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시에서 유유히 흐르는 가야하를 따라 서북쪽으로 가면 아담하고 경치 좋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말, 자연 속에 푹 젖어드는 도시인들이 마을을 메우고 있다. 이곳이 바로 전국에서도 이름 있는 도문시 수남촌이다. 이 촌에는 고향이 좋아 귀향해 자신이 선택한 꿈의 길에서 무지개빛 인생을 그려가고 있는 복박의 씨앗을 물고 온 파랑새가 있다. 그가 바로 도문시 수남촌 촌민위원회 부주임 김국성이다.
2010년에 길림농업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때 대우가 우월한 외자기업에 취직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중임을 짊어졌던 유능한 인재였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김국성은 가슴 한구석에 웬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인생에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이 벌떡벌떡 살아 숨쉬는데 그대로 안일한 생활에 눌러앉아있기는 싫었다. 그 답을 찾아 헤매던 그에게 길을 가리켜준 사람은 바로 마을의 당지부 서기이며 19차 당대표인 라철룡이였다. 고향을 떠나 기업에 출근하던 김국성은 어느해 명절, 부모님 뵈러 고향에 돌아왔는데 수남촌당지부 서기 라철룡이 그를 찾았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와 창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라서기의 말이 당시 저의 가슴을 크게 울려주었습니다.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거구나… 고향건설에 힘을 보태고 촌민들을 이끌어 치부의 길에 들어서야 겠구나…” 김국성의 진솔한 고백이다.
2013년, 뜻을 정한 김국성은 대기업의 우월한 대우와 유혹을 물리치고 단연히 귀향길에 올랐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철새처럼 떠나간 자리에 그는 행복의 파랑새가 되여 나래를 굳히고 꿈을 펼쳐가리라 다짐했다.
시작의 발걸음을 뗐지만 그 길을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귀향한 김국성은 촌민위원회 촌간부 선거에 참가하여 수남촌 민병련장, 공청단지부 서기 겸 조직위원 직을 맡았다. 촌간부로 선거된 김국성은 지체할 새 없이 치부항목을 찾아 나섰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퀴노아(藜麦)라는 농작물이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에도 유리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퀴노아는 수요량이 급증하는 농작물로서 재배에 성공만 한다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국성은 다년간 모아둔 돈을 털어 먼저 퀴노아 재배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쭉쭉 커가던 퀴노아가 하루밤 사이에 전부 바람에 쓰러져버렸다. 퀴노아는 줄기가 가늘어 바람에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김국성은 퀴노아 전멸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공예작물재배로 촌의 치부에 한몫.
실패의 맛은 쓰지만 그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김국성은 번잡한 촌 사무를 마치고는 촌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민심을 파악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에게 경제발전 리념도 주입시켰다.
김국성의 끈질긴 노력은 차츰 촌민들의 승인을 받았다.
그는 마을의 천연자원에 근거하고 소비시장의 추세에 맞춰 공예작물을 재배하여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했다. 김국성은 도문시 주변 지역의 시장에 대한 조사연구와 촌의 자연자원 특점에 근거하고 현대 소비군체의 음식습관에 알맞게 유기농야채를 생산하는 발전의 길을 모색했다. 그는 연길에 소문난 보쌈집을 찾아 재배기술을 배우고 국외로부터 보쌈채소 품종 12가지를 구입했다. 그의 노력으로 유기농야채 재배기지는 온실(温棚) 10개와 랭실(冷棚) 4개를 갖추었다. 재배된 유기농야채는 도문시는 물론 연변 각 지역 슈퍼마켓, 음식점으로 널리 수출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김국성이 운영하는 합작사는 20여명의 빈곤호에 일자리를 마련해 그들로 하여금 해마다 2만여원의 수입을 얻게 했다. 2016년, 김국성은 출중한 능력으로 촌민들의 인정을 받으며 수남촌 촌민위원회 부주임으로 당선되였다.
촌민에게 정책 해설.
촌의 치부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리던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2016년 여름, 갑자기 들이닥친 폭우로 김국성이 운영하던 유기농야채 재배기지가 전부 홍수에 잠겨버렸다. 생산복구보다 더 급한 것은 이미 예약된 주문이였다. 고객에 대한 신용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자기의 호주머니를 털어 고객들의 손실을 보상해주었다. 3개월 사이에 10여만원에 달하는 손해를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재차 들이닥친 특대홍수는 그의 치부의 꿈을 또 한번 쓸어버렸다.
련속 들이닥치는 자연재해 앞에서도 김국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생산복구에 뛰여드는 한편 라서기의 인솔하에 새로운 종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8년,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의 물결 속에서 김국성은 빈곤층부축 사업대로 내려온 성정협 지도일군으로부터 당중앙의 ‘록수청산은 금산은산이다’라는 새로운 리념을 접했다. 김국성은 산 좋고 물 맑은 수남촌의 자연생태 우세가 바로 금산은산을 일굴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될 거라 생각했다.
김국성은 도문시봉오동관광발전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조선족민박군을 형성했으며 독특한 자연우세를 리용하여 농경체험, 재배채취체험, 음식과 레저를 일체화한 향촌관광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동시에 ‘뜨락경제’ 재배, 양식 모식을 접목해 도시주민들의 농경생활 체험수요를 만족시켰다. 제한된 토지를 통합해 촌민들의 수입을 대폭 증가시키니 치부의 길은 넓어져갔다.
2019년, 수남촌은 이 프로젝트에 의탁해 8000여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였으며 촌민들은 조선족 전통문예공연, 음식, 숙박을 통해 가구당 3000원의 수입을 올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시 완화되고 나니 관광객들의 발길도 다시 잦아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