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비를 바치는 것은 모든 공산당원의 책임이자 의무이므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직접 바치고 싶다.”는 연길시 104세 고령의 려수영 로당원, “중국공산당이 없으면 오늘날 이렇게 행복한 만년을 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룡정시 93세 고령의 한춘옥 로당원. 이들은 75년간 당의 말을 듣고 당의 은혜에 감사하며 당을 따라 영원히 나아가겠다는 ‘당의 딸’들이다. 젊었을 때 착실히 사업하며 청춘을 기여해온 이들은 퇴직 후에도 여열을 아낌없이 불태웠으며 당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당비’로 로당원의 굳건한 초심과 신념을 표달하고 있었다.
지난 2월 27일, 104세의 로당원 려수영은 며느리의 부축하에 연길시 진학가두 안양사회구역을 찾아 당위 부서기 고경에게 본년도 당비를 납부했다.
고경 부서기에 따르면 관할구역 로인들의 신체상황을 고려하여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은 방문봉사를 제공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당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려수영은 당비를 바치는 것은 모든 공산당원의 책임이자 의무이므로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직접 사회구역에 바치고 싶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려수영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지금의 행복한 생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원으로서 반드시 신념을 확고히 하고 당의 말을 듣고 당의 은혜에 감사하며 당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고 말했다. 해마다 입당시기에 맞춰 매년 5월에 잊지 않고 당비를 납부해온 려수영 로인이다. 하지만 점점 기억력이 흐릿해져 행여나 납부날자를 놓칠세라 음력설련휴기간부터 자식들을 ‘독촉’해 당비 납부날자를 앞당겨온 것이였다.
75년의 당년한을 가지고 있는 려수영은 당원으로서 일심전력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당원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무한의 영광이며 더우기는 무거운 책임이라고 여겨온 그였다.
1947년, 사업에 참가한 려수영은 향진의 부녀주임으로 지내다 진학가두 초대 주임을 맡았으며 사업을 착실히 하여 194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항미원조전쟁 때, 부상자를 싣고 귀국하는 비행기가 그녀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연길 동부의 한 비행장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려수영은 담가를 들고 부상자를 운송하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밥을 지어 비행사들이 그의 집에서 식사하도록 했다. 그는 또 가두 관할구역의 부녀들을 조직해 군화를 만들어 전선을 지원했다. 이후 연길시 가죽가방공장, 유리공장, 량식식용유공장에서 당조직 서기를 지냈으며 퇴직 후에도 안락한 로후생활 대신 사회구역에서 여열을 발휘했다. 2021년, 당창건 100돐이 되는 해에는 주민들과 함께 당기를 수놓아 당에 대한 무한한 충성과 열애를 표했다.
지난 3월 1일, 연변사회복리원에 입주해있는 93세 로당원 한춘옥은 룡정시 안민가두 문화사회구역 당총지 서기 강윤호에게 방문을 요청해 1만 300원의 특수당비와 감사편지를 전달했다. “저는 당조직의 무한한 관심과 양성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특수당비로 당의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한춘옥의 소박한 말에는 로당원의 당에 대한 깊은 감정으로 충만돼있었다.
1931년, 한춘옥은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태여났다. 11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세 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힘들게 생활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자식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떡을 팔고 두부도 만들어 팔았으며 그도 생활고로 인해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1948년, 한춘옥은 사업에 참가하여 당시의 도문시우전국에서 전화 교환원을 맡았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저는 당조직의 양성 덕분에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착실하게 사업할 수 있었습니다. 당의 사업을 위해 평생을 분투해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1949년 12월 29일, 한춘옥의 적극적인 신청과 당조직의 양성하에 그는 영광스러운 공산당원으로 되였다. 1963년, 한춘옥은 남편을 따라 룡정시로 가게 되였고 룡정시우전국에 전근되여 근무하다가 1979년에 퇴직했다. 이 기간에 그녀는 업무에 출중하여 여러차례 국가, 성, 주, 시의 장려를 받았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도 없습니다. 공산당이 없으면 오늘날의 저도 이렇게 행복한 만년을 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춘옥은 지난 7년 동안 모은 1만 300원을 특수당비로 당조직에 바치면서 당사업의 발전을 지지하고 당의 은혜에 보답하련다고 표했다.
앞서 2017년 9월, 한춘옥은 관련 단위에 주동적으로 련락해 자신의 유체를 조국의 의료사업에 기증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소소한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했다.
75년간, 온갖 풍상고초를 겪어오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고 온갖 시련을 겪어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바로 로당원들의 진심 어린 본색이다.
지난 2월 27일, 104세의 로당원 려수영은 며느리의 부축하에 연길시 진학가두 안양사회구역을 찾아 당위 부서기 고경에게 본년도 당비를 납부했다.
고경 부서기에 따르면 관할구역 로인들의 신체상황을 고려하여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은 방문봉사를 제공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당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려수영은 당비를 바치는 것은 모든 공산당원의 책임이자 의무이므로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직접 사회구역에 바치고 싶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려수영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지금의 행복한 생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원으로서 반드시 신념을 확고히 하고 당의 말을 듣고 당의 은혜에 감사하며 당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고 말했다. 해마다 입당시기에 맞춰 매년 5월에 잊지 않고 당비를 납부해온 려수영 로인이다. 하지만 점점 기억력이 흐릿해져 행여나 납부날자를 놓칠세라 음력설련휴기간부터 자식들을 ‘독촉’해 당비 납부날자를 앞당겨온 것이였다.
75년의 당년한을 가지고 있는 려수영은 당원으로서 일심전력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당원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무한의 영광이며 더우기는 무거운 책임이라고 여겨온 그였다.
1947년, 사업에 참가한 려수영은 향진의 부녀주임으로 지내다 진학가두 초대 주임을 맡았으며 사업을 착실히 하여 194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항미원조전쟁 때, 부상자를 싣고 귀국하는 비행기가 그녀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연길 동부의 한 비행장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려수영은 담가를 들고 부상자를 운송하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밥을 지어 비행사들이 그의 집에서 식사하도록 했다. 그는 또 가두 관할구역의 부녀들을 조직해 군화를 만들어 전선을 지원했다. 이후 연길시 가죽가방공장, 유리공장, 량식식용유공장에서 당조직 서기를 지냈으며 퇴직 후에도 안락한 로후생활 대신 사회구역에서 여열을 발휘했다. 2021년, 당창건 100돐이 되는 해에는 주민들과 함께 당기를 수놓아 당에 대한 무한한 충성과 열애를 표했다.
지난 3월 1일, 연변사회복리원에 입주해있는 93세 로당원 한춘옥은 룡정시 안민가두 문화사회구역 당총지 서기 강윤호에게 방문을 요청해 1만 300원의 특수당비와 감사편지를 전달했다. “저는 당조직의 무한한 관심과 양성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특수당비로 당의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한춘옥의 소박한 말에는 로당원의 당에 대한 깊은 감정으로 충만돼있었다.
1931년, 한춘옥은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태여났다. 11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세 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힘들게 생활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자식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떡을 팔고 두부도 만들어 팔았으며 그도 생활고로 인해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1948년, 한춘옥은 사업에 참가하여 당시의 도문시우전국에서 전화 교환원을 맡았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저는 당조직의 양성 덕분에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착실하게 사업할 수 있었습니다. 당의 사업을 위해 평생을 분투해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1949년 12월 29일, 한춘옥의 적극적인 신청과 당조직의 양성하에 그는 영광스러운 공산당원으로 되였다. 1963년, 한춘옥은 남편을 따라 룡정시로 가게 되였고 룡정시우전국에 전근되여 근무하다가 1979년에 퇴직했다. 이 기간에 그녀는 업무에 출중하여 여러차례 국가, 성, 주, 시의 장려를 받았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도 없습니다. 공산당이 없으면 오늘날의 저도 이렇게 행복한 만년을 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춘옥은 지난 7년 동안 모은 1만 300원을 특수당비로 당조직에 바치면서 당사업의 발전을 지지하고 당의 은혜에 보답하련다고 표했다.
앞서 2017년 9월, 한춘옥은 관련 단위에 주동적으로 련락해 자신의 유체를 조국의 의료사업에 기증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소소한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했다.
75년간, 온갖 풍상고초를 겪어오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고 온갖 시련을 겪어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바로 로당원들의 진심 어린 본색이다.
사진제공: 연변조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