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자 되여


날짜 2023-10-07 10:09:02 조회

누구나 부자가 되는 꿈을 한번쯤 꿔본 적이 있겠지만 마음의 부자가 되는 꿈을 꿔본 적은 있을가? 요즘 나는 꿈이 아닌 현실생활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이 두둑한 마음의 부자가 되여 제2의 인생을 풍요롭게 장식해나가고 있다.

천직으로 삼고 36년간 최선을 다해왔던 공직생애를 마무리하고 보니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은 홀가분함의 맨 끝에 ‘성 쌓고 남은 돌’이 된 것 같은 허전함이 은근슬쩍 반죽되여 심경이 묘했다. 다행히 현실은 나에게 얽히고 설킨 이 미묘한 감정의 여운을 오래 끌고 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퇴직을 앞두고 몇몇 회사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외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언니도 나의 퇴직 날자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봉급을 톡톡히 주겠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돈을 버는 일을 할가, 취미생활을 할가 저울질하는 시점에 30여년의 두터운 친분을 이어왔던, 내가 평소 존중하는 연변애심어머니협회(이하 협회) 방선화 회장으로부터 뜻을 함께 하지 않겠는가는 진심어린 제의를 받았다.
‘애심’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천평 우에서 오르내리던 내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나는 국내외 명승고적도 유람하고 춤과 노래도 배우면서 마음껏 즐겨보자던 야심찬 계획을 차곡차곡 접어 마음 갈피 속에 잠시 끼워놓고 협회의 일원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2019년 1월, 퇴직하고 며칠 만에 나는 협회 주요직의 계주봉을 호기심 섞인 마음으로 넘겨받았다. 가볍게 생각하고 넘겨받았던 계주봉에는 날에 날마다 무게감과 책임감이 더해져갔다. 부회장이자 비서장으로 임명되였지만 사실 나는 기자, 운전수, 출납원, 짐군 등 여러가지 역할을 겸했고 각종 대회와 행사를 준비하고 집행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일인다역으로 협회사업에 이 한몸을 여한없이 불살랐다. 사명감을 안으면서 달리고 달렸던 5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감개무량하고 보람찼다.

행복과 슬픔이 반죽된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20년 전 불편한 몸으로 30명의 동창들과 함께 협회를 설립하여 애심공익의 불모지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장장 15년간 힘들게 협회를 이끌면서 규범화된 협회로 키워온 김화 명예회장, 공직에서 은퇴한 후 협회 회장직을 선뜻이 물려받고 5년을 하루같이 협회에 대한 사랑에 푹 빠져 협회를 부단히 발전, 장대시킨 방선화 회장, 10여년간 ‘청소년 꿈터’ 원장직을 맡고 의지가지없는 20여명 아이들을 보살펴주어 훌륭한 대학생, 사회인으로 양성시킨 한수영 부회장, 후원회 회장을 맡고 본인이 앞장서 해마다 1만원씩 성금을 내놓고도 성차지 않아 일년에 두차례씩 사랑의 물품을 지원한 ‘백년돌솥’ 박성화 사장, 암과 싸우면서도 항상 활짝 웃는 얼굴로 궂은 일 가리지 않고 협회의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온 김주옥 부장, 협회 초기 성원으로서 20여년 드팀없이 협회에 몸을 담근 정혜진, 방분선님을 비롯한 로회원들, 제3대 회장 직책을 맡고 대오를 확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최순희 회장 그리고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온 사회 각계 기업인들과 애심인사들… 그들의 감동적인 사적들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2020년, 전염병사태로 인해 우리가 계획했던 300여명이 참가 자선행사가 무산되였고 현장에서 기부금을 모아 빈곤학생들에게 조학금을 전달하려던 활동이 중단되였다. 기부금으로 생활을 영위하던 지원대상들이 전례없이 힘들었을 것을 감안해 온라인으로 활동을 벌려서라도 그들에게 온기를 전달해야 했다. 성원들이 입을 모아 시작한 이 활동은 결과적으로 예상 밖의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비상시기였음에도 나누고 베푸는 회원들의 마음에는 비상이 걸리지 않았을 뿐더러 한푼이라도 더 보태려고 적극적으로 동참해나섰다.
우리는 주내 8개 현, 시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불우한 이웃들의 가정을 한집한집 위문하고 그들의 손에 기부금을 쥐여주며 쌀, 기름, 밀가루 등 생활필수품들을 전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랴, 행사를 조직하랴, 촬영을 하랴, 기사를 쓰랴, 쌀자루를 운반하랴… 팽이처럼 돌아치고 나면 온몸이 녹초되여 축 처져있다가도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우며 바래주는 우리의 지원대상들을 보면 봄날에 눈 녹 듯이 고달픔이 사르르 사라지면서 사명감이 커지고 다시 힘을 얻군 하였다.
해마다 조직되는 ‘청소년희망캠프’도 감동 그 자체였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해주기 위해 우리는 안전한 범위내에서 연변 각 지역의 홍색관광지들을 참관시키고 혁명전통교양을 진행했다. 애심행사는 가는 곳마다 많은 애심인사들의 따뜻한 지지와 성원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크나큰 감동을 받으면서 주변에 마음 따듯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였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부모의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도 애심어머니들이 해야 할 일이다. 꿈터에서 자란 학생들이 대학시험을 칠 때면 우리 회장단은 학생들의 손을 잡고 시험장 대문 앞까지 바래주면서 힘찬 응원을 해주었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험에 지친 학생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주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사스러운 대학 입교날에는 회장단이 총동원해 연변대학 훈춘분교까지 바래다주기도 했고 외지에 가는 학생들을 역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들의 미래에 진심어린 축복을 해주었다.
잊지 못할 울고 웃는 이야기거리들이 아마도 추억 속에 오래오래 고이 간직될 것 같다.
좋은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됨은 자연적인 리치인 것 같다. 5년간 우리 주내 나아가 전국애심녀성포럼 리더 및 각 지역 ‘애심녀성’들과도 좋은 친분을 많이 쌓게 되였다. 여러차례 전국애심녀성포럼에서 조직하는 행사에 참가하여 앞장서 달리고 있는 조선족녀성들의 멋진 풍채와 적극 향상하는 정신면모 그리고 일터에서 일취월장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힘을 팍팍 받고 돌아왔다. 우수한 분들과 어울려 배우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
지난해 3월말, 나는 비서장 계주봉을 조용히 후임에게 넘겨주었다. 계주봉에 실린 무게와 책임감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젊은 후임이 나보다 더 멋지게 맡은 바 일을 잘하리라 굳게 믿으면서 무거운 사랑의 짐을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내려놓았다. 비서장으로서의 3년 남짓한 시간을 협회를 위해,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에 썼다는 자부심과 내 몸을 불사르며 열심히 일을 했다는 긍지감과 희열을 느끼면서…
지금도 협회 보관서류에 고즈넉하게 한자리를 하고 있는, 해마다 내 손으로 하나하나 준비했던 대회 자료, 화책, 대사기, 영상, 지원대상서류 등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나곤 한다. 그 속에 스며든 땀방울은 단비가 되고 자양분이 되여 나를 부단히 성장시켰다. 큰 대회도 척척 준비하고 조직하며 지휘하고 진행할 수 있는 경험을 쌓고 능력을 키웠으며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도 제고되였다. 퇴직 후 새로운 령역에서 새로운 제고와 성장을 가져오리라고 생각도 못했었기에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뿌듯하고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다.
친구들은 나를 보면 얼굴색이 더 밝아졌고 얼굴에는 늘 웃음이 만개해있다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더니 얼굴은 마음의 ‘대변인’인가 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애심어머니협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음 부자들 속에서 사랑의 에너지를 팍팍 전달받아 성장판이 더 열려 마음의 키도 몇뽐쯤은 더 큰 것 같다. 전국애심녀성포럼 리란 명예의장의 말씀처럼 ‘애심표’ 화장품과 보건품을 써서 피부가 더 밝아지고 마음이 더 환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비서장으로서 협회행사 기사를 써야 했기에 몇십년간 내 몸속에서 잠자고 있던 글쓰기 싹을 꺼내 해빛도 쬐여주고 물도 주면서 열심히 가꿨더니 아름찬 성과로 내 마음을 다채롭게 채워주었다.
갓 협회에 발을 들여놓고 첫 기사를 짤막하게 쓰고도 두근거렸던 때가 어제 같은데 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니 무려 50여편의 기사를 쓰게 되였다. 매번 기사를 쓸 때면 불우이웃들이 처한 환경이 눈에 알른거리면서 마음이 아프다가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주는 애심인사들이 있어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글을 쓰다 보니 기사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면 ‘코스모가든에서 펼쳐진 이색적인 대잔치’, ‘꿈터 아이들에게 새 보금자리 마련’ 기사의 조회수는 3673회, 2484회를 기록하고 있다.
퇴직한 후 재미로 쓴 처녀작 <황혼의 로맨스>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수기가 간행물에 발표되였고 가사 <백세인생 닐리리>를 시작으로 4수가 매주일가로 방송되였으며 동요 <눈까풀> 외 1수가 우수상으로 평의되였다. 시농사도 열심히 하여 <농부의 삶> 등 여러 수가 연변문학과 여러 지면에 발표되였고 연변음악계렬도서에 가사 4수가 게재되는 영광도 안아왔다.
퇴직하면서 누구나 고민한다는 제2의 인생, 서서히 지는 석양이면 어떠하리, 퇴직했다는 리유로 자칫하면 누군가는 무료하게 보낼 후반생에 나는 배움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취월장의 성취감을 느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해오면서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며 마음의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꿈이 있는 자는 아름답고 도전하는 이는 더욱 아름다운 법, 지난 5년이 보람찼다면 앞으로의 삶도 도전의 련속일 것이다.   
작가:최미화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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