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온 집 안에 기쁨이 넘치는 날
어머니를 높이 모신 환갑날이랍니다
1980년대, 1990년대의 환갑잔치에서 무조건 불렀던 노래이다. 30여년 전, 민족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부모님을 모시고 환갑잔치를 치르던 일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나도 60주세 환갑생일의 주인공으로 되여 세월이 준 훈장을 받아안게 되였다. 한겹 두겹 나이테가 60겹 쌓여 황금빛 년륜을 새겨가고 있으니 영광의 훈장이 아닐 수 없다.
30년 전, 서른살이였던 나의 눈에 환갑상을 받는 부모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로인이였다. 힘겹게 살아오신 그 시절 부모님 년배는 기본상 비슷한 모습이였다.
환갑상을 차리고 부모님께 잔치를 치러주는 것은 자녀들의 효도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미풍량속이다. 부모님들이 건강하게 살아왔음을 잔치를 벌여 축하하고 큰절 올리며 오래오래 앉으시길 기원한다.
언제부터인가 환갑잔치 문화에 변화가 생기면서 제 나이에 잔치를 차리는 가정이 점점 적어졌고 70세의 진갑이 환갑잔치로 변하더니 지금은 아예 80순에 환갑 삼아 쇠는 집들도 있다.
이런 세월에 60세 친구들에게 환갑을 쇠여야지 않느냐고 말하면 “젊은 나이에 무슨 환갑소리를 하냐.”고 눈을 흘긴다. 60이 청춘이라고 정력이 왕성한 부모님에게 환갑잔치를 권고하면 도로 욕보는 세월이다.
딸은 환갑생일인데 그래도 왕년과 달리 범위를 넓혀 색다르게, 뜻깊게 쇠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해마다 생일 아침이면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점심, 저녁은 30여년 변함없이 마음을 나누고 친분을 이어온 소중한 친구들과 소모임으로 소박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수다 떨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멀리 있는 딸과 사위가 잊지 않고 보내주는 꽃다발과 스카프, 가방 등 선물이면 생일날은 충분히 행복했었다.
세월과 더불어 풍부한 물질문화, 생활수준의 향상과 사람들의 건강관리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로화속도는 점차 늦춰지고 있다. 따라서 직장일에서 해방되고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번중한 집안일에서 해방되여 큰 근심걱정 없는 60대는 여유만만 자유로운 시기이다. 꽃피는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6’자의 문고리를 쥐고 담담하게 한발작 척 내디딜 거라 생각했던 나인데 정작 문턱을 넘으려고 하니 허무함과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서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때마침 한 TV프로에서 한 장수로인의 말씀이 일렁이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주였다. 그는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60세부터 80세 사이의 삶이 제일 즐거웠고 보람찼다고 하면서 지금도 일주일에 5일은 강의하러다닌다. 60세부터 보람찬 삶이 시작이라면 나의 후반생 역시 멋진 인생의 시작이거늘 느슨해진 마음에 재충전하고 신들메를 졸라매 세월이 주는 년륜에 한겹 한겹 값진 테를 얹어갈만단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나이 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 만큼 늙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나이타령만 하고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마음이 늙으면 부딪치는 모든 일에서 포기부터 앞선다.
나는 나름 잘하려고 노력한다. 퇴직 후, 세상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재직 때 익숙했던 사업 반경과 사교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서 배움에 열을 올리고 무모지를 개척하면서 자그마한 성적에도 희열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성 쌓고 남은 돌’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부질없는 근심과는 달리 나를 요구하는 여러 사회단체에 몸 담그고 36년간 쌓아온 내공과 경험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문학에 흥취를 가지고 늦둥이 작가로 활약하면서 또 다른 삶의 맛과 매력에 폭 빠져 그 즐거움과 성취감에 심취해 살고 있다. 덕분에 ‘시대를 따르는 멋진 엄마’로 딸과 사위에게서 좋은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정무대청에서 휴대폰으로 수속할 일이 있었는데 젊은 공직인원은 나를 쳐다보더니 이런 조작은 할 수 없을 거라 짐작했는지 자녀들에게 부탁해서 하라고 했다. 나절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어련히 못할 거라 짐작하며 늙은이 취급하는 것에 마음이 서글펐다.
“자기네 엄마는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나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사람을 어떻게 보고 말이야.” 하고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딸한테 서운함을 토로했더니 딸은 “지금 엄마년배에 온라인 작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다 그러려니 짐작했겠죠. 울 엄마야 현대파 엄마니까 속상해 말고 계속 화이팅!”하고 나를 올려춰주면서 고무격려해주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아직 마음이 파란 청춘이다. “60이 청춘”이란 말이 예전에는 위로의 말일지는 몰라도 현시대에는 아주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니 높지도 낮지도 않은 60의 문턱을 화려한 환갑잔치가 아닌 소박한 축하파티로 무난하게 넘어감이 아주 현명할 것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딸과 사위는 프랑카드와 고무풍선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특별 제작한 상패 ‘위대한 어머니 상’을 안겨주며 생일 축하 이벤트를 해주었다. 딸로서, 며느리로서, 안해로서, 엄마로서 한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헌신해온 공로와 그 은혜에 감사함을 담은 가족 일동이 주는 공로상이란다.
비록 분에 넘치는 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무게를 잘 알기에 앞으로 그 상에 부끄럼 없는 엄마로, 시대를 주름잡는 멋진 엄마로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련다.
환갑잔치상이 아닌 자식이 선물한 공로상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
어머니를 높이 모신 환갑날이랍니다
1980년대, 1990년대의 환갑잔치에서 무조건 불렀던 노래이다. 30여년 전, 민족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부모님을 모시고 환갑잔치를 치르던 일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나도 60주세 환갑생일의 주인공으로 되여 세월이 준 훈장을 받아안게 되였다. 한겹 두겹 나이테가 60겹 쌓여 황금빛 년륜을 새겨가고 있으니 영광의 훈장이 아닐 수 없다.
30년 전, 서른살이였던 나의 눈에 환갑상을 받는 부모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로인이였다. 힘겹게 살아오신 그 시절 부모님 년배는 기본상 비슷한 모습이였다.
환갑상을 차리고 부모님께 잔치를 치러주는 것은 자녀들의 효도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미풍량속이다. 부모님들이 건강하게 살아왔음을 잔치를 벌여 축하하고 큰절 올리며 오래오래 앉으시길 기원한다.
언제부터인가 환갑잔치 문화에 변화가 생기면서 제 나이에 잔치를 차리는 가정이 점점 적어졌고 70세의 진갑이 환갑잔치로 변하더니 지금은 아예 80순에 환갑 삼아 쇠는 집들도 있다.
이런 세월에 60세 친구들에게 환갑을 쇠여야지 않느냐고 말하면 “젊은 나이에 무슨 환갑소리를 하냐.”고 눈을 흘긴다. 60이 청춘이라고 정력이 왕성한 부모님에게 환갑잔치를 권고하면 도로 욕보는 세월이다.
딸은 환갑생일인데 그래도 왕년과 달리 범위를 넓혀 색다르게, 뜻깊게 쇠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해마다 생일 아침이면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점심, 저녁은 30여년 변함없이 마음을 나누고 친분을 이어온 소중한 친구들과 소모임으로 소박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수다 떨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멀리 있는 딸과 사위가 잊지 않고 보내주는 꽃다발과 스카프, 가방 등 선물이면 생일날은 충분히 행복했었다.
세월과 더불어 풍부한 물질문화, 생활수준의 향상과 사람들의 건강관리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로화속도는 점차 늦춰지고 있다. 따라서 직장일에서 해방되고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번중한 집안일에서 해방되여 큰 근심걱정 없는 60대는 여유만만 자유로운 시기이다. 꽃피는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6’자의 문고리를 쥐고 담담하게 한발작 척 내디딜 거라 생각했던 나인데 정작 문턱을 넘으려고 하니 허무함과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서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때마침 한 TV프로에서 한 장수로인의 말씀이 일렁이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주였다. 그는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60세부터 80세 사이의 삶이 제일 즐거웠고 보람찼다고 하면서 지금도 일주일에 5일은 강의하러다닌다. 60세부터 보람찬 삶이 시작이라면 나의 후반생 역시 멋진 인생의 시작이거늘 느슨해진 마음에 재충전하고 신들메를 졸라매 세월이 주는 년륜에 한겹 한겹 값진 테를 얹어갈만단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나이 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 만큼 늙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나이타령만 하고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마음이 늙으면 부딪치는 모든 일에서 포기부터 앞선다.
나는 나름 잘하려고 노력한다. 퇴직 후, 세상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재직 때 익숙했던 사업 반경과 사교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서 배움에 열을 올리고 무모지를 개척하면서 자그마한 성적에도 희열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성 쌓고 남은 돌’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부질없는 근심과는 달리 나를 요구하는 여러 사회단체에 몸 담그고 36년간 쌓아온 내공과 경험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문학에 흥취를 가지고 늦둥이 작가로 활약하면서 또 다른 삶의 맛과 매력에 폭 빠져 그 즐거움과 성취감에 심취해 살고 있다. 덕분에 ‘시대를 따르는 멋진 엄마’로 딸과 사위에게서 좋은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정무대청에서 휴대폰으로 수속할 일이 있었는데 젊은 공직인원은 나를 쳐다보더니 이런 조작은 할 수 없을 거라 짐작했는지 자녀들에게 부탁해서 하라고 했다. 나절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어련히 못할 거라 짐작하며 늙은이 취급하는 것에 마음이 서글펐다.
“자기네 엄마는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나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사람을 어떻게 보고 말이야.” 하고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딸한테 서운함을 토로했더니 딸은 “지금 엄마년배에 온라인 작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다 그러려니 짐작했겠죠. 울 엄마야 현대파 엄마니까 속상해 말고 계속 화이팅!”하고 나를 올려춰주면서 고무격려해주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아직 마음이 파란 청춘이다. “60이 청춘”이란 말이 예전에는 위로의 말일지는 몰라도 현시대에는 아주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니 높지도 낮지도 않은 60의 문턱을 화려한 환갑잔치가 아닌 소박한 축하파티로 무난하게 넘어감이 아주 현명할 것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딸과 사위는 프랑카드와 고무풍선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특별 제작한 상패 ‘위대한 어머니 상’을 안겨주며 생일 축하 이벤트를 해주었다. 딸로서, 며느리로서, 안해로서, 엄마로서 한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헌신해온 공로와 그 은혜에 감사함을 담은 가족 일동이 주는 공로상이란다.
비록 분에 넘치는 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무게를 잘 알기에 앞으로 그 상에 부끄럼 없는 엄마로, 시대를 주름잡는 멋진 엄마로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련다.
환갑잔치상이 아닌 자식이 선물한 공로상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
(필자는 주민족사무위원회 전 사업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