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된 당원 합격된 교원으로 달리는 길에서


날짜 2022-12-12 10:43:08 조회

1988년, 18살 되던 해 나는 돈화시 황니허진제2소학교 교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매사에 단결하고 착실하게 일을 해나가는 이 집단에 직접 몸 담근 후에야 나는 비로소 책 속에서 보았던 고상한 정조를 가진 사람이 실제로 나의 곁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신변의 우수한 공산당원들의 모습에서 당원의 책임과 사명을 더한층 깊이 느끼게 되였으며 나 역시 합격된 공산당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였다.
그해 39세였던 부계영 교원은 우수한 공산당원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였지만 20년 교수경험을 가진 ‘베테랑’ 교원이였다. 그는 20년 청춘을 성스러운 교육사업에 바쳤다. 많은 사람들의 인상 속에 부계영은 그냥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하지만 부계영은 말보다는 실제행동으로 교원의 본색, 당원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실속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교수는 실제적으로 하고 교수방식을 혁신하며 성적은 최고를 추구하는’ 사업취지에 립각해 교수개혁의 선두에서 달렸다. 매번 참신하고 훌륭한 교수활동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고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적거렸으며 거울 앞에 서서 얼마나 많은 련습을 들였을가… 그가 평범한 교원에서 오늘날의 교수기준병, 교무주임으로 성장해온 길에 얼마나 많은 신근한 땀방울을 흘렸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학년조 조장이였던 산장정 교원의 학급에는 학습과 생활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가 가르쳤던 학급의 한 학생은 학업성적이 뒤떨어져 중도에 학업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학부모마저 자신의 아이가 “천성적으로 공부할 재목이 아니다.”며 중퇴리유를 강조했다. 하지만 산장정 교원은 포기하지 않고 그 학생이 학업을 견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가정을 방문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 학생의 집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그 당시는 초봄이라 솜옷까지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까지 도착하고 나니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너한텐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어. 넌 나의 학생이고 내 수많은 아이들중 한명이란다. 난 절대 널 락오시킬 수 없어.”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그 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그뒤 산장정 교원의 학급에는 학업에 열중하는 아이가 한명 더 늘어나고 서로 돕고 함께 학습하는 즐거움이 더 늘어났다.
당원인 륙은연 교원은 사랑의 해살이 교실 구석구석을 따스하게 비추도록 했다. 천차만별의 개성을 가진 학생들을 상대로 그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가르치면서 ‘진정성, 리해, 열애, 인내심’을 취지로 내세웠다. 그는 학생들을 대함에 있어 조금의 소홀함도 없으며 그들이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참다운 인성을 갖추도록 자신의 정열을 아낌없이 쏟았다. 륙은연의 학생, 학부모 그리고 동료들이 그를 칭찬할 때마다 “내가 한 일은 교육사업을 열애하는 교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고 했다.
존경하는 나의 은사들, 그리고 수많은 동료 교원들, ‘당원’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서 헌신하고 사심없이 노력해온 그들은 나에게 생동한 본보기가 되여주었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은 나로 하여금 주저없이 당조직에 입당신청서를 제출할 용기를 심어주었고 더욱 적극적인 사업태도로 일에 림하고 당당히 당조직의 고험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다지게 해주었다.
1999년, 나는 6학년 담임교원을 맡고 2개 과목의 교수를 책임지는 동시에 졸업학급 교수연구조 조장을 담임하기도 했다. 일상적인 교수임무를 완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매번 수학대회가 있을 때면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지도임무를 책임졌다. 매일 교수임무를 마친 후에는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내고 붉게 지는 석양을 받으며 높게 쌓인 숙제와 시험지를 채점해야 했다. 그때 나는 출산에 림박한 예비엄마였는데 하루종일 서서 수업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갈 때면 다리가 퉁퉁 붓기 일쑤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해 내가 가르쳤던 학급의 합격률은 100퍼센트였고 수학대회 현지 경기구역에서 입선된 12명 학생중 내가 지도한 학생이 10명을 차지했다. 나는 성급 골간교원이라는 묵직한 영예도 받아안았다.
1999년 6월 10일, 붉은 당기 앞에서 나는 빛나는 당휘장을 가슴에 달았다. 그날은 내가 출산하기 다섯날 전이였다.
당을 향한 나의 추구는 단지 종이장에 남아있는 글씨만이 아니다. 30여년 동안 내 신변의 모든 우수한 당원들과 함께 근면하게 분투해서 받아안은 영예와 찬양은 이 조화롭고 적극 향상하는 단체에 대한 가장 좋은 ‘상’이였다. 그들은 한폭 한폭의 기발이 되여 내 마음속에, 내가 향촌교육에서 전진하는 길에서 나붓기고 있다.   
 
 
김설 편역
작가:축염걸 편집: 사진:

핫 클릭

  1. 1 당기 아래서 성장하다
  2. 2 “유일한 특권은 앞장서는 것…”
  3. 3 붉게 타는 저녁노을처럼 살리라
  4. 4 꾸준히 분투해 시대와 인민의 기대에 부응
  5. 5 따뜻한 품에서 밝은 빛 따라
  6. 6 가슴에 새긴 입당선서
  7. 7 합격된 당원 합격된 교원으로 달리는 길
  8. 8 당은 나에게 분발정진의 힘을 주었다

칼럼

主管:中共延边州委组织部 主办: 中共延边州委组织部 出版:支部生活杂志社
地址:吉林省延吉市公园路2799号A座 邮编:133000 电话: 0433-2513269 E-mail: ybzbsh@126.com
吉ICP备:17002320号