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지부생활 >> 칼럼

‘멧마당’과 ‘지각질’, ‘양창질’


날짜 2021-12-09 15:02:53 조회


연변이라는 작은 지역에도 지방 생활용어가 다른 것이 꽤 많은데 ‘멧마당’도 여기에 속한다.
그 시절 시골사람들은 정미소를 ‘석매깐’으로 불렀고 개울을 ‘물깨’, 우물을 ‘구렁물’, 탈곡장은 ‘멧마당’으로 불렀다. ‘멧마당’은 사투리가 아닌 고유문화어로서 정확하게 해석하면 밭 가운데 만들어놓은 초라한 탈곡장을 이르는 말이다. 왜 이런 명칭이 생겼을가? 운수도구가 후진적이고 공용부지가 부재했던 옛날, 농부들은 수전인 경우 논밭 가운데 굵은 서까래 같은 단단한 나무 네댓개를 가로 대 거기에 벼이삭을 놓고 거센 충격을 가해 벼알을 털어냈다. 그것을 흔히 ‘챗상(개상)’이라고 불렀다. 한전인 경우면 밭머리를 대충 닦고 도리깨로 두들겨서 낟알을 털어냈다. 이런 자리를 흔히 ‘멧마당’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전래되여 생산대 시절까지 ‘멧마당’이라고 불리운 것이다.
‘멧마당’의 력학적 변화는 인간의 체력을 요하는 도리깨로부터 발로 디뎌서 돌아가게 만든 탈곡기가 나오고 다시 중유발동기, 전기모터로 동력을 전달하는 탈곡기 출현으로 수순을 밟았으며 현재는 탈곡장도 필요없이 기계화로 가을과 탈곡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필자의 동년시기는 도리깨와 발로 디뎌 동력을 전달하는 탈곡기가 소실되면서 중유발동기로 과도하던 무렵이였다. 이런 주요한 생산로동의 장(场)을 왜 알뜰하게 기억하냐 하면 ‘멧마당’은 우리들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20세기 초엽의 중화민국 시절 퇴물인 듯한 발동기로서 관성륜의 직경이 두메터쯤 되게 굉장하게 컸는데 그것도 대칭으로 두개가 달렸다. 시동하려면 기계를 아는 청년이 공기주입기의 개페기를 조작해 관성륜에 바줄을 감고 10여명의 청년들이 일제히 잡아당겨야 했다. 이렇게 힘겹게 시동이 걸린 둔중한 발동기는 ‘드르릉 땅- 드르릉 땅-’ 고막을 박살내는 듯한 고음을 배출했는데 아츠러운 금속성 폭발소음이라도 그때는 듣기가 거북한 줄 몰랐다. 그 소음 속에서 ‘자 한쉼 본때 있게 일하세’ 대장이 앞장서서 웨치군 했다.
계절에 따라 마을 산기슭이거나 논밭에서 뛰여놀던 우리 조무래기들은 늘 ‘멧마당’에 기여들어가서 청년들이 줄느런히 서서 바줄로 시동을 거는 장면을 흥미롭게 구경하군 했다. 그리고는 ‘드르릉 땅- 드르릉 땅-’을 구명(究明)하듯 자랑차게 흥얼거리군 했다. ‘멧마당’ 한켠에 건조실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아낙네들이 새끼줄에 청담배잎을 엮었는데 그 사이로 뛰여다니면서 봇나무가지로 ‘하늘소곰재(된장잠자리)’라고 하던 큰 잠자리를 쳐서 잡는 ‘놀이’를 했다. 그리고 하얀 수수깡대 속살로 만든 앙증맞은 수레에 잠자리 꼬리를 실로 비끄러매고 수레끌기 ‘놀이’를 했다. 그때면 대장이 “이넘들아 학교마당 가서 놀아라”고 소리치면서 병아리 떼를 쫓듯 후야후야 우리 조무래기들을 쫓았다. 하지만 대장의 얼굴에 피여난 그 장난기를 훔쳐본 우리 조무래기들은 키들거리면서 달아나는 체하다가 다시 ‘멧마당’으로 기여들군 했다.
‘멧마당’은 생산일터였고 다음은 공용이였다. 이 공지는 계절에 따라 주인이 바뀌는 웃기는 진풍경이 연출되였다. 보리가을이 시작되는 8월이면 보리탈곡이 시작되고 거기에서 장난을 치던 우리 조무래기들의 몸에 보리 까그러기가 스멀스멀 기여들어와 가려워서 못 참던 일상들이 반복된다. 그 후 10월말쯤이면 벼와 콩 같은 탈곡철이 시작된다. 탈곡이 끝나 초겨울이면 그 ‘멧마당’에서는 군데군데 엉성하게 기운 헌마대를 옆구리에 낀 아낙네들이 ‘오바’라고 불렀던 남정네들의 낡은 외투를 껴입고 찬 하늬바람에 얼굴을 부옇게 얼군 채 북데기를 들추면서 낟알을 찾는다. 인간들의 알뜰한 뒤거두매에 낟알 한톨 남아있지 않는 ‘멧마당’은 그 뒤로 생산대 우사에서 마구 풀어놓은 송아지들과 돼지들이 몰려와서 북데기를 마구 뚜져댄다. 먹을 게 없다고 짐승들도 오기 싫어하는 한겨울이 되면 이번에는 눈을 맞춘 농촌 청년남녀들의 비밀련애 장소가 되였다.

‘멧마당’이란 말이 나오면 ‘도리깨질’, ‘양창질’, ‘지각질’이란 사투리가 바늘에 실 따라 나오듯 주르르 따라나온다. 그 시절 우리들은 무릇 ‘멧마당’에서 하는 모든 일을 ‘양창질’이라고 했다. 도시사람들에게 자칫 외래어로 다가갈 ‘양창질’, 그 어원이 어디에 있을가? 우리들의 방언은 대체로 구음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한어 직역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양창질’은 한어 ‘打粮场’에 그 어원을 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모든 타작을 포괄하는 말이라는 걸 인차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각질’은 그 어원이 애매하다. 시골사람들이 말하는 ‘지각질’이란 하늬바람이 불어올 때 이미 타작해놓은 량곡을 가래로 떠서 공중에 올리 뿌리고 그 량곡이 내려오는 동안 바람에 쭉정이와 검불이 날려가고 량곡만 곧추 아래로 떨어지는 물리적 원리를 리용한 일종의 정선 과정이다. 그 시절 어떤 사람들은 ‘지각질’을 ‘놋가래질’, 혹은 ‘양창질(탈곡)’이라고도 두리뭉실하게 부르기도 했다. 무릇 탈곡장에서 하는 모든 일을 ‘양창질’이라 했으니 ‘지각질’도 ‘양창질’로 표현된 셈이다. 세분화하면 ‘지각질’은 ‘양창질(탈곡)’이란 주류 속에 속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각질’은 타작해놓은 알곡을 정선하는 마지막 관문이라 ‘양창질’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다. ‘지각질’에 대한 어원에서 필자는 많은 자료를 찾아보면서 혹 우리 재래의 농기구 이름에서 전래되여 왔을가 기웃거리다가 종당에는 ‘지각질’에서 첫 글자 ‘지’가 ‘제’라고 발음된다는 구음변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렇다면 원래의 발음은 ‘제각질’이다. 여기에서 ‘제각(除却)’은 ‘없애버린다’는 개념으로 껍떼기 쭉정이를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각질’이란 원래의 ‘제각질’에 그 어원을 둔 것으로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홀하게 이르는 불완전명사 ‘질(짓)’이 따라붙어서 ‘제각질’이 구음변화로 ‘지각질’이 되였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남대천》이란 장편소설중 소제목으로 <멧마당>이라 제목하고 당시 청년들의 활동상을 그렸는데 ‘멧마당’ 시대를 살아왔던 년배들의 천사만감을 자아냈다. ‘멧마당’, ‘양창질’, ‘지각질’은 그 시절 생산대 전유물로서 무형문화재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 편집: 사진:

핫 클릭

  1. 1 주당위 조직부 한양부장 류동촌서 주제당활동 참가주당위 조직부 한양부장 류동촌서 주제당활동 참가
  2. 2 5.4정신을 이어가자!5.4정신을 이어가자!
  3. 3 아름다움이 꽉 찬 6월…아름다움이 꽉 찬 6월…
  4. 4 조직활력 살려 집권토대 든든히조직활력 살려 집권토대 든든히
  5. 5 코기러기의 힘은 무궁무진하다코기러기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6. 6 땅은 너그럽다, 그러나…땅은 너그럽다, 그러나…
  7. 7 오뉴월 염천 기죽인 한차례 당원실천활동오뉴월 염천 기죽인 한차례 당원실천활동
  8. 8 자전거시대의 명멸과 '고속' 시대의 도래자전거시대의 명멸과 '고속' 시대의 도래
  9. 9 해바라기 기개를 따라배우자해바라기 기개를 따라배우자
  10. 10 주직속기관 당건설 사업 새 단계로주직속기관 당건설 사업 새 단계로

칼럼

主管:中共延边州委组织部 主办: 中共延边州委组织部 出版: 中共延边州委支部生活杂志社
地址:吉林省延吉市天池路4258号 邮编:133000 电话: 0433-2513269 E-mail: ybzbsh@163.com
吉ICP备:17002320号 技术支持:ppbb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