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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한번 놀림에 행복 하나 더해져

― 조용군 교원 꿈나무들과 함께 새 인생 2막을
날짜 2020-10-12 10:21:37 조회


“우리 가락을 배움으로써 우리 전통의 소리를 알고 전통적 정서를 함양하며 바른 인성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월 15일에 만난 연길시신흥소학교 조용군(39세) 음악교원, 웃음 가득한 얼굴에 당차게 스스로의 소신을 밝히는 자세가 너무 인상적이였다.
소학교 4학년 무렵 부모님과 함께 예술학원 공연을 보러 갔던 어린 소년 조용군, 당시 연변대학 김성삼 교수님의〈백도라지〉연주를 듣고 가야금의 선률에 감전되는 기분을 받았다. 악기의 이름도 정확히 몰랐지만 가야금 소리에 남다른 매력을 느낀 그는 그때의 전률을 가슴속에 품게 되였다.
일찍 20살 때부터 관광안내업에 뛰여들어 일을 시작하게 된 조용군은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과 여유를 찾다 보니 어릴 적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가야금이 배우고 싶어졌다. 학원을 찾아다니면서 가야금을 알아가고 소리를 익히게 되다 보니 가야금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여 전공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별로 돈도 되지 않고 발전가능성도 희박한 전통음악을 할지 아니면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인으로 살 것인가를 두고 그는 량자택일의 고민을 해야 했다. 그는 생각 끝에는 ‘마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가 아닐가’ 하는 결론에 다달았다.
물론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그래도 자신의 꿈을 한번 펼쳐보리라 다짐하며 고3 대학입시반에 편입되여 필을 들고 입시준비에 들어갔다. 학창시절 공부는 썩 잘하는편이 아니였다지만 대학입학이라는 목표가 정해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소 늦게 시작한 공부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 1차 월고에서 68명중 64등을 했는데 시험에 참가하지 못한 4명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상 꼴등인 셈이였습니다.” 대학입시 석달을 남겨놓고 그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안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루 두세시간씩 자면서 노력을 한 끝에 조용군은 2008년, 28세의 늦은 나이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가야금전공에 입학하게 되였다. 꿈꾸던 가야금 전공을 시작하게 되였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하다 보니 손이 굳어져 노력은 곱절 더 필요했다. 그래도 자신이 꿈꾸었던 가야금수의 꿈이였기에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대에 서서 화려한 가야금수로 멋진 공연하는 것을 동경했던 조용군은 신흥소학교에서 주최한 어느 행사에 참가하면서 “저희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한테 가야금을 배워줄 의향이 없나요?” 하는 학교측의 제의를 받았다. 가야금 연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전업적 료해가 없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잘 가르칠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비록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항상 즐기면서 해야 한다.” 마침 대학시절 스승님이신 연변대학 예술학원 최미선 교수님의 조언이 생각나면서 결심이 섰다. “어릴 적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가야금수로서의 책임감과 전통음악 전승에 대한 의무감이 결심을 내리게 된 계기였습니다. 가야금을 전업적으로 배운 교원이 직접 아이들에게 수업하는 경우는 우리 주에서 신흥소학교가 최초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 수업은 리상적이지 못했다. 소학생들을 대상한 전문교재도 없었을 뿐더러 대학에서 배웠던 모식 대로 학생들한테 가르치려다 보니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아주 씁쓸한 기억으로 남게 되였다고 했다. 초반에 학부모들도 가야금이라는 전통악기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여명 되는 학생들에게 학업외 여유시간에 가야금을 배워주었고 기회가 생겨 연변텔레비죤 음력설문예야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소문이 났다. “학부모들도 자신의 아이가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것을 보는 순간 과외활동으로 배운 것이 이 정도 실력까지 될 수 있는가?”면서 인식이 크게 바뀌였다고 했다. 이후에도 북경, 향항은 물론 해외공연에도 초청이 되면서 가야금수업이 인정을 받아 공식적인 음악수업으로 자리잡게 되였다.
당면 연길시신흥소학교라 하면 가야금을 통한 교육이 또 하나의 명함장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가야금을 중시하는 학교측과 가야금을 좋아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지지해주는 학부모들까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흥소학교에 부임해 와서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교 모든 학생들이 민족악기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17년부터 가야금을 정식으로 음악수업에 포함시켰습니다. 조용군 교원이 우리 학교에 오면서부터 학생들이 전통음악, 민족악기를 다루게 되였고 시시각각 문화로 아이들을 감화시키게 되였습니다. 조용군 교원은 늘 강한 책임감으로 조선족 전통문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한수군 교장이 조용군 교원에 대한 신뢰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현재는 학교측의 지지로 일류의 음향설비와 100대가 넘는 가야금을 보유하고 있고 가야금수업에 참가하겠다는 학생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 학생수도 160명 가까이 늘어났고 예술특장생으로 고중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야금은 손끝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보니 특히나 살이 얇은 아이들은 손에 물집이 잡히기 쉽다. 하지만 여태껏 수업하면서 손이 아프다는 학생들은 있어도 손이 아파서 가야금을 못하겠다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손이 아픈 것보다 가야금을 뜯는 것이 더 재밌어서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가’라고 조용군 교원은 생각한다.
신흥소학교에서 가야금을 배워주었던 첫 제자들이 어느덧 고중 2학년생이 되였다. “먼 후날 아이들이 대학교에 간 후 학교문예활동에서 조선족 전통의상을 입고 가야금을 연주하면 우리 민족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쉽지만은 않은 길이지만 우리 조선족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취재를 통해 조용군 교원은 어떤 시류에 편승하는 상황론자가 아니라 떳떳이 스스로의 마인드를 고집해 실천하는 소신이 있는 교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가야금 수업이 3, 4학년 수업에서 그치는 현상황이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가야금이 의무교육단계에서 음악수업중 필수과목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자 바람이라고 전했다.
류행을 따라 현대적인 것을 좇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지만 필경 마음 한 구석에 우리 전통적인 흥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조용군 교원은 조선족 전통음악에 대한 흥취를 발굴해주고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사업에 자신만의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손끝을 통해 현에서 울리는 가야금 선률이 아이들만의 색갈을 녹여 소리 이상의 감동을 전할 것을 기대해본다.  
작가:김철 신염연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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