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와‘숭니’


날짜 2019-08-28 14:21:09 조회


 ‘여보’와 ‘숭늉’은 어감이 다르고 뜻도 동떨어진 것 같지만 우리들의 그때 그 시절 시골집 부엌간에서 오가던 생할용어라는 점에서 련관성이 있다.
아침밥상을 물린 남편에게 마누라가 숭늉그릇을 받쳐올리며 “여보, 숭니꿔이, 입가심합소.”라고 은근하게 숭늉을 권하던 모습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집 부엌 풍경이였다. ‘여보’와 ‘숭늉’은 이렇게 퍼즐이 맞는다.
지방과 가정에 따라 숭늉을 ‘숭니’, ‘숭뉘’란 사투리로 발음되기도 했다.

여보
우리 말에는 상대편을 높여부르는 호칭이거나 평칭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여보’란 말은 그 어감이나 조성형식으로 보아 매우 호감이 가는 호칭으로 되고 있다. 부부사이에 서로 상대편을 부르는 호칭으로 어른들이 자기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을 부를 때 쓰는 호칭, 가까운 아래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여보’의 어원은 “여기를 보오”, “여기를 보시오”, “여기를 봅소”란 대화식 문장으로부터 줄임말로 되였으니 근대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본래 우리 말에서는 남편이나 부르기 어려운 웃사람들을 보통 대명사로 부르지 않고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게 부르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안해는 남편에 대하여 ‘애아버지’, “이봅소”, “여기를 보오” 등으로 두리뭉실하게 칭했다.
이중에서도 “여기를 보오” 혹은 “여기를 보시오”가 무난해서 점차 줄어들어서 ‘여보’로 되였으며 그 뜻도 “여기를 보.”는 뜻에서 파생해서 “상대편을 허물없이 부르는 말”의 뜻으로 변화되였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이라면 ‘여보’는 “여보시오”보다 격이 낮은 말이고 “여보게”도 “여보시게”보다 좀 낮은 말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현재 연변식으로 “여보시오”를 “여봅소”, “여보쇼”, “여기보쇼”라고도 한다.
‘이보’라는 사투리호칭도 있다. “이것 보오”는 “여보시오”의 함경도 방언이다. 어느 소학교 교사가 신입생에게 아버지 성함이 머냐고 물었더니 “여보”라고 힘차게 웨쳤고 어머니 성함은 “이보”라고 대답했다는 유머도 있다. 필자의 집에서도 가친이 그냥 어머니를 ‘이보’라고 호칭해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여보’가 “여길 보오”의 줄임말이라면 ‘이보’도 “이것 보오”의 줄임말이다.

숭늉
숭늉, 사뭇 미각을 간질거리는 명사지만 현재는 흔치 않다. 밥을 지어내고 가시지 않은 솥에 덥힌 물이라는 걸 다 알지만 현재는 사어가 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차나 뜨거운 물보다 기호음료로서 숭늉을 더 선호했다. 숭늉은 밥의 영양가들이 그대로 가마밑굽에 가라앉았고 따뜻이 덥힌 것이기 때문에 맛을 판별하는 우리들의 구강구조에서 후덥게 받아들이는 음료였다. 특히 추운 겨울날에 뜨끈한 구들 우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서 숭늉을 후후 불면서 마시고 나면 몸에 화기가 돌며 기분도 한결 좋아진다.
이 숭늉의 어원은 익을 ‘숙(熟)’자, 차다는 ‘랭(冷)’자가 결합되여서 ‘숙랭’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숙랭’→‘숙늉’→‘숭늉’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숭늉으로 굳어졌다.
조선사회과학원에서 출판한《어원유래》에는 숭늉의 어원 연변 과정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18세기의 책《청구영언》에서는 ‘익힌 숙늉’이라고 쓴 례가 있으며 19세기의 책《물명고》에서는 ‘숙닁’이라고 쓴 례가 있다.《계림유사(鸡林类事)》에서 숙수를 ‘이근몰(泥根沒:익은물)’이라 했으니 ‘숙랭’, ‘숭냥’, ‘숭넝’, ‘숭늉’, ‘숭니’,‘반탕(饭汤)’, ‘취탕(炊汤)’ 등 사투리로 지역과 발음에 따라 각이하게 발음되지만 그 바탕은 모두가 숭늉에 두고 있다…”
어느 한시기에는 숭늉을 올린다는 ‘현다(献茶)’라는 례식도 있었다니 숭늉을 그저 간단한 기호음료로 홀대하기도 어렵다. 숭늉에는 누룽지에서 나온 포도당의 단맛과 탄수화물이 타면서 생긴 구수한 맛이 강하다. 그래서 짜고 매운 김치를 반찬으로 곁들고 나서 구수한 숭늉을 마시면 산성으로 변한 입맛을 중화시켜준단다.

가마솥 대신 전기밥솥을 사용하면서 누룽지와 숭늉도 없어지는가 싶더니 현재 시장에는 누룽지를 파는 매점도 많다 하지만 숭늉맛을 보려고 누룽지를 넣고 끓여보면 진짜 그때 그 시절의 숭늉맛과 비교도 안된다.
연변의 조선족들은 숭늉을 흔히 ‘숭니’, ‘숭뉘’라고도 발음했다. 우리 집에서는 모두가 아버지와 할머니가 발음하는 대로 ‘숭니’라고 했다. 가친은 숭늉을 ‘양덕재 물’이란 나름의 조어(造语)로 대신했는데 아버지의 롱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어머니는 슝늉을 떠다드리면서도 그냥 아버지의 ‘양덕재 물’에 불만을 품군 했다. 그게 왜 불만이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괴이하다. 한번이라도 아버지에게 맞장구라도 쳤다면 가친이 좋아할게 뻔했는데 롱담에 너무 린색하다 보니 한번도 화답 안했다. 이 ‘양덕재 물’이 출처가 어디였을가 그냥 의아했는데 1956년에 출품된《삼감령》영화를 보고서야 ‘양덕재 물’의 출처를 알았다. 지난 세기 공사(현재의 향, 진) 이동영화상영대가 정기적으로 농촌으로 순회상영을 다녔는데 문화대혁명 전까지 상영대 대원이 영화대본을 보면서 아동판수 륙갑 외우듯 대본 대로 동시번역을 했고 남녀로소 배역들의 대화를 혼자서 더빙(배음)하군 했다《상감령》영화에서 나오는 8련 련장 장덕발이 자기의 전령병 양덕재에게 습관적으로 “杨德才, 水!(양덕재, 물!)” 하고 웨쳤는데 가친이 이 대사를 따라한 것이다.
간혹 어머니가 사이가 없으면 우리들에게 “아버지에게 숭니를 나사드려라”고 분부했는데 박바가지로 떠다드리면 버릇없다고 타박하면서 꼭 사발에 담아서 드리도록 했다. 당시 “나사드려라”는 모를 사투리였지만 그저 막연하게 어른에게 공손하게 드려라는 점만은 알았다. 지금 보면 ‘나사드려라’의 어원은 고기를 낚아서 드려라는 말에서 나왔으니 ‘낚아드려라’가 원말이다. 그 시기에 로인들은 우리들에게 웃어른들에게 음식이나 물건을 올려라는 말로 ‘나사라’라는 말로 대신하군 했다. 사족으로 ‘아사라’는 사투리도 있다. 감탄사 ‘아서라’가 원말이다. 아래사람들에게 해라체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 하는 말이다.
“아사라(아서라) 어른들에게 박바가지로 숭늉 떠드리지 말고 사발에 나사드려라”
숭늉은 박바가지에 담아서 마셔야 제맛이 났는데… 
작가:최국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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