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이라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대개 익숙히 알고 있는 연길시의 유일한 ‘전국문명단위’이다. 이 사회구역은 기층 당조직 및 사회구역 각종 활동을 창출하여 선보임에 늘 앞장서고 있는 우리 지역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단영사회구역에는 그 누구보다도 초심을 잃지 않고 공산당원의 사명을 짊어지면서 극히 평범한 로인협회사업과 새세대관심사업에서 묵묵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가는 71세 로당원 서명성 선생님이 계신다. 그의 감동적이면서도 참된 인간성이 돋보이는 단편 사적들을 모아 당에 대한 그의 빛나는 충성들이 우리 사회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한 사랑으로 차넘치고 귀감으로 될 수 있도록 널리 알리고자 한다.
흑룡강성 해림시 태생인 서선생님은 2004년 9월에 흑룡강성 해림시 모 중학교에서 교무주임으로 계시다가 정년퇴직하고 연변대학에서 교원사업을 하고 있는 두 자녀를 따라 연길로 오게 되였다. 비록 지인이나 친구도 별로 없었고 마누라마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좀 지난 터라 마음속의 고독감과 허탈감으로 인하여 한동안 혼자서 조용하게 ‘은거’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가르쳤던 한 학생의 “선생님, 퇴직 후 연길에서 무엇을 하십니까?”라는 문안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서선생님은 과거에 그 학생에게 했던 부탁과 결심이 떠올랐다. “동무들은 졸업 후 상급 학교에 가든지 아니면 사회에 진출하든지 꼭 나라와 인민에게 유용한 인재가 되여야 합니다. 이 선생님도 언제 어디서나 착실하게 일하여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당원교원으로 되겠습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서선생님은 지역사회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고 주민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한 사회구역을 찾아가게 되였다. 아무런 보수도 필요 없으니 그저 주민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어지간히 ‘젊은’ 조선족 남성들이라면 거의 다 이웃나라인 한국이나 일본에 나가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것이 더 ‘정상’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선생님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사회구역으로 발길을 돌리였다.
그렇게 찾아간 연길시 하남가두 백신사회구역에서 맡긴 로년사업은 무보수라지만 공산당원의 사명을 다하려는 서선생님에게는 크나큰 고무와 격려로 되였다. 당관계를 사회구역당지부로 옮겨온 후 당지부 활동에도 적극 참가할 수 있게 되였다. 비록 정년퇴직을 하였지만 몸과 마음은 절대 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년을 더욱 의의 있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고 사회구역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맡은 사업을 열심히 완수하였다. 사회구역의 로년사업은 대체로 세심함이 필요한 데 비해 사업성과가 눈에 크게 띄지 않는 것이기에 그의 첫발걸음은 무척이나 힘들고 무거웠다.
올해에 71세인 서선생님은 퇴직 전 중학교 교육사업에서 이미 해마다 우수교원, 우수당원, 우수덕육사업자 등 여러 영예를 받으신 분이였고 교수면에서도 흑룡강성 목단강지구의 중학교 한어문 교수능수였다. 음악에도 특별한 애호가 있어 과외 손풍금수로 30여년간 경력을 쌓기도 하고 여러 관현악기들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 웬만한 작사, 작곡도 할 수 있었다. 재능을 겸비한 데다 항상 열정적이고 부지런하며 책임감까지 강하여 사회구역에서 로년사업을 맡은 지 얼마 안돼 인차 사회구역의 로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불리우게 되였다. 평소 직접 손풍금을 어깨에 메고 손풍금을 타면서 로인들에게 흥겨운 노래를 가르치고 생활 속 건강상식을 공유하였고 생활이 어려운 로인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도움을 주었다. 또한 로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친 경제, 법률, 혼인, 사회 등 각종 난제를 자문하고 해결해주는 등 소박하면서 사소한 행동으로 정열을 불태우며 당에 대한 충성을 다하도록 노력하였다.
2010년 8월에 서선생님은 거주지의 이동과 함께 하남가두 백신사회구역에서 지금의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으로 사업터를 옮기게 되였다. 그때 연길시의 대부분 사회구역에서 ‘시민대강당’ 활동이 보편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는데 서선생님은 우선 흑룡강성으로부터 연길에 정착하면서 보고 느낀 ‘연길의 변화’ 그리고 ‘북산가두 뢰봉반’ 창시자인 맹인 김봉숙 로인의 사적을 둘러싸고 사회구역 로인들에게 100여차에 달하는 강연을 진행하였다. 당시 서선생님의 강연은 엄청난 환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명강의’는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그 후 ‘선진창조, 우수쟁취’ 활동이 진행되자 서선생님은 음악에 대한 각별한 애호와 다년간 축적한 지식경험에 근거하여 <선진창조 우수쟁취의 노래>를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연출하였는데 당시 연길시정부의 요청으로 여러 단위와 부문에 가서 직접 이 노래를 가르친 적도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서선생님은 사회구역의 로년사업은 물론 사회구역 예술공연의 수요에 따라 적잖은 노래들을 직접 창작하였다. 시대광장, 청년호광장, 진달래광장 등 시민무대를 통한 공연활동에서 널리 불리웠고 사회구역의 로인악대를 비롯한 합창단, 무용단 등 공연팀을 이끌어 크고 작은 대중무대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였다. 서선생님은 선후로 사회구역 로인들에게 사회주의핵심가치관, 민족단결진보, 마약금지, 식품안전 등 면에서도 광범위하게 선전을 진행하였다. 선후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을 찾은 성, 주, 시의 지도자들 심지어 국가급 지도자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참관 및 현지 조사와 연구를 하러 온 손님들은 그가 이룬 평범치 않은 성과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또 서선생님의 작품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청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창작가요들 가운데 <단영사회구역 사업자의 노래>는 가장 널리 불리우면서 애창곡으로 인정받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노래가사에 사회구역 사업일군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자질을 반영하여 사회구역 일군들로 하여금 노래를 듣고 부를 때마다 긍지감은 물론 고무와 격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사회구역 사무청사의 선전란에는 서선생님이 창작한 음악작품들이 수시로 전시되군 하는데 지금까지 창작한 근 100여수의 노래중에서 20여수는 이미 전시판으로 제작됐다.
사실 서선생님에게도 해외로무송출로 돈을 벌거나 유람을 다닐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이 있었다. 또 일부 로년대학에서 높은 보수를 제시하면서 강사로 초빙하려 하였지만 이러한 제안들을 그는 모두 거절하였다. 늘 소박하면서도 묵묵히 사회구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서선생님은 입당할 때 당기 앞에서 맹세했던 입당선서문을 늘 마음속 깊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새기면서 언제 어디서나 평범함으로 실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한 당원이 되기 위하여! 오직 중국공산당 당원이라는 그 영광스런 이름을 빛내기 위하여! 초심을 잃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을 신념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늘 드팀없이…
사회구역 주민들에게 직접 반주해가며 자작곡 보급.
일흔을 넘긴 서선생님은 변변치 않은 건강상태지만 사회구역과 주민들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이 봉사하려는 욕심에 밤을 새울 때도 적지 않았다. 병실에서 점적주사를 맞으며 채 완성하지 못한 음악작품들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퇴직 후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혀 사무용 일상 프로그램은 물론 PPT 제작까지 익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여느 젊은이들 못지 않게 현대화한 기술능력을 키우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바삐 보내도 행복하다는 서선생님이다. 동존서부대에 가서 장병들에게 무료로 조선어 강의를 해주는가 하면 기층선전강연, 조선족협회 책임자, 음악편집, 노래강사 등 간고한 임무들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문명도시 창조’를 위해 연길시문화관에서 광범위하게 보급한 <문명의 도시, 행복의 도시>라는 노래는 서선생님의 애착이 깊은 작품이다. 자체로 주머니를 털어 가곡과 반주곡을 편곡하여 적지 않은 단위에 보급하였는데 연길시가 최종 전국문명도시로 평의되면서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잊을 수 없는 그날>, <입당선서의 노래>, <중국꿈을 이루자> 등 노래들을 사회구역 주민들에게 빠른 시간에 보급하고 18차 당대회, 19차 당대회 정신 관련 학습자료로 찍어서 나누어주고 자체로 제작한 PPT를 리용하여 주민들에게 시대를 따르고 당을 따라 학습할 것을 호소하였다. 주민들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을 조금이라도 더 깊고 많이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서선생님의 바쁜 일상은 요즘도 계속된다.
지난해 단영사회구역에서 조직한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주제음악회 등 무대공연에 4차례나 공연팀을 조직하여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학교의 학생들, 동존서부대의 전사들, 재직당원들, 사회구역 주민 등이 포함된 공연팀 성원들을 이끌고 20근이 되는 손풍금을 직접 어깨에 멘 채로 반주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70세가 넘는 서선생님의 얼굴에는 어느덧 땀방울이 맺힌다. 이외에도 한족주민들에게는 조선말로 된 노래를, 조선족주민들에게는 한어로 된 노래를 배워주어 활동참여의 흥취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노래, 건강상식, 생활상식, 시사정치 등 1전 한푼 받지 않는 무료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서선생님은 짬짬이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아 타자하고 프린트해 사회구역 로인들에게 전부 무료로 나누어주고 학습시켰다. 사회구역의 주제당일 활동 때나 주민회의 때는 조선말, 한족말로 번갈아 번역해가면서 로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여 선전강의의 효과를 높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근 10여년을 바라는 것 없이 로당원의 멋진 형상을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였다.
전국적으로 함께 나서서 전염병을 물리치는 준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선생님은 자체로 경비를 들여 70세 좌우의 로인 노래애호가들을 조직하고 24명 성원들로 구성된 노래교실을 꾸려 희망 부르기 활동을 조직해오고 있다. 우리 주변의 고독한 독거로인들과 전염병사태로 인하여 정서적으로 심하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웃들을 위하여 노래를 통해 몸과 마음이 더욱 즐거워질 수 있도록, 여러가지 유익한 체험을 통해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도록,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서로서로의 따뜻한 교류를 통해 더 많은 인간애를 느끼고 우리 사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아담한 노래교실에는 만년의 행복을 예쁘게 노래하려는 로인들의 노래소리는 끊이질 않고 있다.
얼마 전, 서선생님은 사회구역 사업의 수요에 따라 새세대 관심 사업을 맡게 되였다. 서선생님은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더욱 건강하고 건실하고 튼튼하게 나라의 기둥으로 키워감에 로년의 힘을 전부 쏟아붓고 여생을 공산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끝까지 다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미 서선생님은 붉은 넥타이들을 이끌고 혁명전통교양에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흥안소학교, 조양소학교, 북산소학교 등 연길시의 여러 소학교들을 다니면서 중화민족의 강인한 정신과 강대한 력량, 대국으로서의 인류 운명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중국의 꿈에 대하여 멋진 강연을 하였다. 서선생님의 능란한 표현과 풍부한 경험으로 축적된 강연들은 수많은 꿈나무들과 학교측의 절찬을 받았다.
이처럼 서선생님은 평범한 사회구역의 로인협회 회장으로서 로인들의 신체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으로서 한창 자라나고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더욱 크고 아름다운 미래의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도록 로당원의 매력을 무한정 뿌리고 있다.
지난해 연변텔레비방송국 뉴스프로에서 한 로인이 길거리에서 현금 만원이 넘게 들어있는 돈봉투를 주어 갖은 노력을 통해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다는 사연이 보도되였다. 점점 메말라가는 요즘 사회의 인간성에 이런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면서 위안을 해보는데 그 뉴스의 주인공이 바로 서명성 선생님이였다. 2020년 3월 17일, 서선생님은 강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커다란 돈봉투를 주었다. 그 누구도 없었던 강변에서 추위를 이겨내며 한참 동안 돈봉투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결국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다른 방법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주인을 찾아 1전 한푼 차이 없이 그대로 돌려줬다. 서선생님은 지금까지 좋은 일을 하고도 줄곧 자신의 이름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번에 돈주인이 보도매체를 찾아 고마움을 전달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였다. 과거 우리는 공산당원으로서 사심없이 성심성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함에 이름 석자도, 발자취도 남기지 않았던 공산주의전사 뢰봉을 익숙하게 떠올린다면 최근에도 가끔씩 현시대 뢰봉들이 살아나서 어둠을 밝혀주고 있음에 의심할 바 없는 것 같다.
새세대관심사업에도 심혈을.
평범한 로당원인 서선생님의 아름다운 충성은 각급 당과 정부로부터 많은 표창 및 영예를 수여받아 우수한 로당원임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2013년에는 유일한 군중대표로 ‘연길시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의 영예를, 2014년에는 ‘삼강삼애 자원봉사 도덕모범’으로, 2018년에는 연변주 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사법국 등 단위의 ‘우수선전원’ 표창장을… 2019년 12월에는 ‘연길시 새세대관심사업 선진개인’이라는 영예를 따냈고 2020년에는 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 ‘선진일군’이라는 영예를 수여받게 되였다.
평범한 로당원의 평범치 않은 충성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당원이라 하더라도 평범치 않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더욱 소중하고 값진 삶이 아닐가 다시한번 심사숙고하게 된다. 한 공산당원의 아름다운 충성, 절대로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