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사회학자는 인간사이의 사회관계를 ‘강한 관계(strong ties)’와 ‘약한 관계(weak ties)’로 나누었다.
그의 리론에 의하면 ‘강한 관계’는 한사람이 처해있는 사회네트(网络)의 동질성이 강한 것을 가리키는데 교제하고 있는 상대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입수하는 정보가 대부분 동일한 것을 말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이런 ‘강한 관계’는 가족성원이나 동료, 동창생과 같이 평소에 관계가 밀접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이루어진다. 이런 ‘동질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생활과 직업 등의 원인으로 만나는 기회가 많고 그로 인해 끈끈한 감정적 뉴대로 서로 이어져있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정보는 중복성이 강하고 류사한 점이 많아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와는 달리 ‘약한 관계’는 아주 큰 차이성을 보이고 있는데 계층과 단체를 뛰여넘어 서로 정보를 나누기에 ‘강한 관계’가 닿을 수 있는 분야를 훨씬 초월한다. 리론상에서 이것을 사회네트의 ‘이질성’이라 부른다. 사회네트 속에서 사람들이 갖는 동질성이 많으면 그들의 정보교환 효과성은 떨어지지만 이질성은 정보교환의 효과적인 가교로서 정보를 입수한 사람의 시야를 뚜렷이 넓혀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미국의 사회학자가 한 세밀한 직업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피조사자의 대부분이 얻은 일자리는 공식적인 초빙경로를 거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통해 우연히 얻게 된 것이였다. 이런 ‘어떤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구와 같이 관계가 밀접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 밖의 기회에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였다. 어떤 때는 이런 풋면목이나 알던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놀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약한 관계’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의외의 요소로 인해 뜻하지 않게 성공하거나 욕구 만족을 가져올 때가 있다. 례하면 어쩌다 만난 사람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새 제품 연구개발에 나서게 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듣고 바라던 직업을 손쉽게 얻게 되는 등이다.
어느 하루는 필자가 교원으로 있을 때 복도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나 나누는 정도의 동료가《길림일보》를 가져다 나에게 보이는 것이였다. 거기에는 “동북3성의 당학교에서 ‘당건설 연구생반’을 함께 꾸리게 되여 동북3성에서 연구생을 모집하는데 그 모집년령 상한은 40세”라는 광고내용이 실려있었다. 보통 대학에서는 35세 이하를 대상으로 연구생을 모집하였기에 연구생시험은 필자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북3성 당학교 합동주최 연구생반 모집광고가 의외로 나에게 커다란 희망의 빛을 안겨다준 것이다. 동료의 덕분으로 2년간의 연구생 공부를 끝마치고 필자는 주당위 기관지인 지부생활잡지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그 형님의 소개로 새 직장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니까 새 직장의 취직은 ‘강한 관계’ 역할의 결과이고 연구생 합격은 ‘약한 관계’ 역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약한 관계’가 없었더라면 필자의 일생에는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고 교원이란 직업생애가 한평생 불변상태로 줄곧 지속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일 때문이라고는 꼭 단언할 수 없으나 ‘약한 관계’에 민감하고 ‘약한 관계’를 그저 묵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여겼고 절대로 있으나 없으나 상관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였다.
필자가 ‘동인독서회(同仁读书会)’와 ‘천하위공(天下为公)’이란 두 위챗그룹에 가입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전까지만 해도 이 두 위챗그룹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동창생의 소개로 가입한 것 뿐이였다. 그룹장인 신봉철 회장님은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뵌 적이 없고 그저 위챗을 통해 가끔 교류가 이루어질 따름이다. 솔직히 이 두 위챗그룹내의 여러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별로 료해가 없다. 그저 조선족 유명인사들이 많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분들의 성함은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필자와의 종사분야가 다르기에 만난 적이 없는 분들이다. 위챗그룹을 매개물로 이루어진 여러 선생님들간의 관계는 이른바 ‘약한 관계’이다. 하지만 이런 면목부지의 관계가 나에게 주는 도움은 결코 약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심심히 느끼고 있다. 이 두 위챗그룹에 올려진 정보를 통하여 여러 분야의 틈 사이로 뿜겨나오는 풍부한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도 더 한층 넓어지게 되였다. 필자는 이 ‘약한 관계’를 둘도 없는 귀중한 재부와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보람 있게 리용하고 있다.
‘약한 관계’는 사회구조에서 아주 큰 역할을 일으킨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동한 사회군체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해주는 훌륭한 교량역할을 놀 뿐더러 정보 전파중에서 사람들을 도와 새로운 사물과 대면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면 ‘약한 관계’는 일종의 자원이며 이런 자원을 통해 사람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사물을 감지, 리해하게 되고 새 사물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약한 관계’와 ‘강한 관계’는 서로 전환된다.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스스럼없이 롱담을 주고받던 동료들이 전근하거나 퇴직하면 몇달에 한번씩 가끔 전화문안이나 하는 미지근한 관계로 전락될 수 있다. 또한 이제껏 친밀하게 협력하여 일해오던 상사와 사이가 버성겨져 마주치면 머뭇거리고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하는 거북한 처지로 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약한 관계’는 절대 소원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저 잠재적인 비전통적 의미에서의 사회관계 모식이라는 점을 명기해야 할 것 같다. 인정으로 말하면 당연히 ‘강한 관계’가 ‘약한 관계’보다 감정 유지 요소가 더 짙고 인간관계가 긴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방나라들 경우 사회적으로 ‘약한 관계’가 지배적이라 한다면 중국사회는 ‘강한 관계’가 우세라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한 학자가 일찍 이 점에 대해 밝혔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성사시키려면 우선 ‘강한 관계’가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서방나라에서는 성공의 중요한 요소를 정보로 여기지만 중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큰 동력으로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약한 관계’를 ‘강한 관계’로 전환시켜야 일의 성공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말이 되겠다.
한 전국인대 대표가 발언에서 일처리에서의 관계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 나라 ‘인정사회’의 불합리성을 비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모두 그리 놀라워하지 않은 것이 그 유력한 증거로 된다. 개인 인맥관계가 일처리 성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기에 중국에서는 인맥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간부들의 영향력이 왕왕 일처리 성공의 주요한 수단과 경로로 되고 있다.
필자의 천박한 견해에 의하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될수록 ‘약한 관계’를 ‘강한 관계’로 승화시켜 사람들 사이에서 단합심과 조화로운 관계를 증강시켜야 하는 한편 사회적으로는 ‘약한 관계’를 부축, 양성, 전파시키는 데 힘을 넣어 일처리에서의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고 공평합리성을 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음력설, ‘3.8’절, 교원절 등 명절 때마다 전화부에 등록된 지인들에게 명절문안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소한 일로 간주할 수 있으나 이런 인사습관이 무의식중에 ‘약한 관계’를 더 강한 쪽으로 한걸음 떠밀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홀시해서는 안된다. 인터넷 등 통신교제수단의 보급으로 인하여 사회의 개방 및 포용 수준이 전례없이 높아져 개인생존의 커리어(经历)에서 ‘약한 관계’가 역할을 노는 힘이 무궁무진하게 되였다. ‘약한 관계’를 잘 리용하면 개인의 미래발전과 사업성공에 유리하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오늘도 필자는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위챗그룹을 통해 교제를 하고 있다. ‘강한 관계’가 계속 변함없이 유지되고 ‘약한 관계’도 그 폭이 더 넓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