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족 전통윷놀이 소개.
정제된 위엄과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장백산 제1현—안도현, 흔히 볼 법한 도시 같지만 이곳엔 100년이 넘는 유구한 력사가 살아 숨쉬고 평소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지난 2017년, 나는 7년이란 외롭고 긴 류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바로 결혼과 출산을 이어가다 보니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단 한번도 벗어나보지 못했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곧 소소한 행복이라 스스로 위안했지만 머리속은 텅 비여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무인도에 남겨진 듯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며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걸려온 연변주 ‘인재영입 프로젝트’ 면접합격 전화는 그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내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열어주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찾아온 봄날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무한한 용기에 신심이 생겨났고 새 희망이 피여올랐다.
그렇게 나는 부푼 꿈을 안고 안도현융합매체중심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앞에 주어진 임무들을 하나 둘 완수해나가면서 마치 본래의 자리를 되찾은 듯 뛰여난 적응력으로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됐다. 다소 부족했던 전문성과 여러모로 서툴었던 곳도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배움을 락으로 생각하게 된 부분이였다.
전에 배움에는 무조건 기초단계부터 배워야 한다는 인식에 힘들 거라 예상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새로운 걸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판단 가능한 능력을 키워나가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자신감 있게 대처해나갈 마음가짐을 키워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이였다.
안도에서 출근을 시작하면서 분명히 연변조선족자치주 8개 현, 시중 하나임에도 조선어문자 사용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직장에서만 보아도 조선어로 된 프로그램은 오직 뉴스 프로그램 뿐이였다. 조선어문자의 규범화, 표준화 사용에 대한 홍보가 시급하다고 생각되여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시작한 프로그램이 바로 <조선족의 이모저모>였다. 조선족 집거마을의 생생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지역 주민들과 서로 소통해나가면서 다양성, 친근감을 더해 민속문화를 보급해나가는 데 취지를 두었다.
시청자 모두가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주 1회 방송되는 해당 프로그램은 제작 전 내용계획부터 시작해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 많았다. 관련 부문과 소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률하여 원고를 작성하고 그 내용에 따라 기자들이 촬영을 한 후 후기제작을 하는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예고없이 편성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참여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과감한 도전정신과 불타는 열정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도 만들어냈다. 여러 매체와 인터넷플랫폼 등에 실리게 되면서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은 물론 지난 2월에는 길림성 프로그램 평의활동에서 2등상이라는 영예까지 받아안음으로써 안도현의 조선어 프로그램에 대한 립지를 굳건히 다졌다. 어려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임무완수가 아닌 조선족의 력사, 문화가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념원과 책임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느껴진다.
길림방송국 빈곤층부축 관련 프로그램 참여.
향촌진흥의 추진에 힘입어 향촌관광도 주요산업으로 부상되고 있다. 조직의 배치에 따라 나는 안도현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진 송강진 송화촌에 안도현 첫패의 기업주재봉사 사업대원으로 파견되였다. 송화촌은 전국 소수민족 특색마을로 지정된 전형적인 조선족마을이다. 조선족농촌의 력사, 문화 보급을 보존하기 위해 촌민들은 안도현송화촌관광발전유한회사와 함께 마음 모아 희망의 씨앗을 심고 마을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한창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 둘을 집에 맡겨두고 떨어져 생활한다는 것은 나에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였다. 하지만 엄마를 ‘슈퍼영웅’으로 생각하는 아들들은 내가 념려했던 것과는 달리 당돌하게 엄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전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명감으로 나는 다시한번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촌민들과 함께 쑥을 캐고 다시 마을로.
도시와 농촌간의 거리를 좁혀가기 위한 송화촌은 최근년간 현대화 공사로 새 단장을 했다. 현지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로 꽤 인기 있는 조선족특색 관광마을로 도약하고 있는 송화촌은 전염병사태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단체관광뻐스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맞아 해설원들의 조선족 례의수업부터 착수하고 무미건조한 풍경구 해설보다는 연변가요 <제비가 돌아왔다네>를 부르면서 색다른 마을소개를 풀어나갔다. 또한 조선족 가무를 선보였고 조선족 전통음식을 소개하고 음식 제작과정에 직접 동참하게 했다. 또한 현교육국에 신청해 우리 촌을 학교의 사회실천기지로 사용되게 하고 후대양성 사업에 조력했다.
주 및 안도현 부련회 조사연구시 마을 소개.
사회 각 계층의 지지와 노력 끝에 송화촌은 매력 넘치는 조선족 문화보급 관광명소로 주목받으며 발 빠른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 련일 이어지고 있는 삼복더위가 지나면 무형문화재에 등극할 수 있는 마을특색의 문화절도 준비중에 있다. 문화절은 나의 봉사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 이어질 활동으로 촌민들의 생활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고 여러 민족 인민들이 축제현장에 한데 어우러져 민족단결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함이다.
한계를 기회로 바꾸고 가능성을 더 큰 힘으로 전환해 더 밝은 래일을 펼쳐가기 위한 나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힘찬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다 같이 함께 하는 더욱 행복한 세상을 위해 나의 꿈을 향한 도전은 오늘도 래일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