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의 수호, 변함없이 이어가는 붉은 유전자


날짜 2023-05-10 09:51:27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이는 로혁명근거지 연변에 대한 하경지 시인의 진실한 묘사이다.
현재 연변에는 341개의 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룡정시 삼합진 삼합촌의 혁명렬사기념비도 그중 하나이다. 이 기념비는 혁명렬사에 대한 후세사람들의 깊은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58년의 긴 시간, 변함없이 묵묵히 이 렬사기념비를 지키면서 혁명정신을 계승해온 사람이 있다.

1964년, 룡정시 삼합진 청천촌에 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졌다. 당시 촌당지부 서기직을 맡았던 리은기는 자발적으로 마을의 30여명 당원들을 조직해 방화, 청소, 보수 등 작업을 이어오면서 기념비를 지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마다 청명, 8.1건군절, 추석 때면 리은기는 당원과 마을의 촌민을 조직하여 추모활동을 진행했다.
리은기에겐 어딜 가나 늘 갖고 다니던 작은 쪽걸상이 있었다. 그는 평소에 쪽걸상을 가지고 학교를 찾아가 혁명선렬들의 영웅사적을 들려주군 했다.
세월과 함께 그를 동무해온 자그마한 쪽걸상은 고향의 변화를 견증하고 추모의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오늘의 행복이 쉽게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로인과 쪽걸상의 작은 동행은 수십년을 훌쩍 넘겼다.
“이 전사의 이름은 전동학이라우. 결혼 석달 만에 고향을 떠났는데 딸애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우. 김봉산은 항일유격대원인데 적에게 포위돼 집안에서 불에 타 희생됐소. 당시 19살밖에 되지 않았지…” “이들은 희생시 불과 서른도 안됐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 곁을 떠나 목숨을 바쳤소.” 렬사를 추모하러 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리은기는 렬사들의 사적을 자세히 소개해주었다. 리은기에게 왜 이토록 이 기념비를 소중하게 여기는가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면 리은기는 “이들중에는 내 어릴 적 친구도 있고 익숙했던 마을 사람도 있다오.”라면서 오늘의 행복한 생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들 생각이 난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청천촌은 2002년에 삼합촌에 합병됐다. 얼마 후 렬사기념비도 새로 자리를 옮겼다. 세월이 흘러 30대 초반의 리은기도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기념비를 지키려는 초심만은 시종 변함이 없었다. 그 후 건강상태가 나빠진 리은기는 자주 기념비를 찾지 못하게 됐지만 사람을 만날 때마다 렬사기념비의 정황을 묻곤 했다. 삼합진당위에서는 수십년간 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의 정황을 료해한 후 자금을 모아 그를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사회 각계의 도움으로 2019년, 렬사기념비와 100메터 남짓 떨어진 곳에 애심아빠트를 지어 남은 생에도 기념비를 지키려는 리은기 로인의 소원을 이뤄주었다.
삼합출입경변방검사소 경찰 두상룡은 10여년간 변방을 지켜왔다. 그는 사업에 참가한 첫 해 리은기가 영웅렬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정경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22년 12월 16일, 60년 가까이 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는 평범하면서도 묵직한 일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림종 무렵, 그는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비석수호자’ 계주봉을 이어받아 영렬들의 충혼을 지켜줄 사람이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친필편지를 남겼다. 이 소식을 들은 두상룡은 주동적으로 ‘비석수호자’가 되겠다고 신청해나섰다.
올해의 청명을 맞아 기념비 아래에서 ‘비석수호자’ 인수인계식이 거행됐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렬사기념비지만 전승해가는 것은 바로 ‘정신’입니다. 영렬들의 사적은 우리의 마음속에 꼭 새겨야 하고 또 마땅히 새겨져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렬사들의 사적과 함께 기념비 수호 정신을 한세대 또 한세대 전해가겠습니다.”
두상룡은 리은기의 집 앞, 렬사기념비 아래에서 로인과 늘 함께 했던 쪽걸상을 이어받았다. 변방검사소의 전체 당원들과 함께 되새긴 입당선서의 목소리는 조국의 변강에 메아리쳤다. 높이 휘날리는 당기 아래 온 산천에 만발한 진달래는 대대손손 이어갈 이 감동의 이야기를 말없이 담고 더 붉게 대지를 단장하고 있다.   
 
작가:김철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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