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어려움을 깎아드리겠습니다”

연변변경관리지대 고성리변경파출소 부소장 위호천
날짜 2024-04-12 15:25:21

매서운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3월초, 연길에서 출발해 화룡 시가지를 지나고 눈이 뒤덮인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1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화룡시 숭선진 대동촌, 촌민위원회 활동실에서 리발이 한창이였다.

“좋소, 좋소. 우리 호천이 솜씨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구먼.” 대동촌 촌민 손옥평(59세)은 거울에 자신의 머리를 이리저리 비춰보면서 리발사의 솜씨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리발사는 다름 아닌 연변변경관리지대 고성리변경파출소 부소장 위호천(29세)이였다.
18세 나이에 고향인 흑룡강성 이춘을 떠나 군대에 입대하여 6년 동안 청춘의 땀방울로 변방을 굳게 지켰던 위호천, 2018년에는 조직의 배치에 따라 고성리변경파출소에 출근하면서 대동촌당지부 부서기 역할도 맡게 됐다.

위호천의 리발 이야기는 2018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촌민들의 집을 방문하는 과정에 리호천은 마을에 리발소가 없어 로인들이 스스로 리발을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이가 비교적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촌민들은 스스로 집에서 가위로 리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자를 때 쓰는 녹슨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 오히려 더 어수선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에 걸리더군요.” 촌민들은 리발을 하려면 화룡 시가지로 가야 했는데 왕복거리 160킬로메터가 넘는다. 산길이 구불구불한 데다 눈이 내리면 길이 막히거나 도로가 얼어붙기 십상이여서 한번 길을 떠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시내에서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리발이지만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걱정거리였다. 거울 하나, 가위 하나, 전동 리발기 하나. 이제는 위호천이 촌민들의 집에 방문을 갈 때마다 꼭 챙겨가는 세가지 물품이 되였다. 변경마을 곳곳에 위호천의 발자국이 쉼없이 찍혔다.

위호천은 118가구가 모여사는 대동촌의 경무를 맡고 있다. “군사학교에 다닐 때 전우끼리 리발기로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촌민들에게 리발을 해주어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해주고 편리를 제공하려는 마음에 저의 생각을 상급에 보고했고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솜씨가 많이 늘었지만 처음에는 경험이 부족한 데다 행여나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헤매기도 했다. “전동 리발기를 구매했지만 촌민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열정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 리발 강의영상을 찾아보면서 손재간을 키웠고 더 큰 난이도를 요하는 녀성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가위와 거울도 마련했다.
2019년, 촌민위원회 로인활동중심에는 위호천의 이름으로 명명한 ‘호천리발실’이라는 새 간판이 걸렸다. 촌민들은 이제 따뜻한 해볕이 들어오는 활동실에 둘러앉아 일상사를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리발순서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날따라 제고되는 위호천의 리발솜씨와 함께 그와 촌민들의 마음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 위호천은 대동촌에서 또 하나의 신분을 갖게 되였는데 바로 모두의 ‘가족’이다. 위호천은 촌민들을 마주치면 “삼촌”, “숙모”, “형님”, “누나”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그는 촌민들이 리발실에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특성을 리용해 이곳을 의견수집소, 이웃분쟁조정소, 정책선전역으로 역할을 넓히고 촌민들의 급해하고 어려워하고 걱정하고 바라는 문제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적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위호천은 모든 촌민들의 집안 상황을 훤히 알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그의 대동촌 업무일기에는 어느 집 로인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가정상황은 어떠한지 빼곡이 기록돼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게 됐고 촌민들도 크고 작은 수요가 있으면 그를 찾는 것에 이미 습관이 됐다. 지난 5년간 위호천은 리발소를 리용해 100여차례 법률보급선전을 펼치고 100개 이상의 분쟁을 조정했으며 ‘애심슈퍼마켓’프로젝트를 혁신적으로 전개하고 5명의 독거로인한테 일대일 방조부축 사업을 펼쳤다.
리총옥(80세) 로인은 마을에서 년세가 가장 많은 독거로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로인은 위호천이 방문 갈 때마다 그를 자신의 손자인 왕빈으로 오해하고 늘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리로인의 손자 역시 경찰이였는데 일년 내내 업무로 바쁘다보니 여러 해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황을 잘 알고 있었던 위호천은 로인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고 자주 찾아가 말동무가 되고 손자가 되여줬다.
“호천이는 촌민들의 일이라면 눈에 익히고 마음에 새기는 책임감 있는 아이예요.” “위경찰은 봄철이면 촌민들의 모내기를 돕고 가을철이면 쌀가마니를 날라주며 마을길에서 마주치면 어려움이 있는지 늘 관심하고 도움을 줍니다.” 인민군중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위호천의 진심은 어느샌가 촌민들의 마음에 닿아있었다.

“연변가요 <붉은 해 변강 비추네>는 연변인민이 투지 높이 군민이 단결하여 조국 변강을 건설했다고 부릅니다. 이 노래는 새시대 군민이 한마음 되여 여러 민족이 함께 단결분진하는 진실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이 변경마을에는 설날, 추석 등 중요 명절일 때면 촌민들과 파출소 경찰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위호천은 늘 사회자를 맡거나 사진가로 뛰였다. 연변변경관리지대 고성리변경파출소 우소원 소장은 “위호천은 늘 깨끗한 구두를 신고 파출소를 나섰다가 흙을 가득 묻혀서 돌아옵니다. 그는 자신의 실제 행동으로 여러 민족 군중의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중화민족공동체의식 확고히 수립 사업에서 량호한 인민경찰의 형상을 수립했습니다.”고 위호천을 칭찬했다.
농업경제를 위주로 하는 대동촌은 입쌀 품질이 좋으나 판로가 없어 마을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촌당지부 부서기인 위호천은 지도부와 적극 소통하여 본 지역 곡물 브랜드 구축 계획을 연구하고 대동촌 력사상 최초의 기업인 원풍농특산품유한회사를 설립해 셀렌입쌀 특색 브랜드를 구축했으며 촌민들이 20만원의 수입을 창출하도록 도왔다.
7년철로 접어든 대동촌에서의 시간, 또 하나의 새 봄이 다가왔다. “손꼽아 보면 대동촌에서 여섯번의 설날을 보냈습니다. ‘호천리발실’을 통해 군중과의 감정을 더욱 가깝게 해왔듯이 ‘이동리발실’로 봉사범위를 확대하여 숭선진의 더 많은 군중들을 위해 봉사하며 여러 민족 군중이 일심단결하여 변경의 안정을 수호하도록 할 것입니다.” 촌민들과 관련된 일에는 사소한 것이 없다는 위호천은 리발가위로 변경마을 집집마다의 근심과 어려움을 깎아주고 전동 리발기로 향촌진흥 치부의 길을 열었으며 거울로 군중을 위한 진정된 마음을 비춰주고 있다.
작가:김철 김설 편집: 사진:장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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