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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리’와 ‘피통’


날짜 2019-10-29 14:53:42 조회


어감이 선정적인 것 같아서 피하려 했는데 연변의 소품 <손을 잡읍시다>에서 나오는 리영근 배우의 ‘무라리’란 대사를 들으면서 아무래도 이 사투리에 대해서 재해석이 필요할가 해서 사족을 남기고 싶다.
‘무라리’는 표준어 물알에 어원을 둔 사투리이다. 그런데 왜 시골에서 사용량이 가장 빈번한 사투리가 되였을가? 그것은 단적으로 생산력이 락후하던 농경사회가 그 뒤배경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남자라는, 남편이라는 가장이 한 가정 성원들의 생명력을 의미했던 지난 세월이였다면 세대주라는 웅성은 힘이 세야 했고 여력(膂力)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병약하고 비칠거리면 동네에서 어김없이 ‘무라리’ 소릴 들어야 했다. 지난 세기 남성들의 근력을 시험하는 로동중 탈곡장에서 팥마대와 청줄배기 콩마대를 메는 현장이 있었다. 보통 벼 한마대는 140근 좌우였지만 팥마대와 콩마대는 200근 밑을 육박해서 허리힘이 웬간하지 못하면 당초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고 간혹 어깨에 멨다 해도 비칠거리며 발걸음도 떼기 어려웠다. 이런 경우면 사람들은 “무라리요”, “진(津)이 빠졌소”라고 하며 악의없이 조롱하군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진’이 빠진 ‘무라리’ 출신들이 되려 녀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녀성 편력이 기세찼다는 점이다. “팩끼(팥)마대 하나 변변히 메지도 못하는 놈이?…그럴 리가?” 완력이 쎈 장정들은 의외라고 여기면서 리해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무조건 안해를 제압하고 이겨야 했는데 안해 앞에서 턱없이 작아져서 “술상 갖추라.”고 감히 큰소리 못 치면 “배우리(병아리) 같은 안깐도 못 이기는 무라리.”라고 조롱받았다. 물은 인류생명의 원천인데 왜 물이 접두사로 되는 명칭들은 뉴앙스가 야릇했을가?
‘무라리’의 어원인 물알은 시골사람들은 8월 초순 벼가 ‘사막(벼꽃수정)’받고 얼마 안되여 터치면 하얀 물이 흘러나오는 벼알, 7월 중순쯤 덜 염근 풋옥수수알을 보통 물알이 들었다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아직 덜 여물어서 물기가 많고 말랑한 곡식알들을 이르는 말이였다. 그외에도 껍데기가 굳지 않고 무른 채로 낳은 새나 닭의 알, 여물지 않아 물렁물렁한 명태의 알도 물알이라고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물알곡식이 되려 젖을 뗄 무렵 애기들의 간식거리가 되였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선배실버들중에 물알이 든 풋옥수수를 푹 삶아서 먹고 성장했다는 이야기들을 흔하게 듣었다.

그렇다면 왜 ‘무라리’를 ‘진(津)이 빠졌다’고 해석했을가? 여기에서 말하는 ‘진’이란 사전적으로 “실망을 하거나 싫증이 나서 더 이상의 의욕을 상실하다, 또는 힘을 다 써서 기진맥진해지다.”고 해석하지만 시골사람들이 아는 진이란 풀이나 나무의 껍질 따위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물질을 말한 것이다. 담배잎과 줄거리에서 나오는 하얀진과 사삼이라 불리는 더덕 속에 껍쩍한 진이 많아야 맛이 있다는 풍토에서 사람도 진(기력)이 빠지면 볼장 다 본다는 의미이다. 
그외에 ‘무라리’를 ‘피통’이라고도 표현했다. 거의 같은 맥락으로 ‘물맥이’란 사투리도 있다. ‘물맥이’란 사투리는 힘이 없다는 사투리란 걸 인차 알 수 있지만 ‘피통’은 너무 오래 깊숙하게 숨어있던 사투리라 웬간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럼 ‘피통’이란 사투리는 어디서 왔을가? 우리 민족은 월강한 후 화전밭을 일구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초가삼간을 짓고 보리와 감자 농사를 할 때부터 초가집에서 제일 중요한 구조물중에 부엌과 구들 그리고 ‘구새(굴뚝)’를 중요시했다. 널과 같은 원재료가 전무한 깊은 산속에서 굴뚝감이란 구새먹은 피나무가 유일했다. 피나무는 생물적인 속성상 세월이 오래 가느라면 속에 구새가 먹으면서 병들게 된다. 이런 나무를 ‘구새통’이라 했다. 아름드리 경우라면 겨울곰도 동면할 수 있고 작은 경우라도 다람쥐거나 다른 동물들의 겨울나기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겨울 심산에 들어간 사냥군들은 몽둥이로 구새먹은 피나무를 두드려보군 했다. 선인들은 이런 ‘구새통’으로 굴뚝을 만들 수 있다는 지혜를 얻으면서 피나무가 군락을 이룬 피나무밭 속에서 굴뚝감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마땅한 굴뚝감을 찾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구새가 덜먹은 피나무를 베여다가 그루 쪽 한끝에 불을 달고 손풍구를 돌리면서 이미 곰삭은 나무조직을 태우는 작업을 했다. 풍속이 미비하면 온근 통나무가 타버리기에 풍력이 센 풍구로 피나무벽에 달라붙은 곰삭은 조직만 태워서 아구리를 넓히군 했다. 이런 구새먹은 통나무를 ‘피통’이라고 했다. 이 시기 한족들과 만족들은 대체로 나무굴뚝보다 흙을 이겨서 낮은 흙굴뚝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한족구들이 높게 설계하기에 가능했지만 우리 민족들의 집구조상 굴뚝이 낮으면 안되였다.
결국 ‘무라리’와 ‘피통’ 류의미적인 사투리인 셈이다.  
 
작가:최국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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