 국수틀에 넣고 힘이 좋은 남정들이 세넷씩 달려들어서 눌렀고 끓는 물속으로 국수를 뽑아 넣어서 익는 즉시 찬물에 다시 씻고 사리를 지어 큰 대접에 담는다. 고명은 왕갓으로 했다. 늦가을에 쑥처럼 자란 왕갓을 소구유거나 큰 나무함지에 한벌 펴고 그 우에 왕소금 한켜를 펴고 다시 그 우에 갓을 펴는 식으로 그릇에 가득 채운 다음 물을 골똑 부어서 얼구는데 떵떵 강철같이 언 왕갓을 도끼거나 자귀로 까서 찬물에 얼음을 빼고 다시 짠맛을 우려낸 후 잘게 썰어서 고명으로 썼는데 그 맛이 일품이였다고 한다. 조건이 되면 꿩고기로 육수를 했고 혼례 같은 군일이 겹치면 닭고기로 육수를 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널리 류전되였던 그 국수가 오늘의 연변랭면의 원조다. 우리민속생활습관에는 정월 초나흗날 점심에 랭면을 먹으면 장수하게 되고 그해의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민속문화도 있는데 연변랭면의 발전에 일조한 셈이다.

시골에서의 랭면이 이렇다면 도회지의 랭면은 어떠했을가? 연길에는 제정시기에도 국수집이 있었는데 랭면배달원이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타고 한손으로 랭면배달을 하던 풍경은 지금까지 전설같이 류전되고 있다. 소개에 의하면 50년대 지금의 연길시서시장 남문쯤에 ‘인천랭면옥’이 있었고 ‘삼천리랭면집’도 있었다고 한다. 공화국이 창건되면서 랭면 우에 얹는 고명이 다름에 따라서 50년대부터 60년대를 거치면서 랭면 한 그릇에 20전, 25전… 7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30전, 35전, 58전…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원단위로 값이 올랐는데 당시 10원이면 복무대루(服务大楼)에서 웬간한 상을 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랭면이 현재는 량과 고명의 고, 저급에 따라 특급, 고급, 보통으로 나뉘고 한 그릇에 25원까지 한다. 지난세기 90년대 연변병원 앞 렬군속식당의 국수도 맛이 있었고 진달래국수도 그 버금으로 갔다. 그 시기 창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친지나 아는 사람이면 랭면과 고명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연변랭면의 원조는 아무래도 지금의 복무대루가 아닌가 싶다. 1956년부터 개업을 시작한 복무대루랭면과 그 이듬해 개업한 연길 제1백화청사는 당시 연길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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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랭면에서 부생한 특유한 메뉴 연변식 ‘렁맨모(冷面帽)’도 연변랭면집에서만 가능한 메뉴고 연변사람들이 창조한 신형메뉴다. 굳이 문화적어로 다듬으면 ‘랭면고명’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렁맨모’는 연길시신흥가파출소 경찰들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밤순라를 하고 난 신흥 파출소 경찰들은 목이 말라 밤늦게 국수집을 찾아왔고 밤에 랭면이 가능하지 못해 음식 메뉴로 쓰다 남은 고명(닭고기완자, 소고기편육, 양배추김치, 닭알, 고추가루소스… 등)으로 대충 한 그릇을 만들었는데 먹어 보니 그 맛이 별미인지라 차츰 알려졌고 랭면집에서 술군들이 첫번째로 찾는 단골 메뉴로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큰 랭면그릇에 느닷없이 국자가 둘러리를 서는 것도 연변랭면의 특징이다. 엄청난 유리그릇에서 커다란 국자를 휘두르면서 랭면을 ‘마시는’ 것도 특유한 풍미다. 연변랭면은 질기지만 가위로 면발을 끊지도 않고 꽁꽁 씹지도 않는다. 이때면 육수를 떠 마실 국자가 필요하게 된다.

연변랭면은 매체로부터 조선족의 지혜라고 각광을 받는 실정이고 랭면집마다 랭면에 넣는 재료의 배합법으로부터 육수내리는 비법과 양념, 소스까지 일체의 레시피(調理法)가 상업비밀에 부쳐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랭면발에 메밀과 녹말이 들어가는 것은 알고 있고 육수에는 사골국물과 닭(꿩)고기 국물이 들어간다는 건 알고 있다.


편자주: 이 글은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편찬한 최국철의 <중국조선족민속문화기행>에서 발취한 것이다.
작가:최국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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