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마르케스의《백년의 고독》은 긴긴 사색의 실마리를 남겨준 작품이다.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독의 운명을 되뇌이며 깊은 밤 노트북을 두드린다.
진실의 고독
부엔디아 가문의 제4대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바나나회사 로동자 파업에 참여한다. 3000명의 파업참가자들이 모조리 사살당하고 그 시체들은 기다란 렬차에 실려 바다에 버려진다. 죽음의 렬차에서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로서 피비린 살륙의 진실을 목격했지만 조작된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3000명 이상이였는데 죄다 바다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있거라.”
삶의 마지막 순간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눈을 뜬 채 숨을 거둔다.
일본의 천재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숲>도 진실에 대한 깊은 사고를 자아낸 작품이였다.《라쇼몽》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작품은 덤불 숲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현장에 있었던 세명의 당사자는 각자 부동한 버전의 사건을 서술한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 독자들은 사건진상을 알지 못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가공되고 왜곡된다. 특수한 사회환경에서 기억은 조작되고 통제되기도 한다. 지극히 객관적인 진실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헌신자의 고독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있는 걸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누리고 있는 것들중 어느 부분이 당연한 것일가? 모든 행복과 안일함의 배후에는 항상 누군가의 묵묵한 헌신과 희생이 뒤받침되여있었다.
소설중에서 묵묵한 헌신자였던 산따 소피아 델라 장삐에닷이다.
“그 은밀하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그 녀인은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탄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들이 그녀의 아들이거나 손자인 것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던 아이들 몇명을 양육하는 데 고독과 침묵의 일생을 바쳤고 자신이 증조모라는 사실을 그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마치 자기 배에서 태여난 자식처럼 아우렐리아노의 뒤바라지를 맡아했다.
“가정의 모든 구석구석과 돌봄이 필요한 가족들을 위해 평생 바삐 돌아쳤지만 자신은 편히 누울 침대 하나 없이 창고에서 살아가다가 결국은 대책없이 허물어져가는 집을 나가버린다.”
로신(鲁迅)의 <약(药)>이라는 작품에서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 시체에서 흘러나온 따끈따끈한 피를 만두에 묻혀 급히 병든 아들에게로 달려가는 한 남자가 있다. 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민간처방이였다. 그 피의 주인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목숨 바친 젊은 혁명자였다. 그리고 두개의 새 무덤 앞에서 두 녀인이 만난다. 혁명자 아들을 기리는 엄마와 병으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였다. 이런 아이러니, 그 무거운 죽음의 가치와 피에 절인 만두! 희생자의 비애로부터 사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은 너무나도 많다.
존재의 고독
부엔디아 가문의 제5대인 호세 아르까디오와 메메는 녀왕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외딴섬 마꼰도로 시집 온 페르난다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엄마가 요구하는 모범생과 그에 반발하여 방종하는 또 다른 자아의 충돌로 지극히 이중적이 되여버린다.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는 교황교육 받으러 류학을 떠났지만 결국은 학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의 죽음으로 더 이상 우수생 연기를 할 필요가 없어진 그는 남자아이들을 데려다 타락된 시간을 마음껏 즐긴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재산을 노렸던 몇몇 소년들에게 익사당한다. 허무한 죽음으로 모든 갈등, 불안 그리고 공포에서 해탈된다.
딸 메메는 엄마의 요구 대로 단정하고 피아노도 열심히 치지만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는 방탕한 청춘을 맘껏 즐긴다. 그러다 항상 노랑나비와 함께 나타나는 공장 로동자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엄마 페르난다의 강력한 간섭으로 바빌로니아는 도둑으로 오해받고 총에 맞아 불구가 되고 메메는 수도원에 들어가 침묵의 고독 속에 살아가게 된다.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자식에게 자신의 방식을 얼마만큼 강요했는지 반성해본다. 부모의 커다란 기대에 맞추려 애쓰다 지쳐버린 아이들, 그 외로운 몸부림을 누가 알아줄가! 보여주기 위한 ‘나’와 반항하고 싶은 ‘나’의 이중적인 삶 속에 결국 ‘진실한 나’는 없다는 슬픈 현실을 정시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적인 고독을 만끽할 수 있다면 삶은 고독 속에서 그만의 소중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랑의 고독
부엔디아 가문의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14차의 암살, 73차의 잠복, 1차의 총살, 22차의 정변을 겪은 군인이다. 전쟁으로 무한권력을 거머쥐지만 갈수록 더 깊은 고독에 시달리게 된다. 전쟁도중 부동한 녀인들과 낳은 17명의 아들들은 하나씩 살해되고 그는 작은 황금물고기를 만들고 녹이기를 반복하며 세월을 보낸다. ‘불가피한 추억으로 인해 감정의 상처를 전혀 받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고 회상만 반복하다가 아버지가 묶여있던 밤나무 아래서 쓸쓸하게 죽어버린다.
저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세기는 여전히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을 두려워하는 시대”라고 하면서 “사랑에 대한 공포심리가 사랑을 모르는, 사랑에 대한 무능함을 낳았다.”고 “이는 인류 최대의 불행”이라고 말한다. 사랑하고 싶지만 두려운 그 무게와 책임, 그럼에도 자신을 다 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아름답다.
어차피 한번 뿐인 삶, 고독을 안고 태여난 인생이기에 더욱 열렬하게 사랑하고 치렬하게 달리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