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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심고 온 추억


날짜 2024-06-17 16:32:24


내가 살고 있는 공농촌과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 청산촌은 5리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장백산맥을 타고 줄줄이 늘어선 고향마을의 산들은 사시장철 옷을 바꿔 입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록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경치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아 도시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람지로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통이 편리해 문 앞에서도 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고 병원, 은행, 장마당이 모두 가까워서 로인들이 살기 편한 곳이 나의 고향이라 자부할 수 있다.
4월 하순의 어느 하루, 나와 친구는 달래와 민들레를 캐려고 고향으로 통하는 산길에 들어섰다. 올해도 고향 마을에는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고 앞산 마루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있었으며 높은 뒤산에는 하얀 살구꽃이 과수원마냥 온 산을 덮고 있었다. 꽃대궐을 떠인 마을은 그야말로 선경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 파종 전이여서 들판에는 소떼와 양떼가 여유롭게 먹이를 찾아 흐르고 꿩들이 벌판에 내려와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며 작은 송아지 만큼한 귀여운 노루가 껑충껑충 뛰여서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과 마을 앞뒤산의 유난히도 호함지게 핀 꽃들을 감상하니 그림 속을 걷는 듯 기분은 한결 상쾌하였다. 젊어서는 일에 쫓기면서 살다 보니 무심히 지나쳤는데 한가한 로인이 되니 아름다운 경치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나와 친구는 수다를 떨기도 했다. 변함없는 고향산천을 바라보니 지식청년, 친구들과 함께 했던 18세 꽃나이 시절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50여년 전의 고향 마을에도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은 찾아왔다. 4월 초순에는 얼어붙었던 해란강이 점차 풀리기 시작한다. 해란강반의 버들개지가 오동통 피여나고 앞산 마루의 진달래와 마을 뒤동산의 살구나무가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생산대에서는 본격적으로 농사준비를 다그쳤다. 그때 그 시절에도 정부에서는 공작대를 농촌에 파견했는데 그들은 농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농촌의 락후한 면모를 개변시키려고 로심초사하였다. 봄이 오면 저녁마다 사원대회를 소집하고 종자 선택으로부터 포전관리까지 상세히 강의하였다.
진달래와 살구나무가 꽃망울을 짓기 시작하면 조파종이 시작되였다. 겨우내 잠자던 산촌 마을은 동면에서 깨여나 만물을 싹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봄처럼 생기로 차넘쳤다. 이른아침이면 로동임무를 배치하는 생산대장의 목소리와 황소의 우렁찬 영각소리, 채찍으로 소의 궁둥이 내리치면서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목소리까지 합세하여 고즈넉하던 마을은 장마당을 방불케 하였다.
비닐하우스가 없었던 그 시절에 유지로 논판에 벼모를 키웠는데 장화가 없던 그 시절 공작대 대원들은 사원들과 함께 차거운 논판에 들어서서 기술지도를 하였다. 파종철과 김매기철에도 공작대 대원들은 사원들과 함께 밭일을 하였고 휴식시간이면 사원들에게 시사학습도 시켰다. 18세에 학업을 마치고 생산로동에 참가한 나와 친구들은 겨울에는 소똥비료를 큰 버들광주리에 담아 발구에 싣고 소를 몰아 밭에 내는 일, 봄이면 파종일과 김매기, 가을에는 가을걷이와 탈곡하는 일에 참가했다. 어느 한가지도 쉬운 일 없었다. 비록 농사일은 힘들었지만 지식청년, 친구들, 사원들까지 일터에 나가면 40여명이 되여 일터는 항상 흥성흥성하였다. 그렇게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상해지식청년들은 우리 사회청년들에게서 조선말을 배우는 걸 잊지 않았다. 상해 지식청년 손가려는 집체호의 생활호장이였는데 령리하고 총명하여 조선말을 아주 잘 배워냈다. 그는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큰 보자기를 만들어 돼지풀도 잘 뜯었다. 어느 하루 휴식시간, 손가려는 밭에서 돼지풀을 뜯고 있었다. 전날에 비가 와서 신발에 흙이 들러붙어 발자국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돼지풀을 뜯었는데 흙이 발에 붙어 발이 유난히 커보였다. 그의 발을 본 우리 친구들이 “얘, 너는 얼굴이 곱게 생겼는데 무슨 발이 그리 크냐.”고 우스개를 하였더니 밭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조파종을 시작하여 삼사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마을 앞산의 진달래와 높은 뒤산의 살구꽃이 활짝 피여난다. 마을 어르신들은 꽃이 곱게 피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기쁨에 겨워하였다. 그 시절 어르신들은 진달래 꽃술이 열두개면 그해는 영낙없이 풍년이 든다고 했다. 하루속히 식량고생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였기에 해마다 봄이 되고 진달래와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곱게 피면, 진달래 꽃술이 열두개면 풍년이 들 것이라는 희망과 꿈을 안고 농사를 열심히 하였던 것 같다.
드디여 벼모내기가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논판에는 풀이 자라기 시작한다. 생산대장은 제초기가 무거워서 밀지 못하는 처녀들에게 논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제초기를 발명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김매기가 끝나면 생산대장은 사원들을 동원하여 밭머리에 큰 웅뎅이를 파고 풀을 벤 후 웅뎅이에 넣고 썩여 이듬해 사용할 비료를 장만하기도 하였다.
알록달록 단풍 든 가을이 오면 지식청년들과 함께 10여리 산길을 걸어 감자 캐러 다니던 즐거움과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탈곡하면서 떠들썩했던 일터가 지금도 환등처럼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 시절에도 림업정책이 아주 엄격했는데 땔나무를 장만해야 할 겨울철이 오면 공작대와 당지부에서는 싸리나무와 같은 잡목으로 땔나무를 해결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 시절 고향마을에는 한건의 란벌, 도벌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원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당의 지시에 호응하여 산을 아끼고 보호하였기에 나무가 꽉 박아선 고향산천은 여름이면 록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곱게 단풍이 들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오늘의 고향은 가난을 딛고 부자마을로 탈바꿈하였다. 기계로 농사하고 가전제품이 구전한 집에서 촌민들은 근심걱정 없이 생활하며 행복을 누려가고 있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속에 아로새겨져있다.   
 
(필자는 화룡시 룡성진 공농촌 촌민)
작가:원죽순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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