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소설집 《나는 왜 그것을 찾는가》의 출판을 위한 마무리 단계인 교정을 보면서였다. 그때는 문자에 신경을 쓰느라 내용을 크게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이 책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담담한 연핑크색 책표지로 완성된 견본책이 내 손에 쥐여졌을 때는 교정원이 아닌 순수한 독자로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속의 어느 한 이야기나 장면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묻혀있던 성장기중의 아픔, 고민과 번뇌를; 성년이 되고 결혼한 후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 겪어야 했던 막막함과 방황을; 그리고 40대에 접어들면서 겪고 있는 희망과 불안, 기대와 불확신을 끄집어내 파문을 일으키면서 그 어떤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소설집 《나는 왜 그것을 찾는가》는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위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에는 <내 세계가 망가졌어요, 고쳐주세요>,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블루베리농장>, <월광곡>과 같이 전에 《장백산》, 《연변문학》 등 잡지에 발표되였던 작품들을 비롯한 총 10편의 중단편소설들이 수록되였다.
그중 제일 내 마음을 울려준 것은 단편소설 <내 세계가 망가졌어요, 고쳐주세요>이다. 이 소설은 심리질환을 앓는 ‘그녀’가 ‘나’의 건의 대로 ‘그녀’의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그간 쌓인 원한과 오해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어려서부터 한번도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엄마에게서 살가운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그녀’는 성장과정에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런 엄마 슬하에서 자란 ‘그녀’는 가족한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성년이 된 후에는 애인에게서 얻으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외면을 당한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어릴 적 받았던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 속의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았다. 초중 2학년 때 의외의 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냈던 나는 엄마의 갑작스런 부재로 사춘기 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군 했다. 그리고 그때 그 정서를 성년이 되여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여서까지 버리지 못한 채 생활 곳곳에 드러내야 했다. <내 세계가 망가졌어요, 고쳐주세요>의 ‘그녀’처럼 나의 세계도 한때는 망가져있었던 것이다. 아팠던 초중생을 마음속 깊이 숨겨둔 채 괜찮은 척, 모르는 척 오래동안 버텨왔을 뿐이였다. 글은 아픔만 보여준 게 아니다. 그 아픔에 숨겨진 리유를 끝까지 털어내고 ‘그녀’는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 나도 내 속의 초중생을 따뜻이 안아줄 수 있었다. 아마 ‘그녀’와는 달리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과 내가 사랑할 아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가. 새삼 내 곁의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박초란의 소설 속에는 또한 녀성들이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에 참여했고 특히 개혁개방 이후 연해도시, 해외로 진출하면서 집안 녀성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한다. 소설 <고궁박물관>에서 나오는 ‘나’의 아버지와 <내 세계가 망가졌어요, 고쳐주세요>에서의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이런 처지의 남성들이다.
소설 속의 이런 ‘아버지’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40대에 금방 들어선 그해에 교통사고로 마누라를 잃은 후로 아버지는 우리 두 자매를 어떻게든 잘 키우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중학교 교원의 월급으로 두 딸을 대학 졸업시키고 시집까지 보낸 아버지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안해가 곁에 없어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 끝내는 자포자기까지 하는 그런 ‘아버지’들을 보면서 마누라 없이 한평생을 힘들게 버텨온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20여년을 혼자서 엄마 역할까지 다해가면서 우리 두 자매를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미안해하고 더 잘해주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신다. 내가 결혼한 후 처음으로 우리 집에 며칠 와 계신 아버지는 내가 주방일에 서툰 것을 보고 “애가 다 크도록 료리재간을 배워준 것이 없습니다. 사돈이 량해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세요.”라고 하면서 시어머니 앞에서 미안해하던 아버지이다. 이제는 정년퇴직하고 고향에서 풍족한 로후를 즐겨야 할 나이임에도 페염에 걸려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외손자를 봐주러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운전해서 400여킬로메터 떨어진 고향에서 한달음에 달려오는 아버지이다…
소설집 《나는 왜 그것을 찾는가》를 접했던 시간은 내 몸속 곪아있는 응어리를 해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딱지가 앉았던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 더 든든해지는 상처 치유의 과정이였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아직도 때론 소심하고 내면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나에게는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는 직장이 있고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났으면 완벽할 수가 없다고 한다. 누구나 아픔 하나씩은 안고 산다는 얘기다. 그런 아픔들에 아픈 리유를 파헤쳐주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위로를 보내는 책이 바로 소설집 《나는 왜 그것을 찾는가》인 것 같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들도 나처럼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다가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의 삶에 철학적인 물음을 던져보면 좋겠다.
(필자는 연변교육출판사 사업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