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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계 ‘토박이 전문가’ 향촌진흥에 동력 더해

― 연길시오합공농기계농민전문합작사 김태욱 사장의 이야기
날짜 2022-12-12 10:59:07

연길시에는 3농의 정을 품고 발명을 사랑하는 한 평범한 농민이 있다. 그의 농가 마당에는 육모판 벼 이앙기, 벼 모종 정밀이앙기, 다기능 정량 시비 회전경운 파종 복합기… 등 실용형 농기계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 농기계들은 12개 국가발명특허를 잇달아 획득한 ‘평범한’ 농민 김태욱의 발명품이다.
김태욱은 1960년에 연길시 조양천진 룡성촌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김씨 집에는 모두 6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 식구들을 먹여살리며 생계를 이어왔다.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기엔 너무 어려운 형편이였다.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 순박하고 심성이 착했던 김태욱은 형님과 누나가 잇달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어줄가 고민했다. 고중을 졸업한 김태욱은 고민 끝에 가족에게 학업을 포기하고 농사일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1992년, 해외로무 붐을 타고 근면한 로동으로 어려웠던 생활상태를 바꾸겠다는 꿈을 안은 김태욱은 장장 7년을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1998년 귀향길에 오른 김태욱은 마을의 대부분 청장년층 로력이 마을을 떠났고 년장자들이 힘든 몸을 이끌며 밭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그때로부터 김태욱은 저비용 고능률의 농기계를 만들어 농민들이 ‘흑토를 마주하고 하늘을 등진’ 힘겨운 생활을 개변시켜보겠다는 포부를 안게 되였다.
“당시 선진적이고 실용적인 이앙기 한대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저희 고향 어르신들의 생산능률과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지난 8월 26일, 결심을 세웠던 당시를 회억하는 김태욱의 눈은 여전히 결연한 눈빛으로 빛났다.
포부를 세우기는 쉬워도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전문적인 리론지식도, 제대로 된 연구개발 환경도, 연구자금 보장도 없었지만 김태욱은 뛰여난 사고력과 손재주로 연구해나갔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집요한 마음가짐이였다.
김태욱은 집안의 낡고 어두컴컴했던 작은 창고를 정리하고 그만의 ‘희망’을 가꾸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원자재는 중고물품시장에서 골라온 판자, 쇠덩어리와 페기된 부품들이였다. 그는 그 조각들을 정성껏 톱질하고 갈고 용접해 각종 농기계 부품으로 만들었다. 오랜 시간의 간고한 작업환경에 김태욱은 풍습과 경추질환마저 생겼다. 통증이 심할 때면 걷거나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몸이 비틀거릴 정도였지만 밤에라도 제작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창고로 달려갔다. 김태욱의 초췌해진 모습에 가족들이 비현실적인 생각은 그만 접고 하나라도 젊었을 때 제대로 된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그의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시기 하루에 세시간밖에 못 잤는데 전혀 힘든 걸 몰랐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이앙기를 쓰는 모습만을 생각했다는 그였다.
고생 끝에 락이 찾아왔다. 1999년, 김태욱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첫 이앙기가 완성되였다. 이 기계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지고 사람의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동작을 과학적으로 모방했다. 여러차례 실험과 현장 검증을 통해 그가 만들어낸 이앙기는 로력, 시간, 능률까지 모두 갖춘 선진설비로 거듭나 3명 농민의 작업능률과 맞먹게 되였다. 김태욱이 이앙기 제작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빠르게 퍼졌다. 포기하라고 말렸던 맏형마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술특허를 신청해볼 것을 권유했다. 김태욱은 여전한 뚝심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하면서 자료를 가지고 북경에 있는 국가지식재산권국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몇개월 동안 바쁘게 뛰여다닌 끝에 그는 생애 첫 특허인 ‘육모판 벼 이앙기’ 실용 신형 특허증서를 따냈다.
김태욱의 사적은 곧 여러 매체의 주목을 받고 성, 주 농기계 관련 부문, 생산업체, 연구개발 단위 등의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여러차례 조사단을 구성해 김태욱의 작은 공장을 견학했다. 2008년, 김태욱은 길림농업대학 벼연구소와 함께 교차하여 모내기하고 여러가지 폭에 따라 모내기를 하는 기술에 관련해 협력하기도 했다. 정부 부문과 전문가, 학자들의 지지는 김태욱에게 ‘강심제’를 주입한 것처럼 그의 개발시야도 수전에서 한전으로 넓혀졌다. 반복적인 실험과 여러차례 개량 업그레이드를 통해 2010년, 그는 또 거름을 주고 회전 경운하며 파종하고 이랑을 만들며 흙을 덮고 다져주는 일련의 복잡한 작업을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시비 회전경운 파종 복합기’ 개발에 성공했다. 1998년 이래 김태욱은 이앙기부터 다기능 일체형 전자동 첨단기술의 농기계까지 국가지식재산권국으로부터 12개의 특허를 받았다. 현재 5개의 발명특허가 신청중에 있다고 한다.
이어 김태욱은 태욱농기계유한회사를 설립했다. 2016년, 관련 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그는 또 오합공농기계농민전문합작사를 설립해 마을의 빈곤호들을 도왔다. 현재 주내에는 그가 발명한 농기계 60여대가 보급되여있었다. 주문이 많지는 않지만 농민들이 선진적 발명품의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은 그의 20여년간 집요한 노력과 고생에 대한 가장 큰 격려와 긍정이였다. “다른 파종기는 단일한 작업만 할 수 있는데 다기능 복합기 한대만 있으면 비료를 주고 밭을 갈며 이랑을 짓고 흙을 묻으며 파종까지 할 수 있습니다. 운전수 한사람이 기계에 올라타서 단번에 모든 작업이 가능하죠. 품이 적게 들고 시간도 훨씬 절약됩니다.” 룡성촌 농민 석비리는 김태욱 농기계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발명 동력의 원천은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촌민들이 부유해지고 우리 마을이 진흥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김태욱은 로력을 상실한 10가구의 가정이 합작사에 입주하도록 도왔으며 해마다 입주 자금의 7.5%를 이들에게 배당하고 있었다.
2002년, 김태욱은 ‘중국 전문가 인명사전’에 등재되고 연변 ‘향토 전문가 10인’, 전국 농기계 사용일선 ‘향토 전문가’명록 제1패 전문가에 입선되였으며 ‘길림성 향촌진흥 우수인재’와 길림성 제1패 향촌인재 고급직함 등 영예칭호를 받았다.
“올해 62세인 저는 작은 창고에서 더 실속 있고 더 효과적이며 더 친환경적인 농기계를 개발해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잘살고 우리 마을이 향촌진흥의 길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태욱의 자신감에 넘친 말이다.   
 
 
연길시당위 조직부 제공
작가:김설 편집: 사진:장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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