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무끼움


날짜 2020-06-30 09:45:21 조회


“도시와 농촌 생활중 어느 쪽이 더 편리하고 선진적일가?”고 묻는 일처럼 싱거운 물음도 없을 것이다. 이미 답안이 나온 것이라서 구구한 해석도 필요 없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볼 때 시골집 김치움에서 발효된 김치와 도시아빠트의 선진적인 김치랭장고에서 발효된 김치중 어느 김치가 맛이 있는가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오히려 맛있다는 쪽은 농촌김치일 것이다.
도시생활중 가장 불편한 점이 겨울 김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감자와 무우 보관에서도 도시가 더 불편하다. “그걸 왜 힘들게 보관해요? 먹을 만큼 시장에서 사면 되지요.”라고 말하면 현실적이여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어렵다. 단순한 보관법에서 토목학이 기초로 되는 지난날 농촌의 ‘감자 무끼움’이 좋아서 지절거리는 식이라면 무난할 것 같다.
지금은 시골밥상이라도 감자와 무우에 대한 애용이 멀어지면서 먹어도 안 먹어도 되는 무방한 존재로 변두리로 밀려났지만 식량이 귀했던 꽤 오랜 세월 동안 감자와 무우는 주식 다음의 귀중한 존재로 어른대접을 받았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지난 세기 80년대까지라고 명토를 박아도 아니라고 반발할 분들이 없으리라…
그 시절 우리들에게 ‘감지’ 혹은 ‘감재’라고 불리웠던 감자는 식량 보탬이 되는 귀중한 음식이였다. 한어 직역을 차용한 ‘노배’는 ‘무끼’라고 불리웠고 역시 배추 버금가는 남새였다.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햇감자는 7월 중순쯤 나오게 되고 이런 햇감자가 끝날쯤 9월 하순에 늦감자가 출시된다. 무우 역시 10월쯤이면 거두어들이게 되는 남새다. 그러니 비닐하우스도 없던 그 세월에 시골에서는 대체적으로 무우는 배추, 고추와 묶어서 3대 기둥남새가 되였고 무우를 채칼에 쳐서 만든 ‘채김치(룡정지방에서는 채지라고도 함)’, 깍뚜기, 동치미 등 무우를 재료로 만든 반찬들이 겨울 시골밥상을 풍미했다. 밥상에 오르는 반찬이 궁핍했던 시절 우리들은 이런 김치를 밥에 비벼서 ‘무우김치 비빔밥’을 해서 먹기도 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주비빔밥도 이렇게 탄생했다.
감자의 용도는 더 많았다. 감자밥, 감자장국, 국수처럼 가늘게 썰어서 만든다고 ‘감자채’, 갈아서 만들던 ‘감자구비’ 혹은 ‘지짐’이라 불렀던 감자전, ‘감지밴새’라고 불렀던 감자만두… 등 감자를 주원료로 한 종종 별별 음식들이 개발되였으니 단적으로 감자보관법도 발달했으리라…
그 시절 우리는 “자유의 강산에서 노래 부르자.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 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 부르자. 세상에 부러울 것 그 무엇이랴.”라는〈어린이 노래〉동요를 개사(改词)하여 “농촌의 감지떡이 맛이 있더라. 할머니 할아버지 잡쉐보세요. 이발이 없어 못 먹겠다. 네나 먹어라… 그래도 호물호물 잡수시드라.”는 엉터리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감자는 썪어도 먹는 음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리농사처럼 기온이 낮은 산간지대에서 많이 심었고 농작물중 동일한 자연환경에서 해볕에 대한 요구도 강렬하지 못한 농작물이다. 한어로 ‘토두(土豆)’라 하던데 현재는 학명으로 ‘마령서(马铃薯)’라고 하기도 하고 지구적으로 4대 량곡중 밀, 벼, 옥수수와 어깨를 겨루는 량곡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감자에 대해 현재 어떤 농작물 연구학자들은 전통적인 측면에서 곡물로 분류하고 어떤 학자들은 남새(사실 대부분 사람들도 남새로 알고 있는 실정)라고 분류하고 있는데 이런 분류법은 주식과 부식의 견해 차이로 시기와 경우에 따라 해석하고 있어서 전문가도 아닌 필자는 곡물이 풍부한 현재의 실정에서 부식인 남새로 분류하고 싶다.
문화적으로 과동용 남새라면 감자와 무우, 배추가 있는데 대개의 농촌집 김치움은 김치 항아리 몇개만 들어갈 수 있게 설계해서 공간이 크지 않다. 일손이 재고 부지런한 세대주들은 시렁을 따로 만들고 겨울에 먹을 배추라도 얹었다. 그리고 구석 쪽에 따로 감자와 무우를 보관하고 그 우에 무 속이 가지 말라고 모래를 덮어서 보관하였지만 김치움이라 자칫하면 통배추가 썩고 감자는 싹이 트고 무우는 속이 비여서 대량으로 보관이 어려웠다.
그래서 발달된 것이 필자가 말하는 ‘감자 무끼움’이다. 땅이 얼기 전인 양력 11월 중순쯤 집에서 가까운 주변의 공터거나 터밭에 둥그런 움을 판다. 깊이는 감자와 무우의 량에 따라서 정하는데 그래도 움을 덮을 흙이 두께가 1메터 20센치가 되게 했다. 농촌사람들은 장기간의 로동실천에서 한겨울 북방땅은 볕이 들지 않는 음지 쪽이라도 1메터 20센치메터 이상 얼지 못하고 얼음은 보통 80센치메터 두께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움을 판 다음 탈곡장마당에서 가져온 벼짚북데기를 움바닥에 한벌 깔고 가을 내 겉이 잘 마른 감자와 무우를 칸을 갈라서 넣은 후 싹이 트거나 속이 가는 걸 방지한다고 공간에 모래를 다져 넣고 다시 북데기를 이불처럼 두툼하게 덮는다. 움 복판쯤에 감자와 무우가 숨을 쉬게 한다고 수수대거나 담배대를 묶어서 땅 밖으로 나오게 세우고 다시 주위에 흙으로 꽁꽁 덮는다. 북데기를 덮을 때 여간만 조심해야 한다. 량이 많으면 그동안 감자와 무우가 싹이 나게 되고 옅게 덮으면 얼게 된다.
이렇게 겨울을 나고 이듬해 해동이 되는 청명을 전후해서 다시 움을 파서 감자와 무우를 꺼내는데 이런 일은 중학생쯤 되는 자녀들의 전담이다. 그날 저녁으로 감자를 한광주리를 삶는데 감자가 달콤하다는 건 감자움에서 꺼낸 감자를 먹어본 농촌 사람만이 알 수 있고 움에서 꺼낸 무우를 맛본 사람만이 무우가 인삼처럼 약이 된다는 말을 고스란히 믿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서 감자를 량곡으로 분류했는지도 모른다. 감자는 많은 전분을 함유하고 인체에 풍부한 열량을 공급하는 단백질, 아미노산 및 다양한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고 특히 그 비타민 함량이 모든 곡물작물중 가장 높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감자를 ‘제2의 주식’으로 한 구미의 표준으로 량곡에 분류한 것이 아닐가…
감자는 원래 남아메리카 안데스산악지대에서 생산되였으며 인공 재배 력사는 기원전 8000년에서 50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자는 주로 중국, 로씨야, 인도, 우크라이나, 미국 등이 생산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감자 총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하기에 감자에 대한 명칭이 이색적이다. 동북에서는 토두(土豆), 화북지구에서는 산약단(山药蛋), 서북지구에서는 양우(洋芋), 천진에서는 새두(塞豆), 절강일대에서는 양번우(洋番芋), 광동, 향항 지역에서는 서자(薯仔), 그외에도 프랑스에서는 땅속사과라고도 한다니 지방과 나라에 따라 희한한 이름이 많다.
말이 나온 김에 삽화 같은 감자 이야기를 더해보자. 지난 세기 인민공사화 시절 말단 생산단위인 생산대에서는 토지대장(土地台账)에 따라 할당된 징구량을 국가에 바쳐야 했는데 임무를 완수하면 인당 겉곡으로 360근이였고 초과 완수하면 인당 510근이였다. 두만강 류역의 한 마을에서 감자를 대량으로 심어서 징구임무를 완성하지 못하자 관련 부문에서는 감자 너근에 량곡 한근으로 충당해서 량곡을 더 바치라 해서 사원들이 “감자가 남새냐? 량곡이냐?” 바투 물어서 징구량을 재촉하는 관련 부문을 난처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감자는 량곡이기도, 남새이기도 하다.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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