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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변주곡


날짜 2020-06-30 09:24:23 조회


직장인으로 산 이래 가장 긴 련휴였다. 두문불출하고 3주가량 집에 박혀있으면서 처음 알았다. 내가 철두철미한 집순이라는 것을.
세밑에 가족들이 식당에 모여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 상해에서 설 쇠러 온 사촌동생이 의료용 마스크를 친척들에게 한장씩 나눠줬다.
“상해에서는 벌써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졌어요. 연길의 약방에는 아직 많더군요, 서둘러 쟁여놓으세요.”
어른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못 겪어봤겠냐?’는 식으로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그때까지는 딴 나라 얘기 같았다. 그냥 이제 곧 역병이 돌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다행히 집에는 시어머니께서 예전에 일본에 계실 때 소포에 끼워서 보내주신 마스크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다. 그때는 하찮게 여기며 구석 쪽으로 밀어놓았던 마스크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지난 1월 23일, 무한을 봉쇄했다는 뉴스가 떴다. 호적인구가 900만이 넘고 류동인구가 500만이 넘는 대도시를 봉쇄한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75% 알콜이 소독에 좋다고 해서 부랴부랴 린근 약방에 들렸더니 다행히 마지막 한병의 75% 알콜이 남아있어서 냉큼 집어왔다.
이튿날 다른 약방에도 들려봤지만 마스크도 알콜도 모두 없었다. 시댁식구와 친정집 식구들 몫까지 하면 마스크가 모자라겠다는 불안한 마음에 위챗 모멘트를 훑어봤더니 마스크를 파는 집이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10장에 100원이라고 했다. ‘마스크 한장에 1~2원이 아니던가?’ 혀가 내둘렸다.

제꺽 한국에 있는 친구한테 어른용 마스크 100장과 어린이용 마스크 100장을 구매대행해달라고 주문했다. 물류비까지 포함해서 1장당 5원 남짓했다. 설이 지나서 물류가 풀리면 보내준다고 약속을 받아놓고 나서야 불안하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모멘트는 온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에 대한 화제들로 도배되였다. 그러나 여전히 먼 나라 얘기였다. 초사흗날이 되자 상가와 음식점들이 륙속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날까지도 우리는 마스크를 하고 양꼬치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러다가 연변에도 의심환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연길백화지하슈퍼 라면 코너가 비여있는 사진이 위챗 모멘트에 떠돌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재빨리 배달앱을 리용해 식재료를 잔뜩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도 불안해서 아빠트단지내의 슈퍼에 전화해 식용수와 라면을 잔뜩 주문해놓았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나 지하실에 비상식량과 음료수를 잔뜩 쌓아놓은 것을 봤지 우리 집 저장실에 그렇게 쌓아놓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알콜이며 소독수도 물량이 없다고 도처에서 아우성이였다. 재미있는 것은 평소 가정에서 쓰는 청결용 스프레이나 기타 세척제에 ‘살균’이란 두 글자만 들어가면 불티나게 팔렸다.
모두가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우리 주내에서 5명의 의심환자가 양성으로 판정받았다. 연길시내는 대뜸 공성마냥 괴괴해졌다. 마트와 약방을 제외한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았고 길거리를 꽉 메우며 달리던 차량들은 오간 데 없이 간만에 길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연변병원에서 무한에 의료지원팀을 파견했다. 모든 민심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가슴이 옥죄여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면 휴대폰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공식뉴스들을 찾았고 하루 세끼 집밥을 해먹으면서 24시간 동안 마스크를 찾아 헤맸다.
마스크에 관한 얘기는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나왔다. 비상시기 손바닥만한 마스크 한장이 사람의 의식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될 줄은 몰랐다.
마스크 기부 캠페인을 벌린 친구가 정말 갖은 곤욕을 치렀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했다. 마스크 무료 나눔을 하는데 마스크를 파는 사람이 위챗으로 “혼자서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마세요. 우리 장사군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럽니까? 돈이 남아돕니까! 칭찬받고 싶어 오버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와서 찬물을 와락 뒤집어쓴 얘기며, 어떤 아주머니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해서 모처럼 집까지 가져다드렸는데 돌아가는 길에 “그깟 한장을 주면서, 사람 놀리냐? 도로 가져가!” 하고 창문으로 내리던진 이야기며… 들을수록 억이 막혀 말이 안 나갔다.
“그 사람들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어떻게든 림시 쓸 마스크 한두장씩 구할 수 있을 거야. 마스크가 없으면 밖에 안 나가도 되고. 그런데 지금 연변병원에 마스크가 엄청 부족하다고 하던데 차라리 그쪽에 기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가?”
그 친구는 정말 내 말대로 이튿날 남은 마스크를 몽땅 연변병원의 지인을 통해 기부했다고 전해왔다.
한국에 부탁한 마스크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무턱대고 기다릴 수 없어서 모멘트에 파는 것이 없나 수소문해봤더니 한장에 5원이던 마스크는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아올라 한장에 무려 20원씩 했다. 그것도 현물은 없고 현금을 내고 예약한 후 사나흘씩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 그때 10장에 100원 할 때 사둘걸, 이렇게 오를 줄 누가 알았을가… 친구들은 우스개소리로 지금 세월에 마스크를 선물하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요, 마스크를 많이 장만한 사람이 진짜 알부자라고 했다.
나라에서는 웬만하면 외출을 자제하고 부득이하게 외출할 경우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고 루루히 강조했건만 꼭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친구들은 집에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려 안해서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다며 하소연했다. 나이가 들면 자기 경험만을 믿고 기타 외부의 정보로부터 귀를 닫는다더니 웬만하면 집에 계시라고 설득해도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외출하기 일쑤라며 울상을 지었다.

일부 도시에서는 마스크가 동이 나서 패트병이나 수건 등을 마스크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공공장소에서 관리일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적반하장으로 삿대질하다가 제압당하는 몰상식한 시민들, 마스크 구매비용을 가로챈 사기군들, 기부물품으로 들어온 마스크를 빼돌려 파는 사람들까지… 물론 소부분의 사람들이지만 그야말로 마스크 한장 때문에 얇게나마 가려졌던 인간의 본성, 도덕수준이 적라라하게 드러나는 판이였다.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는 일이요, 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인데 왜 청개구리처럼 엇나가는 걸가…
이번 사태의 발원지인 호북성 무한시,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지고 있는 무한 시내에 오아시스 같은 무감염구역이 있다고 한다. 바로 화중사범대학 교직원 아빠트단지이다. 아빠트단지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초기부터 봉페식 관리를 실시했고 주민들이 적극 배합한 결과 1766명 주민중 바이러스 감염자가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전 국민 모두가 철저하게 지침을 지켰다면 이 정도로까지 사태가 번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탄식이 나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마스크 한장 착용하는 것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한국에 주문했던 마스크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내 손에 도착했다. 어린이용이 100장이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삽시에 몰려드는 것이였다.
“어른용은 있는데 어린이용은 미처 준비 못했네요. 저에게 주세요.”
나도 조금밖에 양도할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자식을 위한 엄마들의 마음이 하도 절절하여 딸내미 마스크를 절반이나 다 나눠주고 말았다.
전 중국을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 이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맑은 날씨가 거듭됐다. 설련휴는 끝난지 오란데 한주 또 한주 출근을 미루며 통지를 기다리고 있는 내내 겨울답지 않게 쨍쨍 개였다. 영문 모르는 아이들은 집에 있는 날이 지속되자 밖에 나가겠다고 칭얼대기만 한다. 요즘 사태를 아무리 설명해줘도 눈만 슴벅거릴 뿐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푸실푸실 흰 눈이 매우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 땅의 모든 바이러스를 잠재우려고나 하듯이… 나는 그날, 거의 3주 만에 가족들과 함께 외출했다. 느긋하게 눈을 치고 느긋하게 운전해서 장보러 갔다. 달팽이 채바퀴 돌리는 듯한 일상이 반복됐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풍경을 만끽하면서…
이제 매일 늘어나는 확진 환자의 수가 련속 며칠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하니 아마 이 사태도 한고비는 지나간 듯싶다. 마스크를 벗을 날도 훌쩍 가까워지겠지.
봄이 멀 손가? 멀지 않도다.  
작가:리련화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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