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중국정기간행물협회 당간행물분회에서 주최하고 하남《당의 생활》잡지사에서 주관한 ‘20차 당대회 정신 학습, 선전, 관철’ 주제의 년례회의가 정주에서 열림과 동시에 ‘하남을 통해 중국을 보다’주제로 전국 당간행물 옴니미디어 대형 취재활동이 가동되였다. 중앙선전부 출판국, 중국정기간행물협회, 하남성당위 선전부의 책임자 그리고《탐구》,《붉은기 문장》,《기치》,《당건설》등 중앙 당간행물 잡지사 및 전국 각 성(구, 시)의 44개 당간행물 잡지사의 책임자와 편집기자 총 130명이 이번 활동에 참가했다.
3월 21일부터 취재팀은 선후하여 황하국가지질공원, 황하박물관, 홍기거기념관, 청년동, 안양 은허유적지를 탐방하면서 하남성의 두터운 력사문화를 직접 느껴보았다.
황하국가지질공원
하남성 정주시 혜제구에 위치해있는 국가 AAAA급 관광구역으로서 동쪽으로 황하2교, 서쪽으로는 형양우구욕(荥阳牛口峪)에 이르며 황하, 황토, 황하 문화를 특징으로 한 지질공원인 동시에 황토고원과 화북평원간의 과도지역에서 가장 동남쪽 변두리에 위치한 망산탁상고원(邙山塬)이 분포된 지역이다. 이 관광구역은 2005년 8월에 국토자원부로부터 제4패 국가지질공원으로 비준되였다.
2019년 5월 17일, 중공중앙 총서기이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습근평은 정주 황하국가지질공원에서 황하 연안을 거닐면서 주변 환경을 시찰하고 황하 연안지역의 생태보호, 물자원 리용, 제방건설과 홍수방지형세 등 정황을 료해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정주에서 황하류역 생태보호와 고품질 발전 좌담회를 소집하고 “황하를 인민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강으로 되게 하자”는 위대한 호소를 발표했다.
습근평 총서기의 간곡한 부탁을 명기하고 ‘황하류역 중류지역은 산을 다스리고 하류지역은 모래톱을 다스리며 수재지역은 그물을 짜는’ 사로에 따라 하남성에서는 대하, 대산, 대평원을 보호, 치리하는 사업을 총괄하여 일련의 혁신적인 정책과 조치를 실시했다. 하남성에서는 일련의 중대 건설대상을 가속화하여 추진하고 구체적 실정에 맞게 황하류역 생태건설을 추진했으며 지역적 특색을 띤 고품질 발전의 새 경로를 적극 탐색하여 황하류역의 생태보호와 고품질 발전에서 선두를 달렸다.
황하박물관
중국에는 예로부터 “황하가 안정하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말이 있다. 황하박물관은 세계에서 최초로 세워진 수리분야 박물관으로서 국내에선 유일하게 황하를 주제로 한 자연과학기술박물관이며 ‘거대한 황하 축소판’으로 불리운다. 박물관에는 황하류역의 지리, 지형, 기후 등 자연 상황, 찬란한 황하문화 및 력대 수재와 한재, 재해 치리, 수토 유지, 수자원 개발리용과 치리개발에 대한 청사진 등 내용이 생동하게 전시되여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정주지역의 황하를 느껴보는 것이 처음입니다. 이번 참관을 통해서 황하의 치리가 어렵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꼈습니다. 하남성은 소량저에서 물과 모래를 조절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하여 효률적으로 황하의 모래 침적 현상을 감소시켰는데 많은 치리 경험과 좋은 결과로 황하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남방》잡지사 총편집인 요연영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홍기거기념관
홍기거기념관은 하남성 림주시에 위치해있는데 림현(현재의 림주시)인민들이 물이 부족한 낡은 면모를 개변하기 위해 ‘자력갱생하고 간고하게 창업하며 단결협력하고 사심없이 기여하는’ 정신으로 홍기거를 건설한 위대한 업적에 토대하여 건립된 것이다. 1975년, 홍기거 총간선 수로 중추공사의 배수문 위치에 홍기거기념정자가 세워졌다. 2000년에 확장한 후 홍기거기념관이라 이름을 바꾸고 2014년 5월 1일에는 홍기거기념관 신관이 개관되였다. 낡은 기념관 서쪽에 자리한 신관은 붉은색을 기본바탕으로 설계되고 건축물의 전반 조형이 홍기거의 흐르는 물과 흡사하다. 전시관은 ‘서문’, ‘한마(旱魔)’, ‘기적’, ‘기념비(丰碑)’, ‘꿈’, ‘정신’ 6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는데 총 2000여점의 진귀한 문물과 소리, 전기, 동영상을 리용하여 당시 10만 대군이 태항산에서 로동하는 장면을 립체적으로 구현했다. 낡은 기념관에 비해 신관은 총면적이 8배나 확대되였고 사진, 문자, 실물로 전시하는 토대에 멀티미디어, 4D, 스마트 터치 등 현대식 표현형식을 융합시켰다.
청년동
청년동은 홍기거 총간선의 주요 공사중 하나로서 임촌진 로가괴촌 서쪽 ‘닭이 한번 울면 세개 성에 울린다’는 설이 있는 우령산촌 아래에 위치해있다. 당시 동굴을 뚫는 작업에 참가한 돌격대가 전 현에서 뽑은 300명의 우수청년들로 구성되여 ‘청년동’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청년동은 태항산 산허리의 절벽에 수축되였는데 홍기거의 대표적인 공사이다. 홍기거 수로, 건축과 자연경관이 절묘하게 결합된 제일 기묘하고 간고한 구역인 청년동은 총길이 616메터, 높이 5메터, 너비 6.2메터로서 1960년 2월 10일에 착공하여 1961년 7월 15일에 준공되였다.
1960년 2월에 착공한 홍기거 공사는 그해 10월, 어려운 국가 경제형편에 자연재해까지 더해져 시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루빨리 장하의 물을 림주에 끌어가기 위해 일군 사이에서 300명의 청년들을 모아 돌격대를 구성하고 계속 시공을 이어나갔다. 당시 인당 하루 량식 배급량은 겨우 6냥 정도였는데 그들은 산에 올라 산나물을 캐먹고 장하에서 자라는 수초를 뜯어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렬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련환포’, ‘삼각포’, ‘와강요포(瓦缸窑炮)’ 등 폭파기술을 개발해 기존 하루 평균 0.3메터의 진척진도를 2메터로 늘였다. 1년 5개월 동안의 분전 끝에 1961년 7월 15일, 동굴을 뚫는 데 성공하게 되였다. 돌격대 청년들의 간고분투의 업적을 기념하고저 홍기거공정지휘부에서는 이 동굴의 이름을 ‘청년동’이라 지정했다.
안양 은허유적지
3월 23일, 취재팀은 하남성 안양시 은허유적지를 참관하고 3000여년의 력사문화를 느껴보았다.
은허는 중국에서 첫번째로 문헌기록이 되여있고 갑골문과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그 존재가 증실된 도성유적지이다. 현재 은허유적지에서 발굴해낸 갑골문수가 무려 16만점이 되는데 도합 4500개 좌우의 문자가 포함되고 해독한 문자는 약 1700개이다. 1936년에 발굴한 YH127 갑골 구뎅이에서 출토된 갑골문수가 1만 7096점이였는데 대부분 상왕 무정 시기의 천문, 지리, 군사, 농업 등과 관련된 기록이였다. 이로써 은허유적지는 학술계에서 ‘중국 최초의 도서관’이라 불리게 되였다.
습근평 총서기는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는 우리 당이 리론을 혁신하는 ‘뿌리’이며 우리가 맑스주의 중국화, 시대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경로는 ‘두개 결합’이다. 문화적 자신감을 견정히 하고 중국인으로서의 자신심과 긍지감을 증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더욱 웅장한 은허국가고고학유적공원의 건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은허유적지 고고학 발굴은 중화문명의 원천탐구 공사중의 하나로서 이미 국가적 계획에 내포되였다. 그 범위는 은허유적보호구역 전반을 포함했는바 세계 일류의 국가 고고학 발굴 유적 공원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문화적 자신감을 배경으로 하는 새시대, 은허유적지는 더욱 높은 국가 사명감을 담당하고 더욱 많은 민족적 기대를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