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자비로 10여만원을 들여가면서 로전사 400여명을 찾아 방문하고 혁명영렬 선진사적 3800여건을 수집, 정리한 서숙자(71세) 로인은 연길시 ‘로전사의 집’ 당지부 서기 겸 리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다년간 아무런 보수도 없이 홍색이야기를 선전, 강연하고 연길시에서 최초로 ‘로전사의 집’을 세워 혁명로전사 및 가족들에게 알뜰 봉사를 제공했다. 그가 사비를 털어 운영한 ‘애심마켓’은 애심인사들과 사회력량의 동참을 이끌어냈고 서숙자 로인은 사회 각계의 사랑을 모아 빈곤가정 아동 등 약소계층의 실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었고 선행으로 사랑을 전했다.
로전사의 지기로 되여
2002년, 신문을 통해 혁명로전사들의 사적을 료해하게 된 서숙자는 혁명정신을 널리 알리려고 다짐했다. 20년을 하루와 같이 혁명로전사들의 사적과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학교, 사회구역, 부대를 찾으면서 영웅사적을 선전하는 일에 정열을 몰부었다. 지금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500여차의 애국주의교양사진전을 조직해 10여만명 관중들에게 혁명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혁명로전사들의 사적을 발굴하면서 서숙자는 살아계시는 일부 로전사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료해하고 로전사들에게 따뜻한 집을 세워주려고 마음 먹었다. 여러 부문을 두 발로 직접 뛰면서 소통한 끝에 서숙자는 연길시에서 최초로 ‘로전사의 집’을 세우고 혁명로전사, 제대군인, 상이군인, 우대무휼군인들에게 당성교양, 생활 돌봄 봉사를 제공해주면서 그들의 곤난을 해결해주었다. 목전 ‘로전사의 집’은 혁명력사를 회억하고 당의 은혜를 기억하며 미래를 펼쳐가고 곤난을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인 봉사중심으로, 애국주의교양기지와 퇴역군인을 위해 봉사하는 보금자리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로전사의 집’은 여러 류형의 활동을 128회 전개했고 연인수로 3600여명이 활동에 참가했다.
서숙자는 많은 로전사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렬사와 로전사의 자녀, 가족들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숙자는 그들이 봉착한 곤난을 해결해주기 위해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에서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렬사자녀 마대륜을 위문하고 보살펴주는 한편 자원봉사자를 련락해 수혈이 시급한 렬사 후손 황선옥에게 600밀리리터를 헌혈하고 1000여원의 치료비용을 대신 지불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곤난한 렬사의 후손에게 극빈보험을 해결해주고 저렴한 세집을 찾아주었으며 렬사의 안해를 장기적으로 방문해 정신적 위로와 생활상 도움을 제공해주고 로전사 한도준과 그의 안해 황정숙을 도와 1000여원의 치료비용을 해결해주었다.
사랑을 베푸는 선도자로 되여
서숙자는 몇년 전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반신불수이고 로동력을 상실했으며 엄마가 홀로 날품팔이하며 온 가족이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집에 매트 하나 없어 밤에는 콩크리트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자니 건강한 사람도 병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한사람의 힘으로는 빈곤아동의 생활상태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숙자는 소득 창출을 통해 그들을 돕기로 했다.
서숙자는 사비를 털어 빈곤아동을 돕기 위한 ‘애심마켓’을 열었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팔기 시작했다. ‘애심마켓’의 수익금은 전부 아동구조기금으로 사용되였다. 서숙자는 매일 아침 일찍 야채도매시장에 가서 야채를 들여왔는데 수십근의 야채를 직접 어깨에 메고 뻐스를 오르내렸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면서 같은 시간대에 늘 마주치던 승객들은 서숙자의 선행을 료해하게 됐고 그 후로는 주동적으로 야채운반을 도와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숙자의 ‘애심마켓’은 자리를 잡았고 단골손님까지 생겨나면서 반년간의 운영을 통해 5200원의 수익금을 창출했다. 그는 수익금을 전부 사회구역에 기부해 13명의 빈곤학생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전달했다.
그 이후로 서숙자는 두번째 ‘애심마켓’을 열었고 그의 선행은 이웃들을 감화시켰다. 이웃들은 성금을 모으고 옷을 기부하며 서숙자를 따라 사랑을 베풀었다. 지난 몇년간 ‘애심마켓’은 빈곤아동, 빈곤가정 학생, 장애아동, 빈곤렬사 가족을 포함한 200여명에게 5만여원을 기부했다.
로인이 로인을 돕는 도우미로 되여
서숙자는 로전사와 빈곤아동을 돕는 한편 ‘네잎클로버 자원봉사단’에 가입해 로인들에게 리발을 해주고 혈압측정과 청소를 해주는 한편 말동무가 되여주면서 마음속의 매듭도 풀어주었다. 명절이면 서숙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로전사들을 모시고 만두를 빚어 함께 먹고 빈곤로인들을 조직해 무료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무의탁로인을 위문하여 따뜻한 정을 나누며 만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서숙자는 최근 몇년간 ‘사랑 기여자’ 의료진의 하향활동에도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코로나19 발생 후 그는 ‘로전사의 집’에서 사회구역 핵산검측 사업일군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전염병 예방, 퇴치 사업에 힘을 보태려고 여러 차례 기부했다. 서숙자는 선후로 ‘길림성 미성년교양 사상도덕교양 사업 선진개인’, ‘제4기 길림성 우수자원봉사자’, ‘길림성 좋은 사람’, ‘전 성 새세대관심사업 선진로동자’, 길림 ‘좋은 사람 본보기’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는 다년간 아무런 보수도 없이 홍색이야기를 선전, 강연하고 연길시에서 최초로 ‘로전사의 집’을 세워 혁명로전사 및 가족들에게 알뜰 봉사를 제공했다. 그가 사비를 털어 운영한 ‘애심마켓’은 애심인사들과 사회력량의 동참을 이끌어냈고 서숙자 로인은 사회 각계의 사랑을 모아 빈곤가정 아동 등 약소계층의 실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었고 선행으로 사랑을 전했다.
로전사의 지기로 되여
2002년, 신문을 통해 혁명로전사들의 사적을 료해하게 된 서숙자는 혁명정신을 널리 알리려고 다짐했다. 20년을 하루와 같이 혁명로전사들의 사적과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학교, 사회구역, 부대를 찾으면서 영웅사적을 선전하는 일에 정열을 몰부었다. 지금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500여차의 애국주의교양사진전을 조직해 10여만명 관중들에게 혁명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혁명로전사들의 사적을 발굴하면서 서숙자는 살아계시는 일부 로전사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료해하고 로전사들에게 따뜻한 집을 세워주려고 마음 먹었다. 여러 부문을 두 발로 직접 뛰면서 소통한 끝에 서숙자는 연길시에서 최초로 ‘로전사의 집’을 세우고 혁명로전사, 제대군인, 상이군인, 우대무휼군인들에게 당성교양, 생활 돌봄 봉사를 제공해주면서 그들의 곤난을 해결해주었다. 목전 ‘로전사의 집’은 혁명력사를 회억하고 당의 은혜를 기억하며 미래를 펼쳐가고 곤난을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인 봉사중심으로, 애국주의교양기지와 퇴역군인을 위해 봉사하는 보금자리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로전사의 집’은 여러 류형의 활동을 128회 전개했고 연인수로 3600여명이 활동에 참가했다.
서숙자는 많은 로전사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렬사와 로전사의 자녀, 가족들이 의지할 곳이 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숙자는 그들이 봉착한 곤난을 해결해주기 위해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에서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렬사자녀 마대륜을 위문하고 보살펴주는 한편 자원봉사자를 련락해 수혈이 시급한 렬사 후손 황선옥에게 600밀리리터를 헌혈하고 1000여원의 치료비용을 대신 지불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곤난한 렬사의 후손에게 극빈보험을 해결해주고 저렴한 세집을 찾아주었으며 렬사의 안해를 장기적으로 방문해 정신적 위로와 생활상 도움을 제공해주고 로전사 한도준과 그의 안해 황정숙을 도와 1000여원의 치료비용을 해결해주었다.
사랑을 베푸는 선도자로 되여
서숙자는 몇년 전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반신불수이고 로동력을 상실했으며 엄마가 홀로 날품팔이하며 온 가족이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집에 매트 하나 없어 밤에는 콩크리트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자니 건강한 사람도 병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한사람의 힘으로는 빈곤아동의 생활상태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숙자는 소득 창출을 통해 그들을 돕기로 했다.
서숙자는 사비를 털어 빈곤아동을 돕기 위한 ‘애심마켓’을 열었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팔기 시작했다. ‘애심마켓’의 수익금은 전부 아동구조기금으로 사용되였다. 서숙자는 매일 아침 일찍 야채도매시장에 가서 야채를 들여왔는데 수십근의 야채를 직접 어깨에 메고 뻐스를 오르내렸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면서 같은 시간대에 늘 마주치던 승객들은 서숙자의 선행을 료해하게 됐고 그 후로는 주동적으로 야채운반을 도와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숙자의 ‘애심마켓’은 자리를 잡았고 단골손님까지 생겨나면서 반년간의 운영을 통해 5200원의 수익금을 창출했다. 그는 수익금을 전부 사회구역에 기부해 13명의 빈곤학생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전달했다.
그 이후로 서숙자는 두번째 ‘애심마켓’을 열었고 그의 선행은 이웃들을 감화시켰다. 이웃들은 성금을 모으고 옷을 기부하며 서숙자를 따라 사랑을 베풀었다. 지난 몇년간 ‘애심마켓’은 빈곤아동, 빈곤가정 학생, 장애아동, 빈곤렬사 가족을 포함한 200여명에게 5만여원을 기부했다.
로인이 로인을 돕는 도우미로 되여
서숙자는 로전사와 빈곤아동을 돕는 한편 ‘네잎클로버 자원봉사단’에 가입해 로인들에게 리발을 해주고 혈압측정과 청소를 해주는 한편 말동무가 되여주면서 마음속의 매듭도 풀어주었다. 명절이면 서숙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로전사들을 모시고 만두를 빚어 함께 먹고 빈곤로인들을 조직해 무료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무의탁로인을 위문하여 따뜻한 정을 나누며 만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서숙자는 최근 몇년간 ‘사랑 기여자’ 의료진의 하향활동에도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코로나19 발생 후 그는 ‘로전사의 집’에서 사회구역 핵산검측 사업일군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전염병 예방, 퇴치 사업에 힘을 보태려고 여러 차례 기부했다. 서숙자는 선후로 ‘길림성 미성년교양 사상도덕교양 사업 선진개인’, ‘제4기 길림성 우수자원봉사자’, ‘길림성 좋은 사람’, ‘전 성 새세대관심사업 선진로동자’, 길림 ‘좋은 사람 본보기’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