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단상


날짜 2020-04-15 10:21:57


습근평 총서기는 ‘맑스 탄생 200돐 기념 대회에서 한 연설’에서 “1867년 세상에 나온《자본론》은 맑스주의의 제일 두텁고 풍부한 저작으로서 ‘로동자계급의 성경’으로 불리운다.”고 지적하였다.
《자본론》은 1867년부터 1894년 사이에 출판된 맑스의 정치경제학 저작인데 모두 3권으로 되여있다.(여기서는 잉여가치 발전사를 론한 제4권을 제외한다.) 중문판은 1권과 3권을 상하로 나누어 출판하였기에 사실상 다섯책으로 되는 셈이다.(1975년 6월판을 상대로 말하면.)
《자본론》은 잉여가치를 중심과제로 삼고 자본주의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가하였다.《자본론》을 쓰기 위해 맑스는 20년을 하루같이 영국박물관에 가서 독서하였고 숱한 자료를 열람하였다. 맑스가 골몰히 독서할 때마다 무의식중에 땅바닥을 발로 비볐기에 날이 가고 달이 지남에 따라 세멘트 바닥이 깊이 패이게 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맑스의 발자국’이라 불렀다. 맑스는《자본론》을 통해 잉여가치라는 이 자본주의의 핵심문제를 분석하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기본모순 및 그 발전추세를 제시하였으며 자본주의제도는 생산사회화의 가일층되는 발전에 따라 꼭 멸망하고 만다는 진리를 과학적으로 론증하였다.
필자는 이제껏《자본론》을 네번 읽었다. 처음에는《자본론》의 무한한 매력에 빠져 읽었고 80년대에 들어서서부터는 연구생시험 준비 때문에 거듭 읽었다.《자본론》관련 참고서적이 서점매대에 나오기만 하면 그 자리로 사서 읽었다.《자본론》독서감수 필기노트도 세책이나 되였다.
《자본론》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문화대혁명 후기였다. 그때는 짙은 정치활동의 분위기 속에서 사람마다 맑스, 엥겔스, 레닌, 모주석의 저작을 손에 들고 학습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시절에 학습소조를 세우고 경전서적 보도를 책임졌다. 간혹 정전될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초불을 켜놓고 학습을 계속 하였다. 교수를 들으면서 책상 밑에 숨겨놓은 정치경제학 서적을 훔쳐 읽던 일을 상기하면 지금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전교 교원들 앞에서 맑스의 저작을 강의하는 일도 맡아했는데 물론《자본론》도 그 범위에 포함되여있었다. 
나의 책장에는 지금도《자본론》이 정중히 꽂혀있다. 책 표지를 펼치면 1975년 8월이라고 쓴 날자가 눈을 끈다. 44년 전에 산 맑스의 저작이 지금도 보존상태가 괜찮은편이다. 책장을 넘기면 1권부터 3권까지 빨간 펜으로 공백에 꽉 채워 쓴 주해가 페지마다 력력히 한눈에 확 안겨온다. 참고서적을 뒤져보면서 원 저작을 열심히 읽던 나의 젊은 시절… 그때에 대한 회억을 이끄는 도표처럼… 나의 손목을 잡고 격정과 열정으로 불타던 지난 세월 속으로 다시 나를 안내해준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여 한동안 나는 맑스의 저작을 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저작을 고물상한테 넘겨 페기처분해버렸다. 다시는 읽을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예감 같은 것이 머리속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자본론》만은 남겨놓았다. ‘로동자계급의 성경’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그 책의 매력이 처분시도의 발목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맑스는 자본주의경제 관련 자료들을 대량적으로 연구한 후 과학적 추상을 거쳐 여러가지 과학적인 개념, 범주에 속한 리론체계를 구축하고 자본주의 경제운동의 객관적 법칙을 제시하였다. 그는 상품이라는 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세포’로부터 메스(手术刀)를 대여 전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복잡한 각 부분을 해부하고 자본주의 경제운동의 론리적 체계를 밝히였다.《자본론》제1권은 잉여가치의 생산을, 제2권은 잉여가치의 실현을, 제3권은 잉여가치의 분배를 치중적으로 론술하였다. 이런 빈틈없이 꽉 짜인 리론체계와 면밀 완벽한 변증법적 론리체계에 내가 매료되여 맑스의 사상에 탄복하고 그의 ‘포로’로, 그의 팬으로 되였다.    
지난해 필자는 천안문광장 동쪽켠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박물관에 가서 ‘맑스 탄생 200돐 기념 전람’을 참관하였다. 외손녀를 돌보는 나에게는 지배가능의 시간이 제한되여있었다. 나는 명승고적지 관광을 단념하고 많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맑스 탄생 기념 전람관’으로 달려갔다. 북적이는 인파 속을 헤집고 대청에 들어서니 맑스의 커다란 초상이 나를 맞이해주었고 전시청에 진입하니 진렬대가, 벽에는 맑스의 일생을 소개한 전시품들이 꽉 차있었다. 그 속에는《자본론》제2권의 직필원고가 한페지 전시되여있었고 맑스가 부인 옌니에게 보낸 편지원고도 원모습 그대로 눈에 띄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주은래 총리가 애독했던, 그의 친필 싸인이 적혀있는《공산당선언》책자였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맑스주의를 당의 리론토대로 삼은 력사적 사실을 재삼 일깨워주는 의미 깊은 한 대목이였다. 나는 참관 끝에 내 여생에 가능하다면《자본론》을 다시 펼쳐들 것을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제1권이라도 읽으리라. 그것도 지금 사놓은 영문판과 중문판을 대조해가며 한페지 한페지씩 골똘히 읽어보리라…’ 참관 끝에 ‘습근평 총서기가 로세대 혁명가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맑스주의 기치를 다시 선명하게 추켜들었구나…’하는 감개무량함, 벅찬 감수도 금할 수 없었다. “맑스주의를 견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서 습근평 총서기는 우리 당의 리론자신감 및 우리 나라의 제도자신감을 우리들에게 더 튼튼히 심어주었다.
일본에서 경제학과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조카가 있다. 하루는 조카가 일본에서의 류학생활 이야기를 하던중 자기가 공부하고 있던 대학교의 일본인 교수가《자본론》을 거론하면서 맑스의 견해를 비웃더라는 말을 하였다. 그 교수는 공산주의사회에 가서 “각자는 능력을 다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하는” 방식이 실현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허황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는 례를 하나 들더라는 것이다. 그때 가서 사람마다 자기 수요에 따라 승용차를 소유하게 되는데 그 많은 차를 어디에 주차시키냐는 것이다. 그 교수는 주차공간이 모자라는 문제를 “수요에 따라 분배”하는 방식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근거로 삼았으며 나아가《자본론》이란 거목을 찍어 넘어뜨리려고 머리 우에 추켜든 도끼로 삼았던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대답할 말에 궁해 그저 조카만 바라보고 있었다. 후에 다시 꼼꼼히 생각해보니 그 교수의 질문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혹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이른바 불완전한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산주의에 진입하면 사회가 고도의 발달을 이루어 교통수단이 땅에 세우는 승용차가 아니라 최첨단 기술로 장비된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이 거주하는 주택 자체가 사면팔방 아무 데나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의 역할을 놀지도 모른다. 그때의 발달상황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의 형편과 범부속인의 좁은 안목으로 공산주의사회를 가늠한다면 그건 장님이 막대질하듯 부질없는 일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런 자질구레한 세부적인 문제를 가지고《자본론》을 부정하려는 것은 하늘보고 주먹질하는 것과 같다. 마치도 깨여진 벽돌장으로 우뚝 솟은 마천루를 쳐넘어뜨리려는 격이다.
고층건물은 내부장식을 고치거나 겉면을 수선할 수 있지만 건물 자체의 토대는 허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맑스주의는 일부 관점, 리론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수정할 수는 있으나 리론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토대 자체는 무너뜨릴 수 없다.《자본론》을 상대로 말하면 잉여가치학설은 그것의 핵심으로 된다. 자본주의사회가 존속되는 한 맑스의 잉여가치 학설을 지워버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또 변화발전의 시각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사회는 맑스가 살던 자본주의 시대에 비해 아주 크게 변화하였다. 맑스주의리론도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 경전저작이라면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고 맹신하던 데로부터 력사의 발전에 맞추고 시대에 수요에 따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리성적으로 깨닫게 된 현재 역시 맑스주의를 견지하는 옳바른 자세가 가져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맑스의《자본론》은 우리 사회주의국가의 전진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우리 자신의 가치실현도 이끌고 있다. 한가지 학설, 한가지 론술마다 그 특정된 력사적 조건이 있다. 그러므로 맑스의《자본론》은 그의 특정적인 시대의 특점을 떠나서 분석해서는 안된다. 이런 시대적 국한성을 무시하고 지금의 변화된 시대 안목으로 《자본론》을 해석한다면 그것은 맑스에 대한 불공평으로 된다. 우리는《자본론》을 수호하고《자본론》을 계속 읽고《자본론》의 알맹이를 섭취하고 그것의 과학적 사상을 발전시키고 계승해야 한다. 그러면《자본론》을 비롯한 맑스의 저작은 우리 힘의 원천으로 되며 우리가 나아가는 길의 도표로 될 것이다.
맑스는 일찍 “‘자본론’ 원고료는 내가 이 책을 쓰면서 피운 담배값도 안될 것이다.”고 말한 적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맑스에게 몰인정하였다. 이런 몰인정했던 자본주의는 지금에 와서 맑스의 ‘진짜 가치’를 발견한 듯하다. 지금 독일에서는《자본론》판매량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이래 서방에서는 이 거작을 다시 열독하는 젊은층들이 나타났다. 영국 매스컴은 “맑스가 살아있다면 ‘자본론’의 거액 로열티(版税)는 맑스를 손쉽게 포브스(Forbes)부호 행렬에 들여세울 것이다.”는 롱담도 하였다.
《자본론》은 살아있다. 맑스의 사상은 계속 빛 뿌린다. 동방에서도, 서방에서도…  
작가:허승룡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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