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언론계의 ‘대부’

– 원 전국보도사업일군협회 서기처 서기 리현덕 선생님을 만나
날짜 2021-11-10 14:55:41


6년 전의 찌물쿠던 여름,《중국조선족백년실록》편찬사업의 일환으로 북경에 한달간 체류했다. 그 시절 행운스럽게도 오늘 이 글의 주인공 리현덕 선생님의 댁을 방문하는 영광을 지녔다.
리현덕은 평생을 국내외 언론분야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대기자임과 동시에 언어대가였다. 그는 19세기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3개 대학을 졸업하고 로어, 영어, 토이기어 등 6개 나라 언어를 정통했다. 그는 선후하여 중앙방송국 국제부, 외문국, 신화사 참고소식 편집부와 국제부에서 번역 겸 편집, 기자로 활약했다. 한동안 신화사 토이기주재로 파견근무를 다녀온 후에는 계속하여 신화사에 근무하면서 전국보도사업일군협회 서기처 서기로 있었다.

초심을 잊지 않은 일편단심
리현덕은 학자형 언론인이다. 20세기 50년대 중반부터 선후하여 할빈외국어학원에서 로어를 전공하고 모스크바 국제관계학원에서 외교와 신문학을 전공했으며 북경외교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60년대초, 국가급 언론부서에 배치받아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리현덕은 ‘고린내 나는 아홉째’로 몰려 하남성의 모 시골로 내려가게 되였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당에 대한 드팀없는 신조를 갖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는 와중에 그만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 하게 되였는데 그것이 토이기 소설을 번역하는 일이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허무한 인생을 랑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자처해서 한 일이였다.
그 뒤 기다렸다는 듯이 이 땅에 과학의 봄이 도래하면서 리현덕의 첫 번역소설이 외문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였다. 리현덕은 떵떵 얼어붙었던 대지가 아직 녹기도 전에 일약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였다.

국제무대에서 
리현덕은 다시 신화사에 입사해 3년간 본업에 충실하다가 9년 동안 토이기에서 파견근무로 사업하게 되였다.
리현덕의 토이기 생활은 그의 신문기자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토이기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벌써 토이기어로 된 소설을 번역해 책으로 출판되면서 언론계의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토이기《국민보》가 이 전도 유망한 젊은이를 예의주시하면서 그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현덕은 토이기에서 늘 신문기자의 본분을 갖고 뛰였다. 항상 준비된 자세로 특종뉴스가 있는 곳이면 남들보다 먼저 뛰여가 취재에 림하면서 신화사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 당시 토이기 정부와 국민은 중국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상대를 서로 모르고 좋은 뉴대관계를 갖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였다. 우선 서로를 잘 료해한 토대에서 량호한 관계를 건립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견이였다. 리현덕은 우선 토이기의 문화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의 5천년 문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리현덕이 토이기에 파견근무를 가있던 시기가 바로 신화사가 국내적인 통신사로부터 세계적인 통신사로 거듭나던 시점이였다. 리현덕은 앙까라분사와 이스땀불지사 인솔자가 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실행과정을 낱낱이 보도하여 두 나라 사이의 간격을 많이 좁혔다.
리현덕은 발바닥이 닳게 뛰여다니면서 현지 핵심매체인 국가통신사,《태양보》사,《국민보》사,《자유보》사,《매진 2000년》등 여러 언론매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신문자원을 공유하고 발행선전을 잘해 신화사 주문이 200만부를 돌파하는 기적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이는 신화사가 처음으로 토이기 시장을 개척한 전례로 되였다. 또한 신화사의 많은 보도를 전재하면서 신화사의 대외 이미지와 영향력을 크게 높여주었다.
그 뒤 토이기국회에서 리현덕에게 ‘평화사자’라는 훈장을 수여했다.
리현덕은 수십편에 달하는 토이기 소설을 번역해 중국에 소개하고 귀국한 다음에도 토이기 관련 문장 80여편을 발표했다.《토이기백과사전》과 같은 대형 거작 번역도 서슴없이 맡아하고《중국대백과(영화권)》를 비롯한 중국 관련 서적도 토이기어로 번역, 출판했다. 중국번역가협회는 그에게 ‘중국 최고의 번역가(中国资深翻译家)’ 칭호를 수여했다.

신문기자 및 번역사업에 참가한 60년간 리현덕은 국내외 무대를 누비면서 수백편에 달하는 각종 론설, 신문기사, 오체르크, 칼럼, 수필을 발표했다. 국제적인 이슈가 되는 많은 특종뉴스, 국제회의 동향을 제때에 포착하여 보도하고 국가 지도자들의 수행기자로 따라 나섰다. 뿐만 아니라 해외 정상들이 중국을 방문 올 때면 동시통역 겸 기자로 취재에 림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여명 국외 정상들의 중국방문 취재기자로도 활약을 보였다. 수많은 글들이 우수신문작품으로 평의되여 표창을 받았다. 그가 쓴 특별 계렬보도 <일촉즉발의 순간—토이기총리 예측기>는 1988년에 신화사로부터 1등상 원고로 평의되였고 근 30개 언론매체에 전재되였다. 해외에 있는 기간 리현덕은 신화사로부터 6차례에 달하는 표창을 받았다.

불타는 황혼
리현덕은 퇴직한 후 여러 사회단체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북경 조선족민간단체에서 항상 든든한 뒤심이 되여 극찬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조선족사학회 고문으로 있는 사이 민족사회 응집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고 주옥같은 글들도 많이 남겼다. 그가 쓴 계렬문장 <리홍광 생애 연구의 당대적 가치>, <영웅렬사의 충혼 만고상청하리>, <조선족의 해방전쟁에서의 공헌>, <조선족발전방략연구>, <중국조선족 문화발전방략> 등 문장들은 사회 각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1991년, 전국보도사업일군협회 서기처 서기 사업을 담당한 이래 국내외 신문계의 상호 료해, 친선 발전, 협력 강화, 외국의 장점 학습, 중국의 대외 영향력 확대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국공산당 제14차 대표대회 보도중심 부주임, 전국 인대, 정협 보도중심 부주임, 중국 21세기 의정령도소조 성원, 중국인민대외친선리사회 리사, 중국국제교류협회 전국 리사, 중앙우호 전국 리사, 유엔 국제교육과학 및 중국조직위원회 부주임, 중국 국제과학평화촉진회 부회장직을 담당하면서 오늘도 멋진 황혼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작가:김창석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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