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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리와 ‘신깔개’


날짜 2021-01-08 09:42:1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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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리는 문화어인 데도 우리에게는 방언같이 여겨지는데 이는 우리가 평시에 사용빈도가 적기에 나타나는 착각이기도 하다. 쉽게 해석하면 옥수수껍질과 ‘신깔개’라 했던 신창이다.
그런데 이 오사리가 ‘옹군애민(拥军爱民)’과 련계되는 게 재미있다. 우리들은 옹군애민의 력사를 해방 후로 알고 있는데 기실 ‘拥军者, 民也; 爱民者, 军也’ 낡투와 이에 파생한 ‘军爱民, 民拥军’에 기반을 두었으니 우리들의 옹군애민은 연안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3년 10월 11일, 모주석은 변구와 근거지에서 “군대를 옹호하고 군속을 우대, 군대는 정부를 옹호하고 인민을 사랑해야 한다.(地方拥军优属,军队拥政爱民)”는 취지로 ‘쌍옹(双拥)방침’을 밝혔고 그해 음력설기간 섬강녕 변구 주석 림백거(林白渠), 부주석 리정명(李定銘)이  ‘군대의 결정 옹호(拥护军队决定)’에 관한 ‘변구정부에서 옹군운동의 월로 지정할 데 관한 지시(边区政府关于拥军运动月的指示)’를 발표하고 1월 25일부터 2월 25일까지를 군옹군운동의 월로 확정, <항일군가족우대조례>를 재개정해 발표했다. 팔로군 류수병퇀 사령부(八路军留守兵团司令部)와 정치부는 25일 ,정부에서 인민을 애호할 데 관한 결정(关于拥护政府爱护人民的决定)>을 반포했다. 이때부터 섬감녕지구와 근거지 군대가 주둔한 지방에서 ‘쌍옹’ 활동이 활발해졌다. ‘옹군애민’은 이렇게 출시되여 ‘관병일치’와 쌍벽이 되여 인민해방군 건설에 지대한 공헌을 한 준칙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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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훈련(拉练)은 말 그대로 전시를 대비해서 군인들이 군영을 떠나 장거리 행군과 훈련을 진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세기 60년대말과 70년대초 군인들이 야영훈련이 잦았는데 대개 겨울 시기에 많았다. 군인들이 마을에 주둔한다고 하면 ‘따챈잔(打前站)’ 이라는 선견대들이 먼저 와서 대대 간부들과 녀성들이 안내하는 대로 집집이 웃방문을 열어보고는 벽에다 색분필로 2 혹은 3수자를 갈겼는데 방 면적을 보고 숙박인원을 정하는 것이였다. 우리 조무래기들이 제일 기뻐했다. 군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자기 집에 숙박을 정한 군인이 급이 더 세다고 뻐기기도 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 당시 군인들이 소지했던 무기들이 후진적이였고 군인들에 대한 화식도 좋은편이 아니였지만 우리 조무래기들이 서넛이 들어가서 목욕해도 될 커다란 늄가마에 삽으로 밥을 뜨는 걸 보면서 군인들을 부러워했다.
그 시기 우리 집 웃방에 련장과 통신원이 숙박을 정했는데 할머니가 통신병이 메고 있던 두개의 군용 물병을 욕심냈다.
“저 스이도(물병) 큰사램(아버지)이 낭기(나무)하러 갈 때 물 넣어서 가믄 조켔다. 혼자서 두개씩이라니 하나 달래볼가.” 지금 보면 통신원이 잠시 련장을 대신해서 물병을 휴대한 것인 데도 할머니는 기어이 어린 통신원의 손에서 그 물병을 가졌다. 조선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했던 그 련장이 할머니의 눈길과 손길을 보고 자기 물병을 욕심낸다는 걸 알고 ‘애민’ 한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 뿐이 아니다.
이 세상 최고의 한어수준인 “니성수마?”는 세기의 유머로 남아서 지금도 안해, 아들, 이제 손녀에게도 물려줄 ‘유산’으로 남아있다. 마을 한족들이 다 알아듣는 할머니의 그 연변식 “니성수마?”에 눈이 부리부리했던 산동 출신 군인이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아? 썬머?(啊-啊, 什么?)”를 련발하면서 안타까워해서 누나가 “你性什么?”라고 알려주어서야 겨우 알아듣고 자기 성이 랑(郎)이라는 데도 그냥 ‘낭’이라고 발언하시던 할머니, 평생 한족들과 대화가 없었던 할머니의 “니성수마?”는 초시기 ‘연변식 한어’이다.
군인들은 숙박을 정하는 대로 쓸어나와서 저마다 마당을 쓸어주고 물을 긷는 활약을 보였는데 우리 집에 방을 잡은 군인들은 물을 긷지 말라는 말에 얼떠름한 표정을 보여서 군인들에게 집 부엌 쪽에 있는 ‘오지우물(도자기로 만든 우물)’을 보여주었더니 저마다 이게 머냐? 신비한 표정을 보였고 어떻게 물을 긷는가 의심해서 손수 시범을 보여주었더니 ‘물긷깨’라고 아무렇게나 불렀던 드레박 밑을 신기하게 살펴보면 자기들끼리 야단이였다. 당시 우리 공사(향진) 대부분 마을에서는 도자기공장과 가까운 우세로 집집마다 집안에 수직으로 우물을 파고 거기에 굴뚝용 도자기로 세워서 집안에서 길을 수 있는 우물을 만들었다. 이 우물에서 첫째 포인트는 드레박이다. 아구리가 좁은 굴뚝용 도자기 형태를 따라 길쭉하게 만든 드레박 밑에 네모난 구멍을 파고 그 구멍보다 둘레가 약간 큰 두터운 고무를 대고 그 고무에 무게를 가하느라고 철판을 덧대서 개페기로 사용했다. 바가지 무게로 물이 구멍으로 드레박 안으로 솟아들어오고 다 차서 가라앉을 무렵 당기면 그 고무 개페기가 자동으로 닫기면서 그냥 물을 퍼올리게 되는 원리다. 군인들은 처음으로 보는 집안 우물에 큰 흥취를 가졌다.
보통 한 마을에 련급 단위로 숙박하는데 이때면 마을에서 ‘옹군애민’한다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찰떡을 쳐서 대접하면 좋겠는데 그 많은 군대들에게 대접한 떡쌀이 어디에 있수? 떡쌀이 있다 해도 그 많은 찰떡을 어찌 쳐내겠수.” 옹군애민 앞장에 나서는 녀성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온 ‘옹군’이 군인들이 매일 걸으니 신창이 빨리 해져서 신창을 만들어주자는 마을 단위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이번에두 신깔개라던데, 헌천이라도 많아야 만들거나 하지.” 동원하러 온 부녀대장에게 집집마다 난처한 기색이다. “정 없으면 오사리로 속을 넣고 신바닥 만들 수밖에 없지므.” 이때부터 마을 녀성들은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도 오사리를 담은 광주리를 끼고 오갔다. 집집마다 오사리를 비축해두지 않았으니 없는 집들에서 빌어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가석한 것은 군인들이 떠나서 방을 정리하다가 구들 밑에서 우리가 만들어준 그 ‘신깔개’가 나오고 ‘장재태’라던 마당 울타리를 고정하는 가늠대 우에 ‘신깔개’들이 끼워져있었다. “군대들이 안 가지면 그럼 큰사람(아버지)이 깔게…” 싫증내면서 마지못해 자신의 신발바닥에 까셨던 아버지도 며칠 만에 다 망가져버린 그 오사리 신창을 견디지 못한다고 투덜거렸다.
“속에 오사리를 넣으면 겉에라도 좋은 천 대야지.”
“집에 어디 좋은 천이라도 있수?”
구차했던 세월이라 신창을 만들 천도 없었다.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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