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두려운 것도 없었지유…”

—항미원조전쟁에서 공을 세운 김봉수 로인
날짜 2022-04-20 09:52:57 조회


“얘기를 할 때 높게 말해주오. 왼쪽 귀가 먹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소.”
일찍 해방전쟁에 참가했고 항미원조에 나가 중국인민지원군 전략물자 운수차 운전수를 담당했던 김봉수는 전장에서 왼쪽 청력을 영영 잃었고 오른쪽 청력도 손상돼 보청기를 껴야만 어렵사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전, 연길시 ‘로전사의 집’에서 만난 김봉수 로인은 군복을 차려입고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에 건 공훈메달과 군복 가슴에 반짝이는 훈장들은 가렬처절했던 전쟁의 력사와 기세 높고 영용하게 싸웠던 그 시절 뜨거운 젊은 피들의 모습을  말없이 눈앞에 그려주는 듯했다. 92세 고령의 로전사 김봉수 로인은 여전히 신체가 정정하고 발걸음이 온전했으며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1930년, 도문시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김봉수는 여섯 남매의 둘째로 남자형제중 맏이였다. 그는 가정의 생계를 돕기 위해 15세부터 자동차수리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다. 1947년, 17세 되던 해에 중국인민해방군에 가입한 김봉수는 사평전역에 참가했고 1950년에 항미원조에 참가하여 중국인민지원군 자동차 44퇀에 편입됐다. 그는 군인 운전수로서 전략물자 운수임무를 맡았다.
“적들은 낮에는 비행기로 쉴 새 없이 순라를 해대고 밤이 되면 아군들이 지나가는 길바닥에 마름쇠(三角钉)을 흩뿌려놓아 자동차의 전진을 방해했소. 조선 군중들이 나와 마름쇠를 주어주면서 운수도로를 확보해주기도 했다오.” 
 지세적으로 산이 많다 보니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 운전에 애를 먹었을 뿐만 아니라 폭격으로 파손된 도로가 많아 정신을 항상 가다듬어야만 했다. 적들의 비행기가 밤중에도 공격과 감시를 이어가다 보니 자동차 전조등을 끄고 달릴 때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하루에 1킬로메터를 전진하기도 어려웠다.
한번은 김봉수가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적들의 비행기가 그들을 발견하고 총탄을 날렸다. 김봉수는 조수석에 앉은 전우의 신호에 따라 전조등을 끈 채 비발치는 총탄 속을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옆을 확인하니 전우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있었다. 전우를 야전병원에 이송해놓고 김봉수는 곧바로 운수임무에 다시 뛰여들었다. “그 전우는 다리 쪽에 피범벅이 되여 통증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소. 그리고 그 후 전우가 살았는지 모르겠소. 그저 료녕성에서 온 류씨였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안 나오…” 김봉수 로인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그때 당시를 회억했다.
물자운수를 다그치기 위해 김봉수는 날이 어둑해지기 전부터 적군의 비행기를 피해가며 운수임무를 시작했다고 했다. “먹을 것, 입을 것과 무기탄약까지 싣고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전방의 전우들이 더 고생한다오. 매일같이 달리다 보면 그 길도 익숙해지더군.”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 한번 운수할 때 김봉수는 하루에 두번 또는 세번씩 왕복하고 전장에서 돌아올 때는 부상병들을 주동적으로 싣고 복귀했다.
“그때는 두려운 것도 없었지유. 스무한살이였던 그때는 결혼도 하지 않았을 때라 부담도 없었고 집에는 어머니가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으니…” 험난한 전쟁터에서 김봉수는 필사적으로 싸웠고 전략운수에 용감하게 매진했다. 간고하고 피어린 투쟁에서 여러차례 위급상황을 극복하며 4400킬로메터의 무사고 운수를 기록한 김봉수는 뛰여난 표현으로 1951년 4월과 10월에 작은 공 한차례와 큰 공 한차례를 수여받았다.
1953년 제대 후, 김봉수는 선후하여 도문시 석현제지공장 소방대 대장, 주공안국 소방대대 대대장을 력임하다가 1984년에 리직했다. 사업기간 일터에서 책임을 다해 ‘주정치공안계통 선진사업자’ 등 영예를 수여받으면서 혁명군인의 풍채를 보여준 그는 연변 소방사업의 산증인이였다. 지난해 그는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돐’ 기념훈장을 받았다.

김봉수는 퇴직 후 촬영, 문구와 당구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한편 여가시간을 리용해 사회 각 단체 사업인원들과 여러 학교 학생들에게 혁명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애국주의 교양을 실천하고 있다.
김봉수 로인은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군인으로서의 강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시련에 닥쳤을 때 물러서지 말고 항상 꿈과 책임감을 가지고 분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작가:김설 편집: 사진: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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