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지’ 속 첫 설립지-동북 첫 쏘베트정권 설립지
화룡시 투도진에 위치한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공원에 가면 길이 9.1메터, 높이 2.6메터, 두께 0.65메터, 무게 32톤 되는 붉은 노을색을 띤 비석이 정중하게 놓여져있다. 이 비석에는 조, 한 두가지 언어로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라는 글씨가 유표하게 새겨져있다.
이곳은 주내 각 단위와 단체들이 홍색혁명정신을 고양하고 당조직의 응집력, 전투력을 증강하기 위해 당성과 혁명전통 교양을 전개하는 홍색교양기지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엽,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압박 속에서 혁명의 투지가 전례없이 불타올랐다. 1930년 4월 24일, 만주공산당, 공청단성위의 지시 아래 중공연변특별지부는 5.1투쟁행동위원회를 설립하고 연변지역에서 ‘붉은5월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5.1투쟁행동위원회는 토지혁명을 전개하고 고리대 압박을 반대하며 가렴잡세를 반대하는 투쟁구호를 제기했다. 연변의 각 지역 인민군중들은 파업, 농민폭동 등 형식으로 ‘붉은5월투쟁’에 뛰여들었다.
5월 25일, 연변특별지부는 농민투쟁에서 초보적인 승리를 거둔 토대에서 화룡현 약수동에 동북의 첫 농촌쏘베트정권인 약수동쏘베트정권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5월 26일, 수백명 군중들이 약수동에 모여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설립을 선포하고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고리대업자의 전부 재산을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약수동쏘베트정부는 동북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인민혁명정권으로 되였다.
‘붉은5월투쟁’과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설립은 중국공산당이 연변지역에서 령도한 한차례 반제반봉건 농민혁명투쟁이였고 일본침략자들과 지방봉건세력에게 막심한 타격을 주었으며 당의 영향력을 넓혀갔고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군중들이 일심협력해 국내외 반동세력과 투쟁하는 혁명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일본 군경과 동북반동군벌의 련합으로 된 진압하에 약수동쏘베트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괴되였으나 중국공산당이 9.18사변 후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을 령도해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데 든든한 군중토대를 마련했다.
이 력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85년 화룡현정부는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에 작은 기념비를 세웠다. 그 후 화룡시는 2016년, 110만원을 투입해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공원을 신축했다. 또 2020년 약수동쏘베트정부 설립 90돐을 맞아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 주제전시화랑을 건설한 데 이어 유적지를 보수하고 외부에 대리석 란간을 설치했으며 69개의 약수동희생렬사기념비림을 건설했다.
이곳은 주내 각 단위와 단체들이 홍색혁명정신을 고양하고 당조직의 응집력, 전투력을 증강하기 위해 당성과 혁명전통 교양을 전개하는 홍색교양기지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엽,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압박 속에서 혁명의 투지가 전례없이 불타올랐다. 1930년 4월 24일, 만주공산당, 공청단성위의 지시 아래 중공연변특별지부는 5.1투쟁행동위원회를 설립하고 연변지역에서 ‘붉은5월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5.1투쟁행동위원회는 토지혁명을 전개하고 고리대 압박을 반대하며 가렴잡세를 반대하는 투쟁구호를 제기했다. 연변의 각 지역 인민군중들은 파업, 농민폭동 등 형식으로 ‘붉은5월투쟁’에 뛰여들었다.
5월 25일, 연변특별지부는 농민투쟁에서 초보적인 승리를 거둔 토대에서 화룡현 약수동에 동북의 첫 농촌쏘베트정권인 약수동쏘베트정권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5월 26일, 수백명 군중들이 약수동에 모여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설립을 선포하고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고리대업자의 전부 재산을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약수동쏘베트정부는 동북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인민혁명정권으로 되였다.
‘붉은5월투쟁’과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설립은 중국공산당이 연변지역에서 령도한 한차례 반제반봉건 농민혁명투쟁이였고 일본침략자들과 지방봉건세력에게 막심한 타격을 주었으며 당의 영향력을 넓혀갔고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군중들이 일심협력해 국내외 반동세력과 투쟁하는 혁명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일본 군경과 동북반동군벌의 련합으로 된 진압하에 약수동쏘베트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괴되였으나 중국공산당이 9.18사변 후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을 령도해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데 든든한 군중토대를 마련했다.
이 력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85년 화룡현정부는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에 작은 기념비를 세웠다. 그 후 화룡시는 2016년, 110만원을 투입해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공원을 신축했다. 또 2020년 약수동쏘베트정부 설립 90돐을 맞아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 주제전시화랑을 건설한 데 이어 유적지를 보수하고 외부에 대리석 란간을 설치했으며 69개의 약수동희생렬사기념비림을 건설했다.
‘2지’ 속 첫 탄생지-동북항일련군 제2군 탄생지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전신은 1932년부터 륙속 건립된 연길, 화룡, 왕청, 훈춘, 안도 등 현의 항일유격대대이다. 1936년 3월 상순, 제2군 지도간부회의가 안도현 미혼진에서 열렸다. 회의는 <8.1선언>과 <동북항일련군통일군대건립선언>의 구체적 요구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을 동북항일련군 제2군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하고 산하에 3개 사를 두었다. 1936년 7월,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에 편입되였고 왕덕태가 제2군 군장 겸 제1로군 부총사령을 맡았으며 위증민은 제2군 정치위원 겸 제1로군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군장 왕덕태, 중공동남만성위 서기이며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정치위원인 위증민, 중공동만특위 서기 동장영,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3방면군 총지휘였던 진한장 등의 령도하에 유격근거지에서 일본침략자들에게 막심한 타격을 주었다. 당시 연변지역을 위주로 한 동만항일유격구는 총면적이 4만평방킬로메터에 달했다.
14년간의 치렬한 전투에서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위증민, 왕덕태, 진한장, 최철관, 안순화 등 전국적으로 저명한 20여명의 항일영렬들이 용솟음쳐나왔으며 진한장, 조아범은 선전부, 조직부, 중앙당사연구실 등 부문으로부터 100명 새 중국 창건에 특출한 기여를 한 영웅모범인물로 평의됐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위대한 업적과 혁명전사들의 감동적인 혁명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2군 지도간부회의가 열렸던 안도현은 2019년 7월에 신합향 한총구에 동북항일련군 제2군기념관을 설립하고 애국주의교양기지로 확정했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동북항일련군의 중요한 구성부분이였고 골간력량이였으며 동북항일련군정신은 중화민족 항일전쟁정신의 중요한 구성부분이였고 항일전쟁정신과 함께 중국공산당과 중화민족의 정신적 계보였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군장 왕덕태, 중공동남만성위 서기이며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정치위원인 위증민, 중공동만특위 서기 동장영,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3방면군 총지휘였던 진한장 등의 령도하에 유격근거지에서 일본침략자들에게 막심한 타격을 주었다. 당시 연변지역을 위주로 한 동만항일유격구는 총면적이 4만평방킬로메터에 달했다.
14년간의 치렬한 전투에서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위증민, 왕덕태, 진한장, 최철관, 안순화 등 전국적으로 저명한 20여명의 항일영렬들이 용솟음쳐나왔으며 진한장, 조아범은 선전부, 조직부, 중앙당사연구실 등 부문으로부터 100명 새 중국 창건에 특출한 기여를 한 영웅모범인물로 평의됐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위대한 업적과 혁명전사들의 감동적인 혁명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2군 지도간부회의가 열렸던 안도현은 2019년 7월에 신합향 한총구에 동북항일련군 제2군기념관을 설립하고 애국주의교양기지로 확정했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은 동북항일련군의 중요한 구성부분이였고 골간력량이였으며 동북항일련군정신은 중화민족 항일전쟁정신의 중요한 구성부분이였고 항일전쟁정신과 함께 중국공산당과 중화민족의 정신적 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