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기자가 돼서부터 농촌의 발전과 변화를 취재해왔다. 정밀화 빈곤층부축, 중앙환경보호독찰 그리고 지금의 향촌진흥에까지 매개 취재 이야기의 뒤에는 날로 변화해가는 향촌의 아름다운 화폭이 펼쳐져있었고 치부의 문을 힘차게 두드리는 농민들이 있었으며 촌민들을 이끌고 아름다운 생활로 나아가는 촌당지부가 있었다.
정밀화 빈곤층부축이 금방 시작됐을 때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농촌의 변화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사를 거쳐 서류등록 빈곤호를 정하고 마을의 산업을 일떠세우며 도급단위 간부들이 촌에 주재하면서 빈곤해탈을 추진했다. 산업발전, 촌의 기초시설 개선, 의료보장, 위험주택 개조 등을 망라한 방대한 공정이였고 농촌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빈곤호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됐고 빈곤촌에 대한 정부측의 일방적인 부축 모식이 산업을 통한 자력갱생 모식 구축으로 변했다. 취재과정에서 당시 햇내기 기자였던 필자는 항상 뉴스 포인트를 산업의 규모, 각종 수치, 성과 등 기계적인 부분에 두었고 그 리면에 있는 촌민들의 생활에 대한 세밀한 변화, 촌에 주재하면서 촌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촌주재 간부들의 생활의 이모저모, 전투보루 역할을 발휘하는 촌당지부 내면의 감동적인 이야기 등을 료해하는 데 많이 소홀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좋은 취재거리를 놓쳤던 셈이다.
농촌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놓았다. 그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글에 녹여내는 데 능수능란해야 농촌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져있는 살아 숨 쉬는 뉴스를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햇내기 시절에는 그런 부분에 약했거니와 그러한 의식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취재의식이 너무 기계적이여서 인간 내면의 정서와 사람 냄새, 흙냄새가 나는 농촌의 본모습을 그려낼 줄을 몰랐다.
19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향촌진흥 전략을 실시한다는 중대한 결책포치를 내렸다. 촌주재 공작대가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마을의 산업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빈곤해탈 호들이 재차 빈곤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조치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 기간에는 취재의 초점들이 마을의 산업에 많이 맞추어져있고 촌 집체경제의 성과와 마을환경의 변화, 촌민들의 삶의 변화에 큰 비중을 두면서 취재를 해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햇내기 기자시절의 취재는 천편일률적이였고 특점이 없었으며 기사마다 마을 이름만 바뀌였지 대개 줄거리는 거의 다 비슷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면에 다양하게 뉴스 포인트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로 진입해야 하는데 기계적인 모식으로 다가갔고 항상 쉽게 끝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바로 농촌과 농촌의 사람들 그리고 농촌의 변화들에 대한 머리속의 거리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번은 취재 임무차 농촌에 한달간 주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촌과 향진의 사업일군들이 얼마나 분망한지를 알았다. 평소에 련락을 자주 주고받던 선전위원들이 선전업무외에도 얼마나 많은 업무를 떠메고 있으며 산업을 일떠세움에 있어서 향진간부들과 촌간부들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평소 말 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잠시 스치던 취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농촌의 무게감과 변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흘린 촌주재 공작대, 촌간부들의 피와 땀들이 진실되게 피부에 다가왔다. 모든 것을 차가운 수치로만, 일떠선 산업 건물로만, 달라진 마을환경으로만 해석하던 과거 수박겉 핥기 식의 취재과정이 너무 아쉬웠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좋은 뉴스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정한 기자는 반드시 현장에 녹아들어야 하고 취재대상들의 마음과 처한 환경을 그들의 립장에서 생각해야만 생동하고 진실하며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뉴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20차 당대회에서는 향촌진흥을 전면 추진하고 향촌의 산업, 인재, 문화, 생태, 조직 진흥을 착실히 추동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농촌의 전면적인 진흥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보도 중점이 산업에만 과도하게 치중될 것이 아니라 농촌의 기층당조직, 문화, 생태환경, 인재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많이 피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촌이 진흥하려면 향촌의 제일 큰 산업인 농업이 진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타 산업들도 덩달아 진흥하여 하나의 완전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야 하고 그러자면 수많은 인재들이 농촌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러한 대목에서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농촌의 천지개벽의 변화를 실감나게 세상에 널리 알리고 농촌의 창업환경, 산업생태계, 거주조건을 사회에 적극 선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료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의 자원과 도시의 자본, 인재가 련결되는 데 선전보도일군으로서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블루오션으로 부상한 향촌으로 자본과 인재가 흘러들어야 하는 이러한 력사적인 시기에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더 생동하고 독자들이 즐겨 읽는 뉴스를 써내 력사의 흐름과 나라의 정책 실시에 촉매제,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겉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전반을 아우르는 의식과 취재능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 아닐가 싶다. 기자생활이 길어질수록 습근평 총서기가 우리 기자들에게 제기한 4가지 능력인 ‘발로 현장을 뛰는 능력, 관찰하는 능력, 사고하는 능력, 글로 옮기는 능력’이 점점 마음에 깊숙이 와 닿는다.
정밀화 빈곤층부축이 금방 시작됐을 때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농촌의 변화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사를 거쳐 서류등록 빈곤호를 정하고 마을의 산업을 일떠세우며 도급단위 간부들이 촌에 주재하면서 빈곤해탈을 추진했다. 산업발전, 촌의 기초시설 개선, 의료보장, 위험주택 개조 등을 망라한 방대한 공정이였고 농촌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빈곤호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됐고 빈곤촌에 대한 정부측의 일방적인 부축 모식이 산업을 통한 자력갱생 모식 구축으로 변했다. 취재과정에서 당시 햇내기 기자였던 필자는 항상 뉴스 포인트를 산업의 규모, 각종 수치, 성과 등 기계적인 부분에 두었고 그 리면에 있는 촌민들의 생활에 대한 세밀한 변화, 촌에 주재하면서 촌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촌주재 간부들의 생활의 이모저모, 전투보루 역할을 발휘하는 촌당지부 내면의 감동적인 이야기 등을 료해하는 데 많이 소홀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좋은 취재거리를 놓쳤던 셈이다.
농촌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놓았다. 그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글에 녹여내는 데 능수능란해야 농촌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져있는 살아 숨 쉬는 뉴스를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햇내기 시절에는 그런 부분에 약했거니와 그러한 의식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취재의식이 너무 기계적이여서 인간 내면의 정서와 사람 냄새, 흙냄새가 나는 농촌의 본모습을 그려낼 줄을 몰랐다.
19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향촌진흥 전략을 실시한다는 중대한 결책포치를 내렸다. 촌주재 공작대가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마을의 산업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빈곤해탈 호들이 재차 빈곤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조치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 기간에는 취재의 초점들이 마을의 산업에 많이 맞추어져있고 촌 집체경제의 성과와 마을환경의 변화, 촌민들의 삶의 변화에 큰 비중을 두면서 취재를 해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햇내기 기자시절의 취재는 천편일률적이였고 특점이 없었으며 기사마다 마을 이름만 바뀌였지 대개 줄거리는 거의 다 비슷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면에 다양하게 뉴스 포인트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로 진입해야 하는데 기계적인 모식으로 다가갔고 항상 쉽게 끝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바로 농촌과 농촌의 사람들 그리고 농촌의 변화들에 대한 머리속의 거리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번은 취재 임무차 농촌에 한달간 주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촌과 향진의 사업일군들이 얼마나 분망한지를 알았다. 평소에 련락을 자주 주고받던 선전위원들이 선전업무외에도 얼마나 많은 업무를 떠메고 있으며 산업을 일떠세움에 있어서 향진간부들과 촌간부들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평소 말 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잠시 스치던 취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농촌의 무게감과 변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흘린 촌주재 공작대, 촌간부들의 피와 땀들이 진실되게 피부에 다가왔다. 모든 것을 차가운 수치로만, 일떠선 산업 건물로만, 달라진 마을환경으로만 해석하던 과거 수박겉 핥기 식의 취재과정이 너무 아쉬웠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좋은 뉴스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정한 기자는 반드시 현장에 녹아들어야 하고 취재대상들의 마음과 처한 환경을 그들의 립장에서 생각해야만 생동하고 진실하며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뉴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20차 당대회에서는 향촌진흥을 전면 추진하고 향촌의 산업, 인재, 문화, 생태, 조직 진흥을 착실히 추동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농촌의 전면적인 진흥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보도 중점이 산업에만 과도하게 치중될 것이 아니라 농촌의 기층당조직, 문화, 생태환경, 인재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많이 피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촌이 진흥하려면 향촌의 제일 큰 산업인 농업이 진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타 산업들도 덩달아 진흥하여 하나의 완전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야 하고 그러자면 수많은 인재들이 농촌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러한 대목에서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농촌의 천지개벽의 변화를 실감나게 세상에 널리 알리고 농촌의 창업환경, 산업생태계, 거주조건을 사회에 적극 선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료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의 자원과 도시의 자본, 인재가 련결되는 데 선전보도일군으로서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블루오션으로 부상한 향촌으로 자본과 인재가 흘러들어야 하는 이러한 력사적인 시기에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더 생동하고 독자들이 즐겨 읽는 뉴스를 써내 력사의 흐름과 나라의 정책 실시에 촉매제,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겉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전반을 아우르는 의식과 취재능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 아닐가 싶다. 기자생활이 길어질수록 습근평 총서기가 우리 기자들에게 제기한 4가지 능력인 ‘발로 현장을 뛰는 능력, 관찰하는 능력, 사고하는 능력, 글로 옮기는 능력’이 점점 마음에 깊숙이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