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제초기(除草器) 이야기


날짜 2019-07-16 14:10:15 조회


지난해 두만강 답사중 도문시 월청진 석건촌 소재 백년고택을 다시 찾은 일이 있다. 고택 동쪽벽에 비스듬히 기대세워진 제초기(除草器)를 보고 이걸 지금도 보관하고 있나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세기 수많은 청년들이 땀을 쏟게 하고 근육을 불끈거리게 한 제초기 “쏴르륵, 쏴르륵”거리며 톱이바퀴를 맹렬하게 돌리면서 잔풀을 잡아버리던 논밭전용제초기,《꽃피는 마을》이란 어떤 영화의 한장면에서 “종달새 지종 하늘에 날고 들에는 노래소리 알뜰히 가꾼 포전마다 기쁨이 넘치네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사는 나라 예가 바로 황금들판 꽃피는 일터라오”라는 주제곡이 흐르면서 영화주인공이 농장원들을 이끌고 논판에서 제초기를 미는 배경을 뒤에 달고 나온다. 그 분위기가 노래처럼 흥그럽다. 영화감독이 ‘예술의 진실’ 이라고 토를 달고 이런 풍경을 화면에 올린 것 같지만 적어도 제초기를 밀어봤던 우리들에게는 노래할 기분도 안 난다는 게 그 시절 당사자들의 통념일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흥그러운 기분과는 거리가 멀었고 자연 ‘꽃피는 일터’는 아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 시기에 극대화로 풍년을 기원했으니 연변농촌의 각 대대 사무실 지붕이거나 동구 밖 비술나무가지에 얹어놓은 확성기들에서는 매일 “만풍년을 거두었소 …방치 같은 조이삭이 춤춘다”가 흘러나왔고 있지도 않은 “여량수레 넘어가네…”를 열창했다. 그 시기를 정직하게 소개해보면 10년에서 “8흉(凶) 2풍(丰)”이였고 “8흉”은 인재(人灾)로 기인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종달새 지종 하늘에 날고…만풍년이 깃들었네”는 이제 30여년 전 일로 멀리 떨어져버렸다. 이제는 풍년이 들어도 촌민들은 덤덤하다. 국가에서 량식을 통일구매(统购)하지 않아 혼자서 판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 우리가 사용했던 제초기는 기(器)란 이름도 붙이기 아까운 원시적인 농업기기였다. 손잡이를 억세게 틀어쥐고 와락와락 밀어야 효률이 나는 제초기는 지난 세기 60, 70년대 벼재배가 왕성했던 장강이남 지역이거나 전국구(区)로 통용화된 기기가 아니라 사용지역이 연변에 국한되거나 극상해야 동북지역 안에서 사용된 수전전용 기기이다. 설명하자면 제초기에 두개의 날카로운 톱바퀴가 앞으로 굴러갈 때면 물리적으로 바닥을 뒤집어 엎으면서 벼의 성장에 페해가 되는 잡초들의 뿌리를 통채로 뽑아서 뿌리친다. 보통 한자리를 두벌씩 반복적으로 밀어대는데 그시기 벼재배 규격은 보통 4촌(寸)×6(寸)인 규격이였으니 제초기의 너비도 15센치쯤 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제초기의 포인트는 힘주어서 밀어야 한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라. 평지도 아닌, 무릎팍까지 빠지는 수렁 같은 논밭에서 진종일 밀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프겠는가를… 농경사회의 특징이란 후진 생산력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체로동이다. 민다는건 물리적인 힘을 요구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로동은 대개 청년들의 전담 분야였다. 그래서 식량이 귀했던 그 시절에도 중참이 차례졌다. 그 시절 흔히 새벽 5시쯤에 나가서 밀면 8시쯤엔 배가 허리께로 달싹 붙으면서 허기가 지고 힘이 풀린다. 돌도 소화시킨다는 청년들 위장은 에네르기를 보충해야 했다. 이때면 중참이 나오는데 대체로 쌀밥에 두부다. 농촌의 7월은 반찬으로 만들 풋채소가 크게 없다. 극상해야 겨우 매운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풋마늘과 ‘다마내기(毛葱)’라고 불렀던 작은 양파 정도라 아무리 구차했던 그 세월이라도 이런 풋채소로 매일과 같이 랭국만 만들수 없어 꼭 두부가 동원되였으니 점심 한때와 오전 오후 두차례 공급되는 중참은 두부계렬이 지속되였다. 연변농촌의 사정은 대동소이해서 물어보면 대개 중참으로 모두부나 두부국을 먹었다고 대답한다.

지금도 50후(后)거나 60후 시골출신들은 술상에 마주앉으면 공사화 시기의 생산대로동생활에 관해서 감회가 깊은데 이중에는 꼭 제초기사연이 있다. 논밭에서 김을 매거나 제초기를 밀면 꼭 소름끼치는 뱀을 만난다. 생산대시기 장년들이거나 청년들중에는 꼭 담이 크고 맨손으로 뱀을 잡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때면 그런 사람들이 나서서 벼포기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도망치는 뱀을 어김없이 포획한다. 그리고 껍질을 쳐내고 팔딱거리는 심장을 그대로 훌떡 삼켜버린다. 그 시기 벼김을 매노라면 어디선가 “뱀이다!” 하고 기겁한 소리가 나오면 논판에서 구불거리면서 요리조리 헤염치는 뱀을 볼 수 있었는데 한번 뱀에 놀라면 바오래기 봐도 놀란다고 그 뱀을 포획했는데도 잡초가 무성한 논두렁밑에서 불쑥 또 튕겨나올가봐 다시 일할 흥이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그때는 생산대에 청년들이 많아서 그렇게 힘들었던 제초기 밀기도 재미 있었지! 힘든 일이라서 공짜밥과 두비두 많이 먹었지유.” 50, 60후(后) 사람들은 그 시절을 정겹게 회상하고 있지만 저녁이면 팔다리가 시큰거리도록 힘들었던 그 제초기 시절은 지금 다시 돌이켜보아도 대단히 힘들었던 시절이였다. 그나마 진정한 유기농사였다는 점으로 위안이 조금 된다. 육체로동만 동원되던 농경사회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감정세계란 대체로 그 시기의 ‘인정세계’를 그리워하는데 필자도 례외가 아니다. 
그저 “지나간 모든 것이 아름다워라.”라고밖에 다른 말로 더 위로할 수 없다.  
 
작가:최국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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