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자문화궁에 깃든 사연


날짜 2021-05-12 15:01:33 조회


‘공인문화궁’
건축이란 시대이다. 다시말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요소들의 합성으로 조합되는 복합적인 결과물로서 시대의 흐름을 따른 형태의 양식으로써 표현된다.
주덕해 주장 시절 건설된 ‘로동자문화궁’은 력학적인 건물보다 정치 공학적인 상징성을 다분히 내포한 건축물로서 신형 도시로 분류되는 연길에서는 ‘구건물’에 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주덕해 주장의 한토막 일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복원해본다.
2010년 1월, 하루 아침 사이에 ‘로동자문화궁’이 훼기되였다. 연변에서 ‘로동자문화궁’보다 ‘공인문화궁’으로 더 널리 알려졌던 ‘로동자문화궁’은 로동자들의 휴식쎈터라는 건축기능과 연변의 당, 정 행정장소라는 상징건물로서 외양은 다분히 서구적인 양식을 많이 본받았다. 대약진 시기였던 1958년 5월 30일자 연변일보 1면에는 <총로선에 고무되여 건설속도를 가속화>란 기사 한편이 실렸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격앙되고 천사만감이 교차되여 아래에 인용해본다.
“본사기자 보도: 중공 8대 제2차 회의와 회의에서 제정한 사회주의건설 총로선은 지금 한참 연변의 로동자와 근로인민의 락원 연변 공인문화궁을 건축하고 있는 연변공정공사 건축공들의 심정을 격발시켰으며 막대한 고무를 받게 하였다.
이 문화궁의 건설은 당과 정부가 소수민족지구의 근로자와 근로인민에 대한 또 한차례의 두터운 배려이다. 61만 6000여원을 투자하는 이 문화궁의 건축면적은 5900평방메터에 달한다. ‘T’자형 3층으로 세워지는 이 문화궁은 연변공정공사 설계가들에 의하여 설계되고 우리 주 한족과 조선족 남녀로동자들에 의하여 건축된다. 내부에는 극장, 문화활동관, 체육관 세개 부분으로 나뉘여있는데 3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체육관에서는 롱구, 배구, 탁구 등 체육을 할 수 있다.
총로선에 고무된 로동자들은 원래 10월에 준공하기로 한 계획을 한달 앞당겨 자치주 창립 6주년 기념일인 ‘9.3’에 개궁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총로선의 등대 아래에 미신을 타파하고 사상을 해방하고 과감히 일하고 행동하는 고상한 품성을 발휘하여 왕년보다 반달이나 앞당겨 시공에 착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설계하는 한편 시공하는 방법을 채취함으로써 건설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 종업원들은 ‘한달 앞당겨 9.3에 개궁하자’는 전투적 구호를 내걸고 많이, 빨리, 잘 절약하면서 비기는 로동경쟁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운수로동자들은 모래와 돌을 나르는 새 방법을 연구하여 창조함으로써 운수거리를 절반이나 단축시켜 온 공정에서 모래와 돌의 운수비를 1820원이나 절약하게 하였다…”
 
“당장 이 자금 돌리시오.”
필자가《주덕해 평전》집필시 주덕해 주장의 장녀 오영채는 “아버지는 종래로 누구하고 성을 내는 법이 없었지만 한번 성을 내면 무서웠습니다…”고 회억했다. 실제로 주덕해 주장은 성정이 느긋하고 리해심이 많아 여간해서는 노해서 부하들을 질책하는 법이 없었지만 일단 화를 내면 무서웠다고 한다.
1958년이라면 주덕해는 길림성정부 부성장(주: 길림성인민정부는 1954년에 반포한 헌법규정에 의해 1955년부터 길림성인민위원회라고 개칭했음. 주덕해는 1기 길림성인민위원회 8명의 부성장중에서 서렬 5위, 2기에서 12명 부성장들 가운데서 서렬 5위, 3기에서 11명 부성장들 가운데서 서렬 4위)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제1서기, 자치주 주장, 연변군분구 제1정위, 주정협 주석, 중공 제8차 전국대표 대회에서 중앙후보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기 민족위원회 부주임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당시 주덕해는 국가재정부 부장으로 사업하던 리선념을 통하여 ‘로동자문화궁’ 건설 전문자금 60만원을 획득하였다. 당시에도 거금이였다. 하지만 언녕 조달되여야 할 자금이 소식이 없었다. 하여 주덕해 주장은 다시 재정과(국)를 통해 국가재정부 예산국(사)에 문의를 했는데 그 자금이 언녕 길림성재정청에 조달되였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리하여 다시 성재정청에 문의했지만 알아보겠다는 시원치 못한 대답만 받았다. 무언가를 직감한 주덕해는 당장에서 재정과(국) 일군들을 거느리고 장춘으로 향했다. 당시 도문철도국에서는 객차 보이라실에 림시로 2층 침대를 만들고 주덕해 주장 전용으로 제공했지만 주덕해는 수하를 거느리고 갈 때면 종래로 혼자서 침대차를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고속철 시대라 장춘으로 가려면 3시간 좌우가 소요되지만 당시에는 거의 하루품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른아침에 장춘에 도착한 주덕해 일행은 출근시간에 맞추어 곧바로 재정청(당시 재정청 청장은 왕환여였는데 제3기에서 주덕해와 함께 부성장으로 당선됨. 당시 성재정청 사업일군들은 모두 43명임) 청장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오늘만은 부성장 신분으로 왔다면서 당장에서 예산처 책임자를 불러오라는 령을 내렸다. 주덕해는 부성장이였지만 일반적으로 성정부의 행정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주덕해는 당장에서 국가재정청에서 조달된 60만원 전향자금을 어쨌는가 무섭게 따지고 들었다. 그 일군이 그 돈을 다른 지구에 조달했다고 하자 주덕해는 당장에서 크게 격노하여 “이 돈은 당과 국가에서 소수민족지구 건설자금으로 내려보낸 것인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 돈을 람용합니까… 당장 그 돈을 연변으로 돌리시오.”라고 크게 성을 냈다.
그 뒤 ‘로동자문화궁’ 건설자금이 인차 조달되였다. 로동자문화궁은 이렇게 건설되여 52년 동안 로동자 전영휴식 쎈터라는 구실을 톡톡하게 해냈다.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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