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6일, 연변인민들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력사적 시각이였다. 습근평 총서기가 직접 연변을 찾아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을 크게 고무격려하고 연변의 발전을 위해 전진방향과 근본적인 준칙을 가리켜주었다.
올해는 빈곤해탈 난관공략 결전, 결승과 초요사회 전면 실현의 해이자 습근평 총서기가 연변을 시찰한 지가 5돐이 되는 해이다.
5년간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총서기의 부탁을 명기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분발정진하며 팔을 걷고 열심히 일함으로써 총서기의 중요 연설, 지시 정신이 연변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맺도록 부단히 추동했고 연변 경제, 사회 발전의 새 장을 엮었다.
연변문화의 창구로 부상
― 연변박물관
연변박물관은 습근평 총서기의 연변시찰 첫걸음이였다.
“5년 전 습근평 총서기는 바로 이 대청에서 선도구 공간분포 설명도를 보시고 나서 인차 발길을 ‘연변의 발자취’ 전시관에 옮기셨습니다.” 연변박물관 부관장인 신미미는 비록 그때 당시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미 퇴직한 동료들에게서 수없이 들어 이젠 마치 그때 현장에 있은 듯하다며 말했다.
‘연변의 발자취’ 전시관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성과 사진전시가 위주인데 주로 우리 주 근 70년의 발전 려정과 이룩한 성과를 사진으로 전시함으로써 참관자들이 연변을 전면적으로 료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전시관은 자치주 창립 이래 전 주 여러 민족 인민들이 당의 민족정책의 따스한 해살을 듬뿍 받으며 성, 주 당위의 옳바른 령도하에 꾸준히 노력하고 간고하게 창업하고 개척정진하면서 도약을 실현한 경제, 사회 여러 면의 성과를 사진으로 전시했다.
근 70년의 노력을 통해 연변의 경제발전은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연변은 이미 식품(연초), 에너지광산, 림산, 관광, 의약을 기둥산업으로 하고 건축원자재, 방직복장 등 산업을 우세로 한 경제구조가 초보적으로 형성되였다. 전통농업으로부터 현대화 농업으로 도약중에 있다. 현대봉사업과 관광업은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관광흥주로 인해 관광업은 연변경제의 특색으로 손꼽히게 되였다. 우리 주는 전국적으로 민족단결진보 건설 활동을 가장 빨리 시작한 지역으로 매년 9월은 우리 주 민족단결진보 선전월이기도 하다. 1994년 우리 주는 첫 ‘전국 민족단결진보 선진집단’ 영예를 수여받으면서부터 그 뒤로 매차례 평의선발에서 모두 선진집단으로 선정되여 ‘민족단결 5관왕’에 등극하게 되였다.
“‘연변의 발자취’ 전시관을 참관하고 나서 총서기는 2층에 위치한 ‘조선족민속’전시관을 참관하셨습니다.” 신미미 부관장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조선족민속전시홀은 약 2000평방메터에 달하고 현대화된 전시, 진렬 방법을 통하여 조선족의 이주, 생산, 생활, 인생의례 및 문화, 오락 등 여러가지 측면으로부터 중국조선족의 우수한 민속문화를 전면적으로 전시하였다. 총서기는 바로 이곳에서 조선족의 호패와 촌수에 대해 문의하면서 조선족의 민속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60년에 건립된 연변박물관은 지방력사와 중국조선족의 문화 및 이주 력사를 살필 수 있는 유물과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소장품을 꾸준히 늘여나간 박물관은 2009년 국가 2급 박물관으로 평의되면서부터 무료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연변박물관은 해마다 연인수로 20만명의 참관자들을 접대하고 3000여차의 해설봉사를 제공하는 박물관으로 발전되였고 이제는 한장의 문화명함장으로 연변의 문화창구와 전시플랫폼으로 거듭났다. 현재 박물관에 소장된 문물은 1만 5000점에 가까운데 그중 국가급 진귀문물이 500여점에 달한다.
“총서기의 연변박물관 방문은 저희들에 대한 정신적 격려였고 사업고조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였습니다.” 총서기의 중요연설 정신의 인솔하에 연변박물관은 2016년에 문물보관상자를 1000여개 늘여 문물을 일층 보호했고 2019년에는 선후하여 14대의 온도습도유지 에어컨 설비를 보수하고 제습기 6대를 증설했으며 소장품창고에 봉린(凤淋)시스템과 질소살충 설비를 설치했다. 또한 매개 창고에 공기청결 병풍을 설치했고 문물선반내에 전부 장나무 선반을 넣음으로써 문물들을 더욱 잘 보호했다.
또한 인민군중들의 날따라 늘어나는 문화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해마다 해설원들을 큰 박물관에 파견해 해설원들의 자질을 제고함과 동시에 문물의 배경이야기를 더욱 잘 해설하도록 했다. 2019년에는 주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및관광국의 대폭적인 지지하에 49만원을 신청하여 관중접대봉사 시스템을 증설했다. 박물관은 매일 두차례 무료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외에 무료해설 시간을 놓친 관중들을 위해 무료로 자동안내 해설기를 제공해주어 군중들이 한어, 조선어, 영어 3가지 언어로 된 해설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였다.
2015년부터 5년간 박물관은 ‘홍약서법작품전’, ‘연변인민항일투쟁사 특별 사진전’, ‘안휘 숙주 미술작품전’ 등 성, 주 및 성외 작품전을 30여차례 펼쳐 시민들의 눈을 호강시켜줌과 아울러 문화에 대한 갈망과 요구를 만족시켜주었다. 단오절, 아동절, ‘5.18 박물관의 날’ 등 특수한 명절을 계기로 풍부한 사회교양 활동을 개최했고 학교, 사회구역, 공항, 병원 등 10여곳에서 순회전시를 전개하여 군중들에게 문화성연을 선물하기도 했다.
연변박물관은 자체 건설을 강화함과 동시에 대외교류와 선전사업도 함께 틀어쥐였다. 박물관내 소장물품 자원을 적극 리용하여 정품전시를 구축했으며 대외로 나가고 대내로 영입하는 방식을 통해 박물관간의 교류와 합작을 크게 추진했다.
박물관은 전국 지구급, 현급 문명관으로서 전국 ‘백개 중점박물관’, 국가민족단결진보 교양기지, 중화화교 국제문화 교류기지로 되였으며 길림성 애국주의교양기지, 당사교양기지와 사회과학 보급기지로 명명되기도 했다. 2013년 연변박물관의 ‘조선족민속전시’는 제10회 전국박물관진렬전시 ‘우수상’을 수여받았고 2015년에는 전국관광풍경구 평의선정위원회로부터 5A급 관광풍경구로 평의되였다.
앞으로의 발전을 두고 신미미 부관장은 문물을 살리고 박물관을 더욱 활성화시켜 더욱 많은 참관자들을 흡인할 뿐만 아니라 쾌적한 박물관내에서 즐겁게 참관하고 체험하여 또다시 박물관을 찾아오도록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붉은 해’가 비춰주는 변강마을
―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7월 15일, 화룡시 동성진 제7회 농민문화절 및 ‘잊을 수 없는 그날’ 주제활동이 광동촌에서 있었다. 공연은 가무 <붉은 해 변강 비추네>로부터 서막을 열었다. 2015년 습근평 총서기가 광동촌을 찾았을 때 그이를 위해 춤을 추었던 광동촌의 무용대 대장 김종일은 다시한번 익숙한 선률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5년 전의 잊을 수 없는 그날을 기념했다.
‘붉은 해’가 비춰주는 변강마을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은 습근평 총서기가 시찰한 후 5년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광동촌 제1서기 현걸은 “촌민들 모두가 ‘초요사회 전면 실현에 그 어느 소수민족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습근평 총서기의 당부를 마음속에 아로새기고 마을 건설에 힘을 모아 오늘과 같은 주렁진 성과를 거두게 되였습니다.”라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광동촌에서는 2015년부터 촌민들의 거주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마을 기초시설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5년간 마을에는 1.1킬로메터의 아스팔트길과 3.64킬로메터의 세멘트길이 새롭게 깔렸고 1500평방메터의 문화광장과 500평방메터의 문구장, 촌민위원회, 의무실, 관광객봉사, 전자상봉사 등 기능을 일체화한 2200평방메터의 종합봉사쎈터가 생겼다. 탁 트인 주차장과 마을의 상징인 경관대문의 건설, 도로 확장과 낡은 담장 수선 등 많은 노력들은 광동촌의 면모를 크게 개변시켰으며 2018년부터 2년을 들여 건설한 83개의 가로등은 밤에도 마을 구석구석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며 광동촌을 시골 정취가 짙은 삶의 터전으로 탈바꿈시켰다.
논 한가운데 건설된 2층짜리 논경관대에 올라서니 푸르싱싱한 벼모들을 품은 전원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벼꽃이 핀 논 사이를 걸어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사람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을 탄생시켰다.
‘평강록주’에 위치해있는 광동촌의 비옥한 토지는 벼재배에 매우 적합할 뿐더러 이곳에서 생산하는 입쌀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다. 광동촌에는 171헥타르의 논이 있는데 이미 쌀 생산, 가공, 판매 일체화를 실현하고 기계화 재배률은 80%에 도달했으며 벼재배전문합작사를 설립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재배부터 시작해 가공, 포장에 이르기까지 통일식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유기농입쌀과 록색입쌀의 브랜드화 템포를 다그치기 위해 논에 기상상태와 병충해를 자동검측할 수 있는 최첨단설비를 설치하고 24시간 실시간으로 벼의 자람새를 검측하고 있으며 촌에서 생산하는 입쌀은 ‘맛있다’라는 상표로 등록되여 북경 수도농업집단유한회사와 수매협의를 체결하기도 했다.
광동촌에서는 동서부 빈곤층부축 협력 사업에 힘입어 2018년부터 녕파시 은주구와 함께 특색 소비 빈곤층부축 대상인 ‘공유논’을 출시했는데 작년까지 총 1만 4000뙈기의 논을 은주구 시민들과 공유했고 1400만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 촌의 서류작성 빈곤호인 주매호(64세)는 1982년부터 1헥타르의 수전을 경작했으나 뾰족한 판로가 없어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공유논’ 대상이 실시되여 가공, 포장, 판매 등 골머리를 앓던 모든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그는 과감하게 5헥타르의 논을 임대를 맡아 경작하고 있는데 현재 년평균 순수입은 대상실시 전의 2배인 4만원에 달하고 있으며 해마다 촌집체로부터 2000원의 배당금까지 받고 있다. “저처럼 문화수준이 낮은 사람도 쉽게 리해하고 믿을 수 있는 ‘공유논’ 정책 덕분에 빈곤호들은 물론이고 촌 전체에 생기가 도는 느낌입니다.”라며 주매호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습근평 총서기의 지시정신에 따라 진행한 ‘농촌 화장실 개혁’ 또한 촌민들 속에게 크게 호평을 얻는 부분이다. 화룡시 농촌 화장실 개조 사업의 첫 시범촌인 광동촌에서는 2016년부터 350만원을 투입하여 210가구의 재래식 변소를 전부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했으며 지난해에는 1700만원을 투입하여 2개의 오수처리장 건설과 집중오수도관 개조를 동시에 실시했다. “재래식 실외 화장실은 여름에는 악취를 풍기고 겨울에는 추운 등 불편함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는데 지금은 깨끗한 실내 화장실이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최창해(67세) 촌민은 ‘화장실 개혁’이야말로 농촌 대중들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해준 민생실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화장실 개혁’은 광동촌의 마을환경을 크게 개선함과 동시에 외지 관광객들에게 편리를 가져다주어 관광 및 숙박업의 발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습근평 총서기가 다녀간 후 연변관광의 필수코스로 급부상한 광동촌은 민속풍경화로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60여가구의 농가를 민박시설로 개조했다. 관광팀은 물론 적잖은 주내 관광객들도 자가용을 몰고 광동촌으로 찾아오고 있는데 주말마다 조선족음식을 맛보고 조선족농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온 마을이 흥성흥성하다. 오늘날 국내 300여개 려행사의 관광코스에 편입된 광동촌은 현재까지 연인수로 45만명 관광객을 접대, 외지 관광객들이 모두 들러보고 싶어하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광동촌에는 총서기가 관람했던 민족무용으로 유명해진 공연팀이 있는데 관광성수기에는 하루에 여러차 공연하기도 한다. 팀원이 려행사로부터 받는 년간 공연수입만 3000원에 달한다는 공연팀의 성원 김정숙(62세) 촌민은 “관광객들의 주문이 늘어나는 바람에 공연종목이 원래의 6개로부터 거의 20개로 늘어나고 공연팀의 소득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조선족 거주문화의 맥락을 찾아 모여드는 외지 관광객들에게 조선족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은 것이 지금의 꿈”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걸 제1서기는 “향촌관광을 일층 발전시키기 위해 올해 2억 5500만원을 추가로 투입해 광동국제입쌀거래쎈터, 조선족풍정원, 조선족수상가옥 등 관광대상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년간의 분투를 거쳐 광동촌은 면모가 개변되고 산업이 흥성해졌으며 촌민들의 돈주머니도 더욱 두둑해졌다. 선후하여 ‘국가급 문명촌’, ‘중국소수민족특색촌’, ‘길림성 특색관광 명진명촌’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으며 촌민들의 사고와 의식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런 변화들은 촌민들을 치부의 길로 이끄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오늘날 중화민족 문화권 속에 독특한 조선족문화를 꽃피우면서 다민족 문화 융합의 한페지를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있는 광동촌 촌민들은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차있으며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고 위대한 중국꿈을 실현하는 길에서 신들메를 더욱 단단히 조이고 있다.
총서기의 당부 명기 ‘오동’ 브랜드 굳건히 수호
― 길림오동약업집단 연길주식유한회사
“약품안전 책임은 태산보다 무겁고 약품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관리사업이고 기술문제이며 도덕문제이고 민심공사입니다. 제약기업은 이 책임을 참답게 리행하여 인민대중들로 하여금 매 종류, 매 한알의 약품을 시름 놓고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5년 전 7월 16일, 길림오동약업집단 연길주식유한회사 시찰시 습근평 총서기는 이 같은 간곡한 당부를 남겼다.
지난 5년 동안 길림오동약업집단 연길주식유한회사의 전체 직원들은 “약품 품질관을 고수하라.”는 총서기의 당부를 가슴에 아로새기고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함량이 높고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제품 생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첩첩한 곤난을 극복하고 가장 중요한 혁신, 연구개발, 품질제고 등 면에서 실질적인 진척을 거두었다.
회사는 첨단과학기술을 인입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물약품, 화학약품과 항종양 약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는데 국가 1류 항암약품인 ‘염산보안마이신(盐酸博安霉素)’과 국가 의료보험목록 품종인 ‘염산브레오마이신(盐酸平阳霉素)A5’는 국가공업및정보화부로부터 ‘전략비축약’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받아안았다. 특히 염산브레오마이신은 지난해까지 단품종 판매액 1000만원에 육박하며 소비자들로부터 ‘생명의 약’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습근평 총서기가 시찰시에 특별히 언급하며 칭찬했던 오동표 ‘안신보뇌액’은 출시된 지 39년 동안 꾸준히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고 국내 전체 동일약품 시장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6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오동집단회사에서는 지난 5년간 공업 자동화, 지능화 생산요구에 따라 낡은 설비와 락후한 생산능력을 철저하게 도태시키고 독일, 이딸리아 등 선진국의 자동화 생산라인과 미국, 일본, 스위스 등 나라에서 개발한 최첨단 검측설비를 인입한 결과 인력랑비를 줄이고 작업능률을 과거의 몇배로 제고시켰으며 동시에 제품질을 일층 확보하고 오염과 교차오염도 대폭 감소시켰다.
지난 5년간 새 제품 및 핵심 제품의 연구, 개발에서 새로운 진척을 가져왔으며 원재료와 용해제의 투입, 발효추출, 약품 생산, 제품 검측 등 제반 과정의 자동화, 지능화, 고품질화를 동시에 실현했다. 오늘날 이 회사의 중약 추출 능률과 고체약품 생산 능률은 5년 전에 비해 각기 6배, 3배로 뛰여올랐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국가고신기술기업, 길림성 성실신용 5A급 기업, 국가상무부 성실신용 3A급 기업 등 칭호와 함께 중국 제품브랜드 가치 100강의 31위의 영예를 받았고 2017년에는 길림성 100강 우수기업에 평의되였으며 2018년에는 정맥주사작업실이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식물, 약품, 의료제품 생산 품질관리 규범인 GMP인증을 통과했다.
오늘도 이 회사의 전체 직원들은 총서기의 중요지시 정신과 당부를 가슴에 명기하고 의약산업의 혁신과 기술개발 그리고 ‘연변의약’의 비약식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