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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줄’, 문화어 명칭이였네


날짜 2022-04-20 10:05:0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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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시골의 혼례와 환갑잔치 같은 례식의 큰상에 오른 과줄이 당연히 방언일 게다.’고 넘겨짚고 정작 자료를 찾아보니 웬걸 과줄은 우리가 말하는 문화어 표준명사였다. 문화어 해석은 언어학 박사, 교수들의 몫이라고 밀어버릴가 생각하다가 몇년 전에 ‘허덕칸’, ‘떵때’, ‘태석’이란 음식을 쓴 기억이 나고 그 기억을 따라 쫓아가 보니 과줄 역시 ‘허덕칸’, ‘떵때’라는 방언과 퍼즐을 맞추고 있어 그냥 쓰기로 작심했다.
조선에서 출판한 조선말대사전에는 “약과, 다식, 강정, 정과 같은 것을 통털어 이르는 명사”라고 한외에도 “찹쌀떡을 얇은 판모양으로 밀어서 말린 것을 기름에 바삭바삭하게 튀겨낸 다음 앞뒤면에 물엿이나 졸인 당액을 바르고 거기에 벼알을 튀긴 쌀을 붙이거나 밥알튀기 또는 깨 같은 것을 입힌 민족과자의 한가지.”라고 딱 찍어서 밝히고 있었다. 연변에서도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삭힌 것을 얇게 밀고 썰어 말려 기름에 튀긴 다음 엿을 바르고 거기에 쌀튀기, 닦은깨, 잣을 묻힌 것이다.”고 밝힌외에도 한걸음 나가서  찹쌀가루가 덜 삭거나 떡을 말릴 때 온도를 보장하지 못하면 과줄이 굳고 맛이 없어진다… 과줄은 겉에 묻히는 재료에 따라 잣과줄, 깨과줄, 쌀과줄 등으로 나뉜다.”고 딱 부러지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서 모양을 낸 후 기름에 지진 과자. 속까지 검은빛이 난다.”고 했으니 조선에서 해석한 과줄과 내가 말하려는 과줄과는 조금 맛도 다르고  모양도 다를 것 같다. 이 과줄을 그 당시 오코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 찾아보니 오코시(粔籹, おこし)란 “밥풀과자, 쪄서 말린 쌀 따위를 볶아 깨, 콩, 김 등을 넣고 물엿 등으로 굳힌 과자.”라고 설명했다. 
이 과줄을 강정으로 칭한다는 분들이 간혹 있으나 굳이 과줄과 가까운 음식이라면 한과가 아닐가 생각한다. 한가지 음식에 여러가지 명칭 구사에서 우리 민족도 짝지지 않는다.
지난 시기는 물론 자질구레한 례식을 버리고 큰상에 올리는 음식가지수도 크게 제한하고 있는 현재에도 신랑, 신부 큰상에 어김없이 과줄이 올라간다. 그만큼 과줄의 몸값이 올라있다. 
지난 세기 대개 마을에 ‘과줄집’이라고 과줄을 잘하는 아낙네가 있었고 군일만 생기면 꼭 이 아낙네의 솜씨를 빌군 했는데 대개 다 무대가로 례식이 끝나면 ‘채깝수건’이라 했던 작은 수건을 주면 그것으로 끝났다.
 간혹 집에서도 과줄을 했다. 그때면 꼭 화독을 동원하고 거기에 엿을 바르고 볶은 입쌀알을 바르면서 만들었는데 귀가 이지러져 ‘상품’가치를 잃고 큰상에 오르기 힘든 과줄은 우리가 먹어주군 했는데 그때처럼 ‘저 과줄이 귀퉁이가 망가졌으면’ 하고 크게 기대해본 일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리해가 안되는 일은 왜 과줄을 부엌에 내려가서 만들었는지 도무지 리해가 안된다. 그것도 자식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아침에 했는지? …

그런데 이 과줄은 겉 모양이 눈뿌리 환한 데 비해 내용물이 약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먹어도 뻥튀기같이 배가 차지 않았고 배가 차게 먹어줄 과줄이 흔치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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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필자는 <허덕간과 떵때, 태세기>란 글을 쓰면서 ‘떵때’ 우에 ‘태세기’란 음식이 담겨져있었다고 했는데 기실 태세기보다 과줄이 얹혀있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소개하지만 ‘허덕칸’ 혹은 ‘허덕깐’은 발음이 약간 다르지만 문화어로 말하면 헛간을 이르는 건축용어이다. 도시 아빠트에는 보기 힘들지만 농촌에는 지금도 있다. 그리고 ‘뗑때’라고 투박하게 이름한 시렁도 헛간에서 곱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허덕칸’과 ‘떵때’는 많이 개진되여있다. 시골에서 대부분 헛간을 집 곁에 따로 설계해서 짓지만 본채에 딸린 헛간도 많았다. 그 헛간이 ‘허덕칸’이라고 불리는외에도 정지구들을 서쪽으로 치우쳐놓을 경우 동쪽칸을 막아서 만든  헛간을 ‘동짝칸’이라고도 불렀고 반대인 경우면 ‘서짝칸’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떵때’라고 이름했던 시렁은 헛간의 부속물이였는데 대개 쌀독, 장독대 우에 설계해서 잡동사니를 얹어 두었는데 말하자면 사용공간을 확장한 셈이다. 지금같이 바니시, 페인트 따위의 도료(塗料)가 전무했기에 부엌시렁의 삼각받침대와 널판지는 색갈을 알 수 없이 낡아있었다. 
‘떵때’는 한어로 ‘거반(搁板)’으로 선반 혹은 시렁으로 통칭되지만 시렁은 벽에 고정시켰고 선반은 까치발을 받쳐서 벽에 달아놓은 것외에도 가변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허덕칸’은 우리 조무래기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였다. 부억의 시렁을 들추면 주전부리가 없었지만 전기도 없는 컴컴한 ‘허덕칸’ 시렁 우에는 때론 과줄이 싸리나무 광주리에 담겨져있군 했다. 
‘허덕’과 ‘떵때’, ‘과줄’은 건축용어와 음식용어로 퍼즐이 맞지 않은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찰떡궁합이다. ‘허덕칸’ 바람벽 우에 만든 ‘떵때’ 우에는 과줄을 담은 싸리광주리가 얹혀있었고 그 과줄을 가만히 먹겠다고 광주리를 내리우다가 광주리를 통채로 엎어놓은 사연들은 시골에서 흔히 있었던 풍경들이다. 쥐똥과 온갖 더러운 오물들이 지천으로 깔린 땅바닥, 전기도 없는 컴컴한 땅바닥에서 손더듬으로 아무렇게나 널린 과줄을 줏느라고 허둥대던 우리 형제들, 그날 저녁이면 눈치 9단인 어머니에게 들켜서 어김없이 꺼꾸러 쥔 ‘빗강대’에 얻어터지거나 바가지로 욕을 먹군 했다.

그때의 부모들에게도 분명 자식 사랑은 있었겠는데 자식들에게 왜 함부로 대했는지?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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