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습근평 총서기는 섬서에서 고찰시 “연안정신은 한세대 또 한세대의 중국공산당원들을 육성하고 우리 당의 귀중한 정신적 재부로 되였다.”고 말했다. 습근평 총서기의 중요연설 정신은 연안정신의 지위와 시대적 가치를 천명했고 연안정신으로 새시대 광범한 당원과 간부들을 교양하도록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1935년 10월, 7000여명의 로농홍군대오가 섬북에 도착하면서 2만 5천리 장정이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다. 그때로부터 연안을 핵심으로 하는 섬감녕지구는 유구한 력사를 가진 한 나라의 미래운명에 깊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연안은 중공중앙과 홍군장정의 ‘립각점’이였고 전 민족적 항일전쟁의 ‘출발점’이였으며 중국공산당이 신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시범구’, 전 중국을 해방하는 해방전쟁의 ‘전환점’이였다.
13년간의 연안에서의 파란만장했던 세월은 중국공산당을 작았던 데로부터 크게, 약했던 데로부터 강하게, 나락에서 최고봉으로 향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지난 10월말, 기자는 ‘2020년 전 주 뉴스대변인 강습반’ 참가차로 중국공산당 혁명의 성지인 연안에 갔다. 연안혁명기념관, 조원혁명옛유적지, 량가하 지식청년옛거주지, 보탑산 등 곳에서 현장학습을 통해 당중앙의 연안에서 13년 분투 려정, 빛나는 력사와 영웅적 사적들을 료해할 수 있었고 연안정신을 보다 깊이 있게 터득할 수 있게 됐다.
견정하고 정확한 정치방향
혁명성지 연안은 혁명자들의 정신적 고향이다. 견정하고 정확한 정치방향은 연안정신의 령혼이고 공산당원의 확고부동한 공산주의 사상과 신념에서 집중적으로 구현되였다.
1969년 1월, 16살도 채 안된 습근평은 북경지식청년 신분으로 연안시 연천현 량가하촌에 왔다. 량가하촌에서의 7년 동안 습근평은 8번의 입단신청서와 10번의 입당신청서를 바치고 꾸준히 노력해 선후로 공청단에 가입하고 입당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를 분발진취하게 했던 것은 바로 변함없는 리상과 신념이였다. 마음속에 신앙이 있으면 곧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있게 된다.
견정하고 정확한 정치방향이 있었기에 중국공산당은 수차의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혁명적 투지와 드높은 사기를 격발해낼 수 있었다. 2020년 올해를 휩쓸고 지나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고 무역이 중단되며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 나라가 거칠고 사나운 파도를 거스르고 계속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은 원인은 무엇일가? 그것은 바로 강대한 나라로서 견강한 인솔력이 있었고 강대한 정당으로서 견강한 핵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상해방 실사구시의 사상로선
1936년말부터 1937년 여름까지 모택동 동지는 연안에서 선후로 <중국혁명전쟁의 전략문제(中国革命战争的战略问题)>, <실천론(实践论)>, <모순론(矛盾论)> 등 문장을 썼다. 사상로선으로 당의 경험을 고도로 종합하고 전당 범위내에서 실사구시의 사유방식과 행위준칙을 힘써 구축했다. 1942년 2월부터 전당 범위내에서 한차례 보편적인 정풍운동이 전개되여 사상해방과 실사구시의 사상적 로선을 수립했다. 연안정신은 공산당원이 당의 과업을 잘 이어나가고 창업하는 영원한 원동력으로 됐다.
일대일로의 창의와 인류 운명공동체의 공동 건설 목표 제기, 초요사회의 전면 건설과 빈곤해탈 난관공략…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전면 건설과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령도해 건설해나가는 위대한 사업들은 바로 연안정신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해방, 실사구시하고 인심을 집결시키고 개척진취하는 강대한 정신적 동력에 의거했기 때문이였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근본취지
“15살에 처음 황토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방황에 사로잡혔습니다. 22살 때 황토땅을 떠나면서 저는 이미 확고한 인생목표가 생겨났고 자신감으로 충만돼있었습니다. 섬북고원은 저의 뿌리이고 저는 인민의 공복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민을 위한 사업을 해야겠다는 불변의 신념을 키워나갔습니다.” 2002년, 습근평 동지는 이렇게 글로 연안정신으로 인한 성장의 세례에 대해 회고했다.
1944년, 모택동 동지는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공통된 리상신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공명을 일으킨다. 로세대 중국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연안에서 보냈던 세월 동안 가슴속에 품어두었던 핵심단어는 바로 ‘인민’이였다.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과 결심이 있었기에 중국공산당은 중국혁명발전과 사회진보의 기둥과 선봉대로 될 수 있었고 력사의 선택과 인민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19차 당대회 보고는 “반드시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사상을 견지하고 부단히 사람들의 전면 발전과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에서 승리는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중대한 결책포치였고 제1민생공정이였으며 우리 당이 인민에게 한 장엄한 승낙이였다.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창업정신
새 중국 창건 초기, 자동차 한대조차 제조해내지 못했던 데로부터 자신만의 브랜드 자동차를 생산해내고 비행기를 제조하며 북두 3호 글로벌 항법위성시스템을 전면 개통하기까지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을 이끌고 71년간의 자력갱생, 간고하게 창업하는 빛나는 로정을 걸어왔다.
1941년, 곤경에서 벗어나고 적의 봉쇄를 부수기 위해 섬감녕지역에서 대생산운동을 전개해 엄중한 물자난을 극복하고 항일에 필요한 경비를 보장했다. 이때로부터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창업정신은 연안정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되였다. 또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창업정신은 중국꿈을 실현하기 위한 단단한 저력으로 되였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전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제1의 공업국, 제1의 화물무역국, 제1의 외화비축국으로 성장했으며 세계경제 성장기여도는 30%를 넘어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의 작용을 하고 있다.
격변하고 있는 시대,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바로 중국공산당원들이 혁명정신에 대한 고수와 전승이다.
전국 각지의 관람객들이 연안혁명기념관에 모여든다. 혁명관의 기념수첩에는 이런 한마디가 정중하게 씌여져있다. “우리는 반드시 시종일관 자력갱생하고 간고분투하는 연안정신을 발양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인미답의 위대한 사업을 시종 앞으로 밀고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