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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서리’, ‘즌새질’과 ‘즌자랑’


날짜 2020-12-18 15:29:0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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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마 10살 무렵일 것 같다.
“이거 한로 절기가 들어서더니 날씨 챙챙한 걸 보면 즌서리질할 것 같구먼…” 마을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흘리면 그날 자정 무렵 “서리 치러 나가기우.” 밖에서 대장이 동원한다. 사원들이 저마다 이불을 차던지고 ‘비지깨’라고 불렀던 성냥이거나 동구란 톱이바퀴를 손으로 돌려 불을 켜는 라이터를 가지고 나간다.
“서리를 친다”는 ‘서리’라는 명사와 ‘치다’라는 동사로 조합된 문화어이지만 이건 어페다. 그렇다고 방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반세기 전 무상기가 짧았던 연변의 산간지구마을, 고산지구에서 낮과 밤 시간이 같아지는 추분(秋分)계절을 지나 찬이슬이라는 한로(寒露)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이 두 계절을 겨냥하고 연변의 말은 논밭머리에 쌓아놓은 나무에 불을 지른다는 말이다. 현재의 영농은 과학적인 종자개량과 선진적인 육모법으로 무상기를 거의 념두에 두지 않지만 지난 세기 50~70년대는 농사에서 무상기 계산이 민감했다. 벼와 콩, 옥수수를 비롯하여 대부분 곡식들이 만숙종이기에 서리가 이르게 내리면 농사가 결딴나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는 불구경과 물구경이 가장 원시적인 볼거리다.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도 몇번 나가보았다. 하늘에는 뭇별이 총총하고 얼굴에 처음으로 맵짠 기운이 느껴졌지만 불구경하러 기어이 논밭머리로 나간다. 멀리서부터 먼저 나온 사원들이 논밭머리에 지른 불이 활활 타는 정경이 보인다. 자정 무렵에 시작한 불놓이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무렵까지 진행된다. 서리(霜)는 대기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은 것. 땅 표면이 복사 랭각으로 차가워지고 그 우에서 수증기가 승화하여 생긴다고 과학적인 해답이 나온 현재도 사람들은 ‘서리가 내린다’로 표현하는데 마치 서리가 비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걸로 착각한다. 지금 보면 논밭머리에 불을 지펴 공중에 날아오른 연기와 열기로 기온을 낮추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니 그 시기 사원들은 8월부터 야산에 올라가 섶나무를 하고 그걸 논밭머리에 군데군데 쌓아둔다. 그 시기부터 농촌의 사원들은 서리에 대해 ‘무서리’, ‘즛서리’로 된소리로 표현했는데 풀이하면 ‘경서리’, ‘된서리’다. ‘무서리’란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 혹은 ‘경한 서리’다. 이런 방언은 대개 비슷하지만 간혹 협소한 지역에서만 통용된다. 류다른 방언인 ‘즌서리’란 대개 귀찮다는 뉴앙스를 풍긴다.

가을에 ‘즌서리’가 있다면 여름에는 ‘즌새질’이라는 ‘는개(는개비, 霧雨)’가 있다. ‘는개’란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말하는 것인데 시골사람들은 ‘즌새’ 혹은 ‘즌새질’로 표현하는 이 방언도 역시 귀찮다는 뜻이다. “보슬비에 옷이 젖는다.”란 속담은 ‘즌새질’이란 ‘는개’에 대한 폄훼다. ‘는개’는 곡식의 성장이 큰 도움 없으니 외면받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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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도 오래전에 출시된 “자랑 끝에 쉬 쓴다.”는 속담이 유효하다. 이 속담을 줄인 방언이 ‘즌자랑’이다. 여기서 ‘즌’이란 ‘질다’의 방언으로 하지 말아야 할 질척한 자랑이고 남들이 비웃는 자랑이다. ‘즌자랑’하는 사람들을 여겨보면 기실 악한 사람은 아니고 시간과 장소, 대상을 잘못 파악한 것 뿐인 데도 ‘즌자랑’으로 격하된다.
할머니의 소통이란 대체로 푸념과 자랑으로 생활적으로 일색한다. 우리들은 지금도 로인정에서 아래와 같은 정경을 목격할 수 있다. 한 할머니가 슬쩍 며느리 자랑을 하자 다른 할머니가 “즌자랑 말라우. 며느리자랑은 장독 세개 먹인 후에 자랑해도 늦지 않다네.” 하고 면박 준다.
지난 어떤 한시기 조상들이 못살고 가난했다는 력사가 자랑스러워했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 집은 대대로 빈농이요.”
“뭐? 그까지 빈농이 머가 대단하다구 즌자랑이우? 우리 집은 조상 몇대로 내려오면서 고농이요.” 기실 개념상 빈농과 고농(고용농, 고용농민)은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계층이였지만 고농이 빈농보다 하층개념으로 알고 착각한 것이다.
“체나우(물러나라). 듣자듣자 하니 빈농, 고농이 무슨 큰 게라구 여기서 즌자랑 왕왕 거리오? 우리 집은 조상 10대로 내려오면서 왕빈농에 왕고농이라우. 어찌나 가난했던지 바지도 없어 몸도 가리지 못하고 다녔지므.” 기실 여기 자랑에서 나온 ‘왕빈농’, ‘왕고농’이란 문화어에도 방언에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방언이 효력이 있었을 때가 있었다니 고민해볼 문제다. 조상들의 지혜와 부지런함으로 쌓은 재부가 후세들에게 부담거리로 되면서 그 전통과 맥을 끊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즌서리’, ‘즌새질’, ‘즌자랑’… 평민들의 언어조합 창조력에 머리가 숙여진다.(55)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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