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일이니 평생 후회없이 이 길을 걸을 겁니다.”
룡정시 개산툰진학교 교원인 왕계연(46세)의 소박하지만 굳센 의념이 돋보이는 말이다. 강단에 나선 지 23년이 되는 왕계연은 현재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담당과목 수업외에도 학급담임, 학년조장 등 사업을 맡아하고 있으며 학교 전직당지부 서기 직도 맡고 있어 그 어깨가 한결 무겁다.
룡정시 개산툰진 토박이인 왕계연은 학생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했다. 담임교원은 그에게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생을 가르쳤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교원 직업에 대한 동경과 스승에 대한 경의를 한몸에 지니고 있던 왕계연은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주저없이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왕계연의 동력이 되였고 어떠한 곤난도 극복하면서 힘차게 전진하도록 채찍질해주었다.
룡정시 개산툰진학교는 산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학생들은 가정환경이 다양하고 복잡했으며 류재아동 또는 결손가정 아동이 많았다. 가족의 변고와 사랑의 결핍으로 아이들은 대부분 렬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매사에 랭담했다. 왕계연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순조롭게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단 한명의 학생도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 다짐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리혼과 애정결핍으로 성격이 괴벽하게 변한 몽요(가명)는 한때 학업을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했다. 왕계연은 몽요를 찾아 가정방문을 했다. 문을 잠그고 만나지 않으려는 몽요의 저항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문 밖에 앉아 닫힌 문짝을 사이에 두고 소통했다. “이 세상에는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운명만은 자기 손에 쥐여져있어 바꿀 수 있단다. 네가 그림 그리기에 잠재력이 있는 것 같은데 네 자신만 원한다면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거야.” “선생님, 제가 해낼 수 있을가요? 정말 가능할가요?” “열심히 공부하면 앞으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야.”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몽요는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왕계연의 도움으로 몽요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디자인 전업을 전공했다. 졸업 후 몽요는 첫달 월급으로 왕계연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전했다. 몽요의 할머니는 “왕선생님 덕분에 제 손녀의 오늘이 있습니다!”면서 감격을 금치 못했다.
왕계연의 배려와 지도하에 공부에 싫증을 느꼈던 학생들은 꿈을 찾고 점차 자신감 넘치고 락천적인 학생들로 탈바꿈했다. 왕계연이 이끄는 학급의 고중진학률은 83.3%에 달하고 가르치는 영어과목 성적은 수년간 전 주 평균을 웃돌았다. 이런 성과로 왕계연은 여러차례 ‘우수 고중입시 지도교원’ 칭호를 받아안았다.
수업에 전념하기 위해 왕계연은 개산툰에서 홀로 거주하고 주말이나 명절에만 연길로 돌아가 가족을 만났다. 전염병 예방, 통제 기간, 학생들이 마음에 걸린 왕계연은 결연히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대신 당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던 아들의 곁은 지켜주지 못했다. 장기간 어머니와 떨어져 생활한 아들은 “엄마, 나는 결손가정 아이인가요?”라고 왕계연에게 물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왕계연은 눈시울을 붉혔으나 자신의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다고 했다.
시골학교에 몸을 담근 23년간, 늘 학생들이 우선이였던 왕계연은 자신의 건강에는 늘 소홀했다. 장기간의 과로가 쌓여 그녀는 경상적으로 심한 복부 통증을 느꼈다. 학생들의 학습 진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번마다 약으로 진통을 잊은 채 이를 악물고 일터를 지켰다. 한번은 견딜 수 없는 심한 복통으로 인해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치료를 받았다. 검사를 거쳐 복부에서 11센치메터의 종양이 발견되였다. 시급히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였다. 수술을 마친 다음 날, 그녀는 또 갑작스런 심장정지로 인해 응급치료를 받기도 했다. 병이 치유되지 않았지만 왕계연은 겨우 한달만 쉬고 의사의 거듭된 당부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강단에 다시 올라섰다. 결국 그는 몸에 병근을 남겼고 지속적인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장기간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향진교육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왕계연은 향진 아이들의 삶에 희망의 등대를 밝혀주었다. 그녀가 가르친 800여명의 학생중 28명이 의학원에 지원했다. 스승의 건강이 늘 념려됐던 제자들은 “꼭 새로운 약품을 연구해내 왕선생님이 하루빨리 완치되도록 할 것입니다.”며 졸업 후에도 관심을 이어왔다. 이 깊은 사제의 정은 변경의 향진교육 사업을 고수하려는 왕계연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왕계연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시골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정이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힘이 되여주었다. “향진교육 사업을 고수하는 교원으로서 더 많은 젊은 교원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주고 그들이 향촌교육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왕계연은 당원으로서의 초심과 사명을 잊지 않고 산간지역 아이들에게 지식의 하늘을 떠받쳐주었고 그들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여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빛을 비춰주고 있다.
룡정시 개산툰진학교 교원인 왕계연(46세)의 소박하지만 굳센 의념이 돋보이는 말이다. 강단에 나선 지 23년이 되는 왕계연은 현재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담당과목 수업외에도 학급담임, 학년조장 등 사업을 맡아하고 있으며 학교 전직당지부 서기 직도 맡고 있어 그 어깨가 한결 무겁다.
룡정시 개산툰진 토박이인 왕계연은 학생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했다. 담임교원은 그에게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생을 가르쳤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교원 직업에 대한 동경과 스승에 대한 경의를 한몸에 지니고 있던 왕계연은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주저없이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왕계연의 동력이 되였고 어떠한 곤난도 극복하면서 힘차게 전진하도록 채찍질해주었다.
룡정시 개산툰진학교는 산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학생들은 가정환경이 다양하고 복잡했으며 류재아동 또는 결손가정 아동이 많았다. 가족의 변고와 사랑의 결핍으로 아이들은 대부분 렬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매사에 랭담했다. 왕계연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순조롭게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단 한명의 학생도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 다짐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리혼과 애정결핍으로 성격이 괴벽하게 변한 몽요(가명)는 한때 학업을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했다. 왕계연은 몽요를 찾아 가정방문을 했다. 문을 잠그고 만나지 않으려는 몽요의 저항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문 밖에 앉아 닫힌 문짝을 사이에 두고 소통했다. “이 세상에는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운명만은 자기 손에 쥐여져있어 바꿀 수 있단다. 네가 그림 그리기에 잠재력이 있는 것 같은데 네 자신만 원한다면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거야.” “선생님, 제가 해낼 수 있을가요? 정말 가능할가요?” “열심히 공부하면 앞으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야.”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몽요는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왕계연의 도움으로 몽요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디자인 전업을 전공했다. 졸업 후 몽요는 첫달 월급으로 왕계연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전했다. 몽요의 할머니는 “왕선생님 덕분에 제 손녀의 오늘이 있습니다!”면서 감격을 금치 못했다.
왕계연의 배려와 지도하에 공부에 싫증을 느꼈던 학생들은 꿈을 찾고 점차 자신감 넘치고 락천적인 학생들로 탈바꿈했다. 왕계연이 이끄는 학급의 고중진학률은 83.3%에 달하고 가르치는 영어과목 성적은 수년간 전 주 평균을 웃돌았다. 이런 성과로 왕계연은 여러차례 ‘우수 고중입시 지도교원’ 칭호를 받아안았다.
수업에 전념하기 위해 왕계연은 개산툰에서 홀로 거주하고 주말이나 명절에만 연길로 돌아가 가족을 만났다. 전염병 예방, 통제 기간, 학생들이 마음에 걸린 왕계연은 결연히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대신 당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던 아들의 곁은 지켜주지 못했다. 장기간 어머니와 떨어져 생활한 아들은 “엄마, 나는 결손가정 아이인가요?”라고 왕계연에게 물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왕계연은 눈시울을 붉혔으나 자신의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다고 했다.
시골학교에 몸을 담근 23년간, 늘 학생들이 우선이였던 왕계연은 자신의 건강에는 늘 소홀했다. 장기간의 과로가 쌓여 그녀는 경상적으로 심한 복부 통증을 느꼈다. 학생들의 학습 진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번마다 약으로 진통을 잊은 채 이를 악물고 일터를 지켰다. 한번은 견딜 수 없는 심한 복통으로 인해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치료를 받았다. 검사를 거쳐 복부에서 11센치메터의 종양이 발견되였다. 시급히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였다. 수술을 마친 다음 날, 그녀는 또 갑작스런 심장정지로 인해 응급치료를 받기도 했다. 병이 치유되지 않았지만 왕계연은 겨우 한달만 쉬고 의사의 거듭된 당부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강단에 다시 올라섰다. 결국 그는 몸에 병근을 남겼고 지속적인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장기간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향진교육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왕계연은 향진 아이들의 삶에 희망의 등대를 밝혀주었다. 그녀가 가르친 800여명의 학생중 28명이 의학원에 지원했다. 스승의 건강이 늘 념려됐던 제자들은 “꼭 새로운 약품을 연구해내 왕선생님이 하루빨리 완치되도록 할 것입니다.”며 졸업 후에도 관심을 이어왔다. 이 깊은 사제의 정은 변경의 향진교육 사업을 고수하려는 왕계연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왕계연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시골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정이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힘이 되여주었다. “향진교육 사업을 고수하는 교원으로서 더 많은 젊은 교원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주고 그들이 향촌교육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왕계연은 당원으로서의 초심과 사명을 잊지 않고 산간지역 아이들에게 지식의 하늘을 떠받쳐주었고 그들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여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빛을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