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단상


날짜 2021-04-12 15:35:05


《82년생 김지영》은 선배 작가님께서 추천해주셔서 먼저 영화를 보고 다시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은 것이 더 인상적이였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거나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예술성을 부가해서 더 확대시켰던 부분도 많았다. 말하자면 감독이 알심들여 짜 놓은 ‘덫’에 걸려서 눈물 짜기 십상이란 뜻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책이나 영화의 배경이 외국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회환경 속에서 ‘녀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비슷한 듯하면서 낯선 부분들이 많아 솔직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공감하는 부분은 사실 많지 않았다. 직장내 성차별에 관한 것, 가정내 잔여하고 있는 남존녀비 사상 그리고 출산 후 녀성들의 사회복귀에 따르는 문제점들은 얼마간 공감은 되지만 사실 우리가 중국에서 느끼는 상황과 다른 점이 많이 존재한다. 단순한 제도나 체제에 대한 비교는 언급할 바가 아니고 다만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녀자로서 더우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자아상실에 대한 막연함, 녀자로부터 안해와 엄마로 역할이 이행되는 터닝 포인트(转折点)에서 갈팡질팡 헤매면서 결국 마음의 병까지 얻는 주인공의 모습에 큰 공감을 받았었다.
부모의 사랑스러운 딸에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녀자친구, 안해로 그리고 가장 큰 축복을 받아야 할 생명을 잉태한 엄마로… 그 어느 과정이나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 생명이란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비단 육체 뿐이 아닌 정신세계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아픔과 고통을 수반한 행복 또한 평생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였다.
작은 생명의 탄생은 ‘엄마’라는 새로운 신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우리를 눈코 뜰 새 없이 매일 거듭되는 시간의 흐름에 사정없이 떠밀어놓는다. 임신과 출산보다 더 길고 긴 ‘리얼 육아’의 세계에서 어느덧 몸은 지쳐가고 쌓인 피로로 정신은 흐릿해지면서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환자’ 취급을 받으면서 남편으로부터 정신과 상담을 제안받는 ‘슬프고 억울한 초보 엄마’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누군가의 딸로, 누나로, 녀자친구로, 안해로, 직원으로, 엄마로 사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가사일과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 바침에도 늘 시행착오가 존재하는 육아, 학교와 직장에서 익혔던 노하우가 매일 육아와 가사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현실들이다.
그 괴리감과 좌절감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김지영은 그 여린 몸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하는 대단한 녀성이였다. 어쨌든 그녀는 아이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형평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월에 친정이나 시댁 도움이 없이 온전히 독박육아를 하는 젊은 엄마들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물론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키우면서 무슨 유난을 떠느냐 싶긴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단순히 육아에만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젊은 세대 엄마들이 많다.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공공기관이 아닌 회사에 출근하는 애엄마들에게 이른바 독박육아는 옵션(选择)이 될 수 없다.
출산하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 넘는 시간 동안 부득이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건이 맞으면 보모를 청할 수도 시댁이나 친정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보조역할을 할 뿐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서 아이에게 올인할 수 없다. 체력도 안되거니와 그럴 의무와 책임도 없다. 육아는 엄마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로동이다.
대부분 남편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육아에서는 자유롭다. 그리고 아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유아기에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그중 중요한 일이라면 바로 안해를 더욱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즐겁게 해주는 일인 것 같다.
다행히 원작 가운데 김지영은 다정다감하고 직장에서도 촉망받는 사원 그리고 시댁에서도 말이 서는 모범남편을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영은 외롭고 힘들고 아프다.
사회가 결혼,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어야 하는 녀성에 대한 각박하고 린색한 면을 고발하는 역할로 김지영을 그렸다면 나는 김지영을 통해 사회나 가정 그리고 본인의 가치지향적인 면을 좀 빗겨가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자세로 김지영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사실 책에서나 영화에서 그린 김지영은 어느 면에서 뾰족한 싹수를 보이는 유능한 인물은 아니였다. 학생시절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촉망받는 유망주라기보다 평균을 좀 넘어선 그런 녀성이였다. 출산과 육아로 직장내 지위를 잃을가 전전긍긍하면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남성들이 대부분인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녀상사나,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련애만 하는 그녀의 녀성동료에 비하면 김지영에게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백기가 정말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일 정도로 큰 부담일가 싶었다.
나도 똑같이 임신 9개월까지 4시간씩 출퇴근을 소요하는 직장을 다니다가 출산과 육아로 장장 3년 반 동안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를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김지영과 동시대에 태여나서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 앞에 놓인 산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안식처를 찾지 못한 심신이 얼마나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근식걱정을 유발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행히 출산 전에 도깨비 기와장 번지듯 펼쳐봤던 육아서와 아동심리학에 대한 책들이 산후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였다. 태아는 배속에서부터 엄마의 정서를 알아차린다고 한다. 그 책에서는 태여나서 모성의 결핍을 경험한 아이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확률이 아주 낮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태여나서 3년 동안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과 동반을 받은 아이일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생활도 잘한다고 했다. 실제로 주변에 직장 때문에 출산휴가가 끝나고 바로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겼다가 나중에 아이가 자페증세를 보여서 절망하는 엄마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아예 사표를 내고 본격적인 육아에 진입했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수입이 끊어진다는 것이 큰 부담이였지만 나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였다.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많은 감정을 어찌 한입으로 다 담아내랴만 그래도 희생과 섬김을 통해 내 아이와 밀착교제를 한 일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후회 안할, 최고로 잘한 일이였다. 내 생애를 통털어서 제일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다시 돌아가라면 손사래를 칠 것이지만…

책과 영화에서는 단적으로 김지영과 주변 육아맘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 아쉬웠다. 결혼적령기에 결혼과 출산을 거쳐 육아를 하는 것은 강요가 들어가지 않은 그녀들의 선택이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인내와 성숙을 훈련하는 녀성으로서 비춰지지 않은 모습에 성적 차별과 페미니즘(女权主义)이라는 새로운 목소리를 끌어낼 수 있고 그것이 특정 부류에 이름표로 오인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의 에필로그에 언급된 정신과의사인 안해의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도 그 리유였다.
아이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가:한미화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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