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야기


날짜 2020-07-20 09:20:23 조회


먹는 음식시간에 대한 우리 민족의 명칭은 때와 내용물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다. 밤에 음식을 먹는다는 방언-‘중세’를 풀이해도 밤참, 야참, 야찬, 주전부리, 군것질, 군입정, 야간특식… 등 희한한 이름의 류의어들이 아주까리에 개똥참외 달라붙듯한다. 이외에도 내용물에 따라 개떡, 거친 밥상이라고 조찬(粗餐), 그릇에 넘치게 담았다고 고봉밥, 먹다가 남긴 밥은 대궁밥 등 일일이 렬거하기도 숨이 차다. 여기서 이 글의 주제인 ‘중세’는 밤참에 해당하는 방언으로 사전에도 밤참을 이르는 함경북도 방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럼 이 ‘중세’의 어원은 어디에 있을가? 어렵지 않게 중식에 두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기실 중식이란 점심밥, 점심식사를 이르는 말인 데도 우리 선조들은 저녁식사와 자리에 드는 ‘중간(사이)’에 먹는 식사 혹은 밤중에 먹는다고 ‘중세’라 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의학에서는 ‘중세’가 백해무익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휴면기 소화계통에 무리를 주고 소식을 권장하는 현대의 인체과학에 그 근거가 있기에 마땅히 지양(止揚)되여야 할 음식습관이다.

‘중세’는 습관되면 마약 같은 중독성을 갖는다. 저녁 그때쯤이면 주방의 랭장고문을 열어보고 식탁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되면서 아무 음식이라도 꼭 입질해야 시름을 놓는다. 그래도 지금은 라면이 흔전해서 얼큰한 라면국물이라도 먹을 수 있지만 그 시기엔 ‘중세’로 먹을 야참이 마땅치 않아 겨울밤이면 대체로 김치움에서 ‘생노배’라고 불렀던 무우를 꺼내서 먹기도 했다. 때론 잘 익은 배추김치를 뿌리 쪽을 베고 그대로 쭉-쭉 찢어서 먹었는데 그 시기 김치를 먹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취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곡괭이를 가지고 강변에 나가서 얼음을 꺼서 가져와서는 얼음덩이를 녹여서 먹기도 했다. 필자의 농경형 ‘중세’ 습관은 지금까지 진행형인데 저녁에 술자리를 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식사를 했는 데도 꼭 물에 밥을 말아서 고추장이라도 곁들여 먹어야 한시름 놓는다. 이런 현상을 야간식사증(夜間食事症) 혹은 야참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들은 이런 현상을 “밖에서 먹은 음식이 속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속에 떨어지게’ 먹으면 말 그대로 증후(症候)가 만만찮다. 장밤 꿈을 꾸고 이튿날 아침에 기상하면 속이 더부룩하고 기분이 엉망이다. 번번이 ‘당장 고쳐야지’ 하고 수없이 다짐해보았지만 때가 되면 그 버릇이 마약같이 잔인하게 괴롭힌다. 그래서 집사람이 몸에 좋다는 과일 같은 걸 준비해놓고 있지만 그래도 매운 고추장을 푼 물에 밥을 말아 먹기보다 못하다. 농민식이라고, 심혈관에 안 좋은 ‘중세’라고 지청구를 듣지만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힌 ‘중세’음식 습관은 치유가 불가능할 것만치 유혹적이다.
그래도 이만한 건 약과다. 진짜 무서운 ‘중세’는 지난 세기 생산대시기 밤탈곡장에서 일어났다. 생산대시기 탈곡을 시작하면 청년들은 대부분 야간탈곡에 나섰다. 지금의 말로는 야근인 셈이다. 밤탈곡이 끝나면 대체로 새벽 두시쯤 되는데 그 뒤에 꼭 ‘중세’를 먹군 했다. 연변 농촌마을들의 그 시기 상황이 대개 비슷했다. 밤참으로는 쌀밥과 뜨근뜨근한 모두부였다. 가마 안에서 기껏 달아오른 두부는 입천청을 데일 지경으로 뜨거웠지만 배가 고팠던 청년들은 저마다 모두부에 고추가루를 켜로 뿌리고는 기껏 먹군 했다. 우리들도 자신들의 용감한 ‘먹새(먹성)’에 억이 막혔는지 모두부에 고추가루를 뿌리는 식습관을 돼지죽에 ‘나뱃겨(쌀겨)’를 뿌리듯한다고 자조(自嘲) 하군 했다. 그 자조가 재미있어 몇년 전에 연변문학 편집들과 출판사 뒤골목의 작은 장국집 갔다가 모두부를 청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거 나뱃겨를 줍소.”라고 넌지시 롱지거리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인차 알아듣고 “호호” 웃으며 고추가루를 듬뿍 가져다 주었다. ‘중세’의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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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산대시기의 ‘중세’ 풍경이였다면 혼사집 ‘중세’도 한쪼각 풍경을 차지한다. 한국과의 생활문화교류에서 우리들의 저녁 술문화에 ‘2차’, ‘3차’라는 용어가 직수입되여 주당들에게 흥그러운 신생 술상문화를 선물했지만 캐고 보면 우리들의 그 시절 ‘중세’가 사실 ‘2차’ 음식 문화의 원조다. 단 자리만 옮기지 않을 뿐이다. 신랑신부를 축하한답시고 까래 우로 뽀얀 먼지가 풀썩거릴 정도로 춤추고 뛰고 나면 자정 무렵이 다 돼 속이 컬컬해진다. 그때면 주인집에서 ‘중세’를 갖추는데 맥주를 몰랐던 그 시절 ‘옥수수속꽤기’라고 불렸던 옥수수 속고갱이로 병마개를 대신했던 60도 술이였지만 그 술맛이 지금도 입에 남아있을 만치 즐거운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아마 ‘중세’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게다.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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