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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연공원


날짜 2019-07-25 09:20:27 조회


2008년 9월, 룡정시정부와 각계 군중들은 한락연의 랑만적인 혁명일생을 기념하고저 350만원을 투입하여 부지면적이 2,200평방메터에 달하는 락연공원 건설을 시작하였다. 2009년 9월에 완공된 락연공원은 주급 애국주의교양기지로 지정되였다.

                  인물소개                 

한락연(1898—1947), 원명 한광우, 남, 조선족, 룡정진 토성보(지금의 안민가두 공농촌) 출생. 1923년에 한락연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47년 7월 30일에 한락연은 군용기 추락사고로 5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중앙인민정부에서는 한락연을 혁명렬사로 추인하였다. 한락연은 중국조선족중 첫 공산당원이다. 또한 동북 조기 건당 지도자중 한사람이다. 그는 걸출한 정치활동가이고 인민예술가이며 저명한 화가로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운다.

                                        혁명사적                                   
유년시기부터 남달리 그림그리기를 즐겼던 한락연은 짬만 있으면 산, 하천, 인물과 가축, 가금 등 자연경물을 그리였다. 그는 선후로 룡정서당, 국자가소학교, 룡정관립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았다. 학업을 마친 그는 룡정전화국에서 교환수로 근무하면서 계속 그림그리기에 열중하였다. 1919년초에 한락연은 룡정세관의 사무원으로 발탁되였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한편 외국어학습에 힘을 기울이였다. 또한 지방의 ‘국민회’직에 참가하여 민중을 대상한 반일 선전, 동원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13일에 그는 룡정에서 폭발한 반일시위활동에 참가하였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이해 가을에 쏘련에 가서 사회주의사회단체에 가입하고 맑스—레닌주의와 로씨야사회주의 10월혁명의 경험을 학습하였다. 1920년 여름에 상해로 돌아온 그는 미술공부를 하는 한편 혁명활동에 종사하였다. 상해에서 그는 기타 혁명자들과 함께 손중산 선생을 배알하기도 하였다. 1921년에 그와 함께 혁명활동을 견지하던 대부분 사람들이 1921년에 쏘련으로 갔지만 그는 의연히 상해에 남아 계속 혁명활동에 종사하였다.
1923년말, 한락연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4년에 당조직에서는 그를 동북으로 파견하여 공산주의계몽교육과 건당사업을 진행하게 하였다. 심양에 도착한 후 그는 ‘유화개인전’을 꾸리고 미술전문학교를 설립하는 등 활동을 통하여 청년들을 단합시키고 교육하였다. 1925년 여름 한락연은 당조직의 지령에 따라 할빈에 파견되여 할빈특별구역 당조직의 령도하에 미술교원의 신분을 리용하여 지하당사업을 전개하였다. 한락연은 수업을 하는 한편 초도남, 조상지 등과 함께 ‘청년독서회’, ‘평민야학’을 조직하여 중동철도로동자, 전차로동자들에게 맑스—레닌주의사상을 전수하였다. 1926년에 당조직의 배치에 의해 상해로 전이한 그는 지하당조직의 재무사업을 맡았지만 의연히 적들의 감시대상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당조직의 비준을 받고 출국의 길에 올랐다.
먼저 프랑스에 이른 그는 빠리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하는 한편 당지의 당조직과 련계를 가지였다. 1935년 여름에 그는 빠리에서 유럽항일구국단체대표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후 그는 사생을 목적으로 화란, 스위스, 미국, 쏘련 등지를 려행하였다. 빠리에 돌아온 그는 ‘중국화가한락연미술전’을 열기도 하였다. 1937년에 그는 《빠리석간》 촬영기자로 초빙되여 반파쑈 국제선전사업에 종사하였다. 그해 가을에 귀국한 그는 무한의 동북항일구국총회에서 선전, 대외련락, 통일전선 사업에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그는 중국적십자회 사업일군으로 중국의 항전을 돕고 있는 스메들리와 손잡고 의료일군을 양성하고 약품을 마련하면서 항전후원사업에 진력하였다. 또한 전선에서 보내온 수많은 항전 관련 뉴스, 사진 등을 제때에 항전전지기자 스노와 중국의 항전을 돕고 있는 앨리에게 넘겨주면서 그들과 두터운 우의를 맺기도 하였다. 한편 동필무의 지도 밑에 그는 또 심균유, 황염배, 허덕형, 리제심, 사평리, 사량 등 항일지성인들이 조직하는 좌담회에도 자주 참가하였다.
1938년에 중경으로 전이한 한락연은 동필무의 지시에 좇아 화백의 신분을 리용하여 당외인사와 국민당 고급 장령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을 쟁취하는 사업을 계획적으로 진행하였다. 1939년 4월에 그는 당의 지시에 따라 리제심 소속의 ‘전지당정위원회’에서 소장지도원을 담임하였다. 이로부터 그는 국민당 소장군관의 신분으로 통일전선사업을 진행하였다. 1940년에 국민당에 체포된 그는 모진 혹형에도 시종 자신의 신분과 당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았다. 1943년에 석방된 그는 여전히 국민당장령들 속에 심입하여 통일전선사업을 견지하였다. 한락연의 방조와 영향으로 감숙성 주천시 하서경비사령 도치악은 1949년에 부대를 거느리고 해방군에 의거하였다.
1947년초에 한락연은 신강에 가서 ‘키질천불동’을 참관하고 키질벽화모사화를 창작한 후 제20회 개인미술전을 가지였다. 이해 7월 30일, 한락연이 탑승한, 신강의 적화에서 란주로 향해 날던 국민당 257호 군용기가 오후 2시경에 가욕관 상공에서 추락하여 탑승객 전부가 수난당하였다. 한락연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소재지: 룡정시 안민가두 토성보사회구역  제공: 주당사연구실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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