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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이라는 이름에 부끄럼 없도록…


날짜 2021-04-12 15:17:40


연길시 건공가두 연춘사회구역 제1임 당위 서기 겸 주민위원회 주임이였던 김봉선은 공산당원의 본색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1987년 5월, 당시 돈화민주목기공장에서 재무사업을 주관하던 김봉선은 마침내 오랜 숙원을 실현하여 장엄하게 당기 아래에서 선서하였다.
일찍 처녀시절 지식청년으로 귀향하여 부녀주임 직책을 떠메고 열심히 일하며 당조직의 중점적인 양성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교장사업을 하시던 공산당원 아버지가 그토록 불쌍한 아이들을 보살피고 어려운 교직원들을 돌보던 선행을 보면서 부친 같은 사람이 되리라 다졌다. 촌장인 큰아버지가 사원들을 위해 쉼없이 뛰여다니는 것도 공산당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여 자신도 꼭 공산당원이 되리라 다짐했던 그였던지라 열심히 당을 따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다 보니 병간호에 나서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그만 입당기회를 놓치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공산당원에 대한 숭배는 줄곧 변함없어 결혼 후 험난한 살림살이에 모대기면서도 당을 따르는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당조직에서는 학습에 게을리하지 않고 로동자들과 친근한 벗이 되여 사업에 충직하는 김봉선을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공산당원이 된 긍지감은 대중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길을 줄곧 힘차게 밀어주었다.
“우리는 한집식구”
1998년, 주민구역을 사회구역체제로 개혁할 때 갓 퇴직한 김봉선은 연춘사회구역당총지 서기 겸 주임으로 초빙받게 되였다.
시초에는 사무실도 없어 자택에서 회의하고 점심밥도 대접하군 했으며 모든 서류는 손필기로 써야 했다. 한족 주민들을 조직하여 빵을 쪄내고 조선족 주민들이 이고 다니며 팔아 한푼 두푼 운영경비를 모았다.
여러 민족이 사는 사회구역인지라 차별없이 골고루 돌보았다. 로인협회를 조직할 때에도 민족련합협회를 꾸려 활동도 같이하고 유람도 함께 다니군 하면서 아름다운 민족단결의 꽃 이야기들을 많이 엮어내려갔다.
2012년, 중풍으로 앓고 있는 한족주민 장씨의 딸이 길림체육학원에 입학했을 때 김서기는 시당위로부터 ‘선진사회구역 주임’으로 받았던 장려금 500원을 그날로 장씨 부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한족손자 추해도(앞줄 왼쪽 아이)의 조선족 할머니(뒤줄 오른쪽 사람)

2013년, 시교외의 한족 농민공의 손자 추해도(邹海涛)를 책임지고 옷가지며 학용품과 부식물을 사들고 헐망하게 사는 그의 가정을 방문하였다. 친손자보다 한살 많은 추해도에게 손자와 똑같은 옷을 사 입히고 휴일에 집에 데려와 손자와 같이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마음껏 즐기게 하였다. 모아산구경을 못했다는 추해도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모아산에 올라 텐트를 쳐놓고 아이들이 즐겨 먹는 먹거리도 푸짐히 안겨주기도 했다. 친손자도 “해도형, 해도형” 하며 너무도 잘 따랐다. 밤 늦게까지 유희를 놀다가 한침대에서 껴안고 자는 ‘두 손자’를 바라보며 김봉선은 무한한 행복감에 잠겨있었다. 어려서부터 민족단결의 씨앗을 심어주는 긍지감은 너무도 달콤하였다.
련속 3년간 연길아리랑방송과 손잡고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당원들의 도움도 받아 해마다 해도에게 1000원씩 조학금도 쥐여주었고 6.1절이나 설이 돌아오면 선물과 용돈을 보내주며 두 집 사이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조선족할머니와 한족손자>의 미담은 중앙인민방송, 길림신문 등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하루는 가두의 회의에 참가하고 오후 1시가 다 되여서야 점심을 먹으러 방금 집에 들어서는데 길가에서 소방차 경적소리가 울렸다. ‘어디에 불이 났을가?’ 창문가에 다가가 남쪽을 내다보던 김봉선은 방금 벗은 신을 되신고 냅다 뛰였다.
바로 같은 구역 단층집에서 사는 4가구 한족집이 화재를 입었던 것이다. 그는 리재민들을 도와 물건을 수습하고 그들의 안식처까지 마련해준 후 밤 7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설 때까지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이토록 수천명 여러 민족 주민들을 친형제마냥 보살피며 사업하는 그에게 조직에서는 200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3회 민족단결진보 모범개인’의 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타민족들과 다정히 어울리며 옆집의 젊은 한족부부가 널어놓은 빨래가 비에 젖게 될 때도 인차 거두어들여 저녁에 차곡히 다듬은 침대보며 옷가지들을 건네주기도 하였다. 2019년 10월, 그의 가정은 ‘2020 연길시 민족단결 진보모범 100가정’ 상패도 받아안았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인데요”
그가 주임사업을 할 때 길거리 제설작업은 어려운 과제중의 하나였다. 사회구역 골목은 물론이고 큰길까지도 사회구역에서 맡아야 했는데 그때는 제설기도, 눈녹이 소금도 없을 때여서 눈이 내리면 번마다 로인들이 떨쳐나서 “김서기를 돕는다.”, “우리 딸이 고생한다.”며 쌓인 눈들을 말끔히 쳐내군 하였다.
“김서기, 최아매 넘어져서 골절되였소.”, “봉선이, 우리 아바이 운명하게 되오.”… 근 20년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사회구역내의 로인들은 크고 작은 일에 이 ‘딸’을 부르며 한밤중에, 새벽녘에도 구조전화를 걸어오군 한다. 이런 ‘부모님’들도 인젠 고령이 되여 하나 둘씩 저세상으로 떠난다. 김봉선은 이 정분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명절인사, 병문안, 사후처사를 빠짐없이 해드리고 있다.
당시 구역내 절반 이상은 불을 때는 단층집들이였다. 공사장을 지나다가 흙속에 땔나무들이 많은 것을 발견한 김봉선은 그것들을 모아 공사장 책임자와 상론하여 밀차를 빌려 빈곤호 가정과 독거로인의 땔감을 해결해주군 했다.
그의 선량한 행실을 찬미하여 2007년 8기 《중국 도시구역 통신》잡지에는 <사회구역의 훌륭한 딸>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회구역 관리직을 젊은이들한테 넘겨준 후에도 그의 사회구역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최저생활보장금 대상인 한 독거로인이 중병을 앓으면서도 경제난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로인복지병원으로 뛰여다니며 무료로 입원치료받도록 조률하고 사회구역과 상의하여 간호대를 조직하여 한사람이 하루씩 륜번해 보살피도록 조치했는데 첫 사람으로 간호를 맡아 나선 것도 역시 김봉선이였다.
사회구역 사업이 잘되자면 로령대오 관리가 잘되여야 한다며 지금도 사회구역을 도와 로인봉사 사업을 하면서 로인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학습일이면 시사보도도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고 노래도 배워주고 춤도 즐기며 함께 다채로운 로후를 장식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여야 사회구역 부담을 덜어주고 당조직이 시름놓게 된다.”고 항상 이야기하는 김봉선이다.
사회구역당위 서기 사업을 인계하고 위원으로 기층당지부 서기직을 맡은 후 그는 당원대오 건설의 묘방을 계속 탐구하면서 활기 있는 당활동 구상들을 내놓아 로당원들을 사회구역 건설에,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행사에 융합되도록 이끌었다. 로당원들의 실제곤난 해결에 모를 박고 그들의 정치자질 제고에도 크게 관심을 돌렸다. 퇴직은 하였어도 퇴색하지 않는 공산당원의 본색으로 사업하는 그의 열정과 기여에 중공길림성위 로간부국에서는 김봉선을 연변지구의 유일한 ‘2017년도 전 성 리퇴직간부 훌륭한 서기’로 표창하였다.
 
“뢰봉다운 로인이 되여야지요”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두 눈이 완전 실명된 김봉숙 로인이 계신다. 집도 저금도 없는 청빈한 맹인이다. 자녀도, 친척 한분도 없는 혈혈단신인 데다 심장병으로 병원의 구급까지 받았던 로인이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들끓는 이 로인은 2004년부터 연길시 북산가두 로인뢰봉반 반장을 맡고 나서서 불우한 이웃 돕기를 즐기며 문천지진 때에는 결혼반지마저 팔아 사천을 지원하며 74세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뢰봉할머니’라 불리는 분이다.
2009년, 김봉선은 부부가 함께 로인뢰봉반에 참가하여 이 할머니를 ‘고모’로 모시고 살뜰히 보살피며 함께 사랑의 길을 걷게 되였다.
로인의 사회행사에 지팽이로 나서고 봄과 가을이면 묵직한 창문발도 깨끗이 빨래해 달고 침대보며 옷가지 빨래도 전담하였다. 평소 즐기는 소만두와 밀가루부침도 늘 해다 날랐다.
병이 나면 병간호는 우선이였고 로인이 넘어져 두 팔이 골절된 나날에도 살뜰히 간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룡시 서성진에는 맹인부부가 맹인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자가정이 있었다. 김봉선은 김봉숙 반장을 모시고 그 가정을 방문하며 경제적 지원을 하였고 이듬해 전기로 인해 화재를 입었을 때도 수십벌의 옷 등 생필품과 라지오를 들고 가 위문하였다.

연춘사회구역 자원자대오의 일원으로 사회봉사에 일조.

연길시 건공가두 연춘사회구역 장애자사업일군이 대퇴골무균괴사증으로 관절치환수술을 받을 때에도 성금 모으기에 앞장서 1000원을 기부하였다.
“애친경로, 빈곤구제, 애심조학은 공산당원마다 꼭 지켜야 할 도덕이지요.” 김봉선은 늘 이렇게 말하며 이렇게 실천해나가고 있다.
2013년, ‘3.5 뢰봉절’을 맞아 김봉선은 ‘연길시 10대 뢰봉학습 선진개인’으로 표창받았고, 그의 남편도 이듬해 이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2014년 12월, 김봉선은 ‘연길 훌륭한 이’로 표창받았다.
2017년 3월, 김봉선 부부는 북산가두와 손잡고 김봉숙 로인의 팔순잔치를 뜻깊게 차려드렸다. 친자식의 효도마냥 넘쳐나게 차려진 특색 있는 잔치는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2019년 9월, 김봉선 부부는 김봉숙 할머니를 사회복리원에 안치시키고 보살펴드리며 로반장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로인뢰봉반을 열심히 꾸려가고 있다. 로인뢰봉반에 가입한 10여년간 김봉선은 재해구제, 빈곤층 지원, 애심조학에 앞장섰으며 양로원과 영예원 위문에도 빠지지 않았다. 청명과 추석에 선렬들을 기리는 뢰봉반 전통 행사에 해마다 한번도 빠진 적 없이 참가했다. 연변적 654명 렬사가 합장되여있는 길림화피창렬사릉원도 다녀왔고 화룡 처창즈항일유격대근거지유적 등 연변의 많은 혁명유적지에도 다녀오며 전통교양을 소중히 받아들인다. 선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행복이 있고 위대한 중국이 있게 되였다고 학습체득 교류 때마다 말하는 김봉선이다.
그는 지난해 전염병사태로 많은 구역들이 봉쇄되였을 때 사회구역 젊은이들처럼 사회봉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였다. 지난해 3월 중순, 큰 눈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로인뢰봉반 두명의 자원봉사자가 농촌빈곤부축대상의 게사니알을 실어다 팔아줄 때 김봉선은 선참으로 400원을 내여 100알을 사 전염병 예방, 통제로 쉴 새 없이 뛰여다니는 연춘사회구역 사업일군들에게 보내주었다. “빈곤호를 도왔고 자원봉사자를 도왔고 사회구역 젊은이들을 위문했고… 방역투쟁에 나도 한몫 참여한 셈이지요.” 하며 ‘일거다득’이라 그는 웃음을 지었다.
공산당원으로서 남편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성금 800원을 기부했고 주민구역에서 열심히 긍정에너지를 전파하였다.
연길시 전국문명도시 건설에도 앞장서 나섰고 길목보초, 횡단보도 안내, 주민구역 정돈에도 참여하면서 남편과 함께, 사회구역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담당구역 쓰레기 줏기에도 땀을 흘렸다.
“로인뢰봉이라면 문명시민부터 되여야 한다.”며 남편과 함께 사회봉사에 뛰여들고 남편의 지지와 도움을 받으며 공익활동을 즐기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다. 그도 남편의 사업을 적극 밀어주어 공화국 창건 70돐을 맞으며 그의 남편도 2019년 10월 중국공상은행 총행으로부터 ‘리퇴직인원 선진개인’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사회구역의 딸로 불리던 김봉선도 인젠 공화국과 동갑인 할머니가 되였지만 지금도 그는 마냥 24시간 핸드폰을 켜놓고 로인들의 도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딱한 사정, 급한 사유를 접하면 급히 달려가고 수시로 사회구역 지도부와 련락을 취하군 한다.
해마다 ‘행복가정’, ‘문명가정’, ‘우수당원’의 영예가 차례지지만 위대한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을 맞아 공산당원의 긍지감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당의 양성과 대비하면 기여와 보답이 너무나도 적었다고 말한다.

해마다 참가하는 선렬 기리기 행사.

위대한 중국공산당은 중화민족을 이끌어 이 나라를 세우고 이 나라를 부강에로 이끌어 세계의 앞장에 서게 하였다. 김봉선은 위대한 중국공산당의 일원인 무한한 긍지감을 안고 당에 부끄럽지 않게 여생을 살리라 다지고 또 다진다.   
 
(필자는 연길시 건공가두 연춘사회구역 주민)
 
작가:박철원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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