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지부생활 >> 홍색관광

초연 속에 핀 진달래


날짜 2020-10-10 13:13:14 조회


죽음을 초개같이…

          황정신 렬사

1910년, 황정신(黄贞信)은 연통립자(烟筒砬子)에서 태여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항일운동을 이어오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혁명의 씨앗을 싹틔웠다.
1932년 3월, 황정신은 훈춘현 반일회에 참가하여 항일선전을 책임졌다. 같은 해 7월, 조직에서는 그녀를 훈춘현 연구(烟区, 지금의 양포향) 부녀부에 파견하여 통신련락과 반일선전 사업을 맡겼다. 그녀는 광범한 부녀군중에게 항일구국의 도리를 적극 선전하고 전선지원 사업을 잘하도록 보장하였다. 동시에 항일련군 부대의 빨래와 바느질도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부대에 탄약과 식량도 보내주었다. 한편 그녀는 연구에서 경상적으로 200여리 밤길을 걸어 춘화(春化)에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대담하고 세심하며 슬기롭고 용감한 황정신은 매번 편지 보내는 임무를 순조롭게 완수하였다. 그렇게 혁명투쟁의 단련과 시련을 거친 그녀는 신속하게 성장해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당시 훈춘현에는 ‘구국군(救国军)’(항일전쟁시기 국민당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이 령도한 특무유격무장대) 대오가 있었는데 왕옥진이 총사령을 맡고 있었다. 당조직에서는 황정신을 파견하여 ‘구국군’ 내부에 들어가 선전사업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왕옥진 부대에 들어간 후 그녀는 우선 정치공세를 전개하여 우리 당의 정책을 선전하였다. 장병들을 감화시키기 위하여 그녀는 헌납해 모아진 천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여러 민족 인민들을 단합하여 공동으로 대적하자’는 등 글씨로 수놓은 손수건을 만들어 병사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반복적이고 세심한 사업 끝에 병사들은 하나, 둘 항일구국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933년 2월, 왕옥진 부대는 일본놈들한테 투항하였다. 그러나 황정신의 선전사업을 거친 제13퇀 부분적 장병들은 우리 당이 령도하는 항일대오 훈춘현 유격대 제2대대에 가입하였다. 6월의 어느 날, 중공훈춘현위 서기 서광 동지가 연구유격대를 찾아왔다. 간고한 환경 속에서 당에서 파견한 지도자를 만나게 되니 유격대 대원들은 아주 기뻐했다. 그날 한밤중, 전사들이 막 잠이 들 무렵 갑자기 ‘탕-’ 하는 신호탄 소리가 울렸다. 알고 보니 마을에 특무가 있었는데 마적달 일본수비대와 몰래 내통하고 있었다. 백명이 넘는 적군들이 사면으로부터 들이닥치면서 유격대를 일망타진하려고 시도하였다.
“무기를 지닌 동지들은 얼른 산으로 전이하여 반격준비를 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몸을 피하시오!”
서광 동지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전사들은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이하기 시작했다. 황정신과 몇몇 동지들도 황급히 산으로 오르려고 할 때였다.
“멈춰라! 더 뛰면 쏜다.”
갑자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적에게 포위된 것이였다.
이 요긴한 관두에 동지들의 안전을 먼저 고려한 황정신은 앞에 멈춰섰던 몇몇 동지들을 향해 낮은 소리로 “빨리 가시오!”라고 명령하고 나서 주저없이 동지들과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서 적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그녀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맹렬히 추격했다. 순간 적한테 잡히면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그녀는 3메터 높이의 바위에서 몸을 내던졌다. 바위 아래 물웅덩이에 빠진 그녀를 발견한 놈들은 총을 빼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딜 더 도망가는지 보자! 투항해!”
팔에 총상을 입은 채로 까무러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힘겹게 기여나와 유격대의 초막병원으로 호송되여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부상으로 몸이 허약해 도저히 전선에 투입될 수 없었던 그녀는 초막병원에 남아 부상자를 간호하는 데 힘을 보탰다.
1933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일본침략자들은 연구 남구 근거지 일대를 3개월 남짓이 련속 토벌하였다. 11월의 어느 하루, 토벌대가 갑자기 초막병원에 들이닥쳤다. 황정신은 힘껏 포위를 뚫고 뛰쳐나왔지만 중상을 입었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만 얼음 우에서 미끌어 넘어지면서 체포되였다. 초막에 감금된 그녀는 적들의 온갖 고문을 받았다.
“공산당 유격대는 어디에 있나?”, “사람은 얼마나 되나?”
안경을 쓴 장교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모른다!”
큰소리로 웨치고 분노한 눈길로 적을 노려보는 황정신을 향해 적들의 철사채찍 고문이 가해졌다. 몸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흘려내렸고 고통스러워하던 그녀는 그만 기절했다. 정신을 차린 후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져도 변절자가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의 혀를 힘껏 깨물었다. 화가 단단히 난 적들은 초막에 불을 달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초막을 태웠고 또 그녀마저 태웠다. 적들이 자리를 뜬 후 피난을 떠났던 동지들은 페허가 된 초막에 다시 돌아와 그녀를 발견하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때 김원익이 행여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서 살폈는데 황정신의 심장은 여전히 미약하게 뛰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다시한번 목숨을 건지고 전우들한테 돌아왔지만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은 말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신체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항일대오에서 투쟁을 이어나갔다. 스스로 깨문 혀로 말을 못하면 필을 무기로 삼아 일본놈들이 저지른 죄행을 폭로하였다.
1934년, 일본침략자들은 더욱 란폭하게 항일근거지를 향해 ‘포위토벌’을 감행했다. 음력 섣달 그믐날, 300여명의 적들이 대포, 기관총 등 무기를 끌어다 산을 수색해나섰다. 그때 황정신과 다른 두 전우 안서지(만족), 최현숙이 마적달 근거지 초막에 숨어있었다. 벌떼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피해 바위 쪽으로 이동하였지만 결국 놈들의 포위망에 들고 말았다. 세 녀전사의 마음속에는 모두 하나의 같은 신념이 있었다. 죽을지언정 적의 손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였다. 세 녀전사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바위 아래로 뛰여내렸다. 뒤따라 온 일본놈들은 세 녀전사에게 사정없이 총격을 가했다. 용감무쌍한 항일 녀영웅 황정신은 그렇게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해 황정신의 나이는 24세였다.   
 〈다음기 계속〉
 제공: 왕청현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엄현수 편역
작가: 편집: 사진:

핫 클릭

  1. 1 도문통상구 대교도문통상구 대교
  2. 2 락연공원락연공원
  3. 3 돈화 한총령풍이원항전유적지돈화 한총령풍이원항전유적지
  4. 4 왕청현항일전쟁기념관왕청현항일전쟁기념관
  5. 5 ‘무라리’와 ‘피통’‘무라리’와 ‘피통’
  6. 6 왕청현 렬사릉원왕청현 렬사릉원
  7. 7 안도현혁명렬사릉원안도현혁명렬사릉원
  8. 8 동북항일련군정신 영원하리동북항일련군정신 영원하리
  9. 9 초연 속에 핀 진달래초연 속에 핀 진달래
  10. 10 초연 속에 핀 진달래초연 속에 핀 진달래

칼럼

主管:中共延边州委组织部 主办: 中共延边州委组织部 出版: 中共延边州委支部生活杂志社
地址:吉林省延吉市天池路4258号 邮编:133000 电话: 0433-2513269 E-mail: ybzbsh@163.com
吉ICP备:17002320号 技术支持:ppbb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